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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백제시대 서해지역 군사요충지였던 곳

2020.05.01(금) 00:08:29아산지기(isknet@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달 외암민속마을 답사에 이어 이번에는 향토사학자 이갑수 선생과 함께 우리지역 신창면 일대를 답사하였다. 제일 먼저 신창향교를 둘러 보았다.
 
신창향교는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데, 국도 21호선[온천대로]의 신창면 읍내삼거리에서 북쪽의 지방도 623호선[서부남로]로 접어들어 200여m 지점의 신창초등학교 진입로 입구에서 진입로를 따라 200m쯤 올라가면 신창초등학교 교문에 이르며, 운동장 맞은편에 신창향교가 있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신창향교(新昌鄕校)는 조선시대부터 신창현에 있었던 관립 교육기관이며,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신창향교의 정확한 창건 연대와 연혁은 알 수 없다. 신창향교 직원 명부에 1676년(숙종 2)의 도유사(都有司)부터 기록되어 있어 숙종 연간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태조에서 태종 사이에 창건되었다고도 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향교 재현북2리(鄕校在縣北二里)’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신창향교는 조선 전기에 이미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8세기 중반 영조조에 편찬된『여지도서』「신창현지」에 수록된 신창현 지도에 향교가 표기되어 있어서 적어도 18세기 중반에는 신창향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신창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건물 배치 구조를 보여 주며 학성산 동쪽 기슭이라는 지형 때문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홍살문은 멀리 신창초등학교 진입로 중간에 있다. 신창향교는 명륜당 오른쪽[북쪽]의 동재 건물에 설치된 중문이 정문 역할을 한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 건물이며, 대지의 동쪽 끝에 배치되어 명륜당 뒷벽이 외벽 역할을 한다. 명륜당의 오른쪽에 동재, 왼쪽에 서재가 있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명륜당 맞은편에 솟을대문 형식의 내삼문이 있고 그 안에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양식 건물이며 도고산 운주사 건물을 옮겨와 지었다고 전해지는 건물이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현존하는 신창향교는 1872년(고종 9)에 관학 강화책에 따라 중건되었으며, 대성전은 당시의 신창현감 왕경열(王景烈)이 도고산에 있던 운주사(雲住寺)를 이전하여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신창향교 대성전에는 공자 등 5성,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 등 25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전교 등 향교 관계자와 유림회원이 참여하는 분향례(焚香禮)를 올리고 있으며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향교에서 학성산 방향으로 약 500m쯤 가면 신창현 역사공원이 나온다. 과거 온양군, 아산현과 더불어 아산의 역사적 근간을 이룬 신창현을 상징하기 위해 역사공원을 조성하였다. 이 주변은 조선시대 신창현 동헌과도 인접한 곳이다. 공원에는 역사적 고증을 근거로 읍치시설 및 전통시설을 도입하였으며 신창현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전시하였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이곳에는 신창 수령 조군유가 지었던 공북정이라는 정자를 복원해 놓았다. 공북이라 함은 <논어> 위정편을 인용해 "정치는 덕으로 한다."는 말로 북두칠성을 비유해서 북두칠성이 있으면 그 주위에 많은 별들이 함께 자연스럽고 질서 있게 공존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며, 이는 "임금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더라도 백성들이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며 자연스럽고 질서있게 살아가면 된다는 뜻이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신창현 역사공원은 유별나게 비석들이 많은데 주변에 흩어진 비석들을 모아 놓은것이라고 한다. 이곳 수령을 비롯해서 관련된 인사들의 공덕비등이 있는데 그중 제일 크고 멋진 비가 잠곡 김육비다. 조선 현종 때 대동법을 주장하여 시행토록 하기 위해 일생(1580~1658)을 실학사상에 기반을 두고 제도개혁을 추진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대동법이란 조선중기 16세기 광해군, 숙종 시기에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곡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로서, 토지의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씩을 통일하여 부과하게 하는 제도인데 양반과 지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본격적으로 시행된 때는 100년이라는 시일이 걸렸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신창현 역사공원을 뒤로 하고 학성산을 향해 올라가면 정상에 성벽이 나온다. 학성산은 학이 남쪽을 바라보며 날개짓을 하고 북쪽으로 다리를 길게 뻗은 형국이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학성산성은 산줄기를 따라 정상부에 쌓은 석축산성이다. 성의 규모는 약 500m 정도로 작은 규모이나 군사적 요충지로서 가치가 드높다.
 
성에 오르면 북쪽으로 아산시내를 통해서 서로 흐르는 곡교천을 비롯하여 그 일대의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동쪽과 서쪽에도 시야가 넓게 트여 있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성벽은 일부가 무너져 있는 곳도 있고 복원된 일부 구간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너진 부분에는 편축식이 기본이고 능선과 이어지는 곳에서는 협축식 성벽이 발견된다. 한 단 한 단 수평을 맞추면서 바르게쌓기 축조법으로 봐서 백제시대 초기 것으로 보인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인취사는 고려시대 창건한 사찰로 경내에 삼층석탑2기, 극락전과 3존불상, 경내에서 수습된 기와 와편이 있다. 그중 삼층석탑 1기는 지방문화재 자료 235로 지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여름에는 연꽃 축제가 며칠간 성대하게 열리며 그 행사로는 백일장, 시낭송 등이 있어 인취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볼거리와 참여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제공한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구전에 따르면 인취사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다만《여지도서》에 따르면 18세기에는 인수사로 알려졌고, 건물 5동이 있었다고 적혀 있을 뿐, 창건 연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1870년대에 작성된《호서읍지》에는 《여지도서》와는 달리 19세기 후반 인취사는 규모가 매우 작은 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창 문화유적지를 찾아서…신창향교·학성산성·인취사 사진
 
이로 미루어 조선 중기에는 규모를 갖춘 사찰이었지만 그후에는 쇠락하여, 현존하는 사찰은 원래의 모습이라기보다 퇴락한 후의 잔존물로 추측한다. 학성산의 동쪽 기슭에 있으므로 가람의 배치가 동서를 축으로 한다. 극락전의 정면에는 낮은 축대를 의지하여 계단과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극락전 왼쪽 정면에는 우물이, 동쪽에는 요사채가 있다.

*참고 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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