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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의 상징 ‘세한도’

충청의 미술인②김정희(金正喜)

2020.02.25(화) 13:29:15도정신문(ktx@korea.kr)


1844년, 국보 180호, 수묵화, 23×69.2cm, 국립중앙박물관

▲ 1844년, 국보 180호, 수묵화, 23×69.2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말기인 1786년 우리고장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예와 금석학의 대가였으며 정치가나 실학자로서도 업적을 남겼다.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노(果老) 농장인(農丈人) 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이다.

추사는 24세 때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가서 금석학과 실학등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뜬 선지자였다. 또한 두 번이나 귀양을 갈만큼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일생동안 벼루 열 개가 구멍이 나도록 먹을 갈았으며 붓 천 자루가 닳도록 글을 썼으니 절해고도에서 고독과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글씨와 그림으로 달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쓴 것이 「추사체(秋史體)」 요, 그린 것이 「세한도(歲寒圖)」다.

추사가 남긴 세한도는 문인화의 최고봉이라 할 수있다. 여기 소개하는 「세한도」는 완당(阮堂)이제주도에서 귀양살이 5년이되던 해인 1844년 헌종10년 (59세)에 그렸다. 역관인제자 우선(優先) 이상적 (1804-1865)의의리에 감동하여 그려준 것으로 이상적의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했다.

세한도는 시(詩), 서(書), 화(畵)의 삼절(三絶)로 조화를 이룬 문인화의 정수)를 보여준그림이다. 그림 끝에 작화 경위를 담은 작가 자신의 발문과 청대 16명사들의 찬시가 적혀 있고, 이어뒷날 이 그림을 본 김정희의 문하생 김석준의 찬문과 오세창 이시영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예산군 신암면에 추사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인근에 많은 금석문이 산재해 있다.
/임재광(미술평론가, 공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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