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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2020.04.29(수) 01:59:56가람과 뫼(caption56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현충사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사진

공(公)의 자(字)는 여해(汝諧)요, 시호(諡號)는 충무(忠武)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고려때 중랑장을 지냈던 이돈수의 12세손(孫)이다. 1545년(인종 1년) 서울 건천동에서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변덕현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공께서는 스무 살이 되던 1565년(명종 20년)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무남독녀와 혼인하여 슬하에 삼남일녀를 두었다.
 
정려문
▲정려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사진
 
그후 외가인 아산 백암리에 내려오셔서 무예를 닦으며 과거를 준비하셨다 한다. 1572년(선조 5년)에 훈련원 별과에 응시 하였으나 낙마로 인하여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시고 낙방을 하였다 한다. 공께서는 4년후인 1576년(선조 9년)에 치뤄진 식년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셔서 지금의 함경도 삼수인 동구비보에 권관(종9품)으로 첫 임지에 나가셨다 한다.
 
고택
▲고택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사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사진
 
제1차 해전인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20여 해전을 모두 승리하시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시고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산화하신 공의 업적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더불어 성웅이라 일컬어지며 후손들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 중의 한 분이 되셨다.
 
홍살문
▲홍살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사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사진
 
충무공 탄생 475주년을 맞이하여 공의 높으신 뜻을 기리고자 현충사를 찾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탄신을 기념하는 행사는 취소 되었지만 아이들 손을 잡고 방문한 가족들과 꽃다발을 든 방문객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띈다. 다행스럽게 관리하시는 분들이 정성스레 상을 차려 놓으셨다. 영정 앞에서서 잠시 감사의 묵념을 한 후 향을 올렸다.

 閑山島月明夜上戍樓撫大刀
 深愁時何處一聲羌笛更添愁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터에
 어디선가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학창시절 배웠던, 공께서 진중에서 지으셨다는 시조가 불현듯 떠오른다. 주변의 시기와 질투속에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을 하시는 등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묵묵히 오직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셨던 공의 위대한 정신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이 귀감으로 계승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따스한 봄볕에 우거져 가는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5 주년에 즈음하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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