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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公州)의 옛 사진, 그 속에 담긴 사연

현재는 과거가 이룬 성과(成果)

2020.02.20(목) 19:46:52잔잔한 미소(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公州)의 옛 사진, 그 속에 담긴 사연
 - 현재는 과거가 이룬 성과(成果)
 
공주(公州)에는 금강이 흐르고 금강 위에 금강교가 있습니다. 금강철교라 부르는 이 다리는 무지개다리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공주의 금강교, 공주시의 상징입니다.
▲공주의 금강교, 공주시의 상징입니다

현재 금강교는 폭 6.5m, 길이 513m로 한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는데 지금은 다리가 오래되어서 인도와 차도로 나뉘어 자동차는 일방통행으로 무게와 높이·속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동차 다리와는 달리 남쪽 끝 부분이 철교로 되어서 금강철교로 부르기도 합니다. 멀리서 이 다리가 보이면 이제 공주 다 왔다 할 정도로 공주의 상징인 셈입니다.
 
공주 금강교의 위용
▲공주 금강교의 위용

일제강점기에 놓였다는 다리가 6·25전쟁으로 끊겼을 때 나는 어린 나이에 고생스럽게 나룻배 타고 강 건너 학교에 다녔습니다.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지금 이 다리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낀답니다.

철교 부분이 끊어져 버린 모습을 공주의 옛 사진 전시회에서 보고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책보를 어깨에 둘러메고 비스듬하게 내려앉은 다리에 쌓은 모래주머니 위로 기어 다니던 그 다리입니다. 나중에야 나루터가 생기고 나룻배가 강 이쪽저쪽을 오가며 사람과 자동차를 실어 나르던 광경을 상상이나 해 보셨나요?

이를 본 적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낭만으로 알겠지만, 당시 '국민학교' 다니던 어린 몸으로 배를 타고 내리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지요. 더구나 홍수 때면 학교도 못 가고 물 빠질 때만을 기다리던 그 옛날이 지겨웠지만, 지금은 추억이 돼버렸네요.
 
금강교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라는 안내판을 보면, 1933년에 개통되어 6·25전쟁 중에 파괴되었다가
1956년에 복구되었다는 기록입니다. 내가 6학년 때 다리가 준공되었고 중학교 때부터 겨우 다리 위로 통학하였지요.

다리 없던 시절 고생했던 사람이니까 지금의 금강교를 건너다니면서 누구보다도 늘 다리의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도 금강교가 고맙습니다.
 
6·25전쟁 중에 끊겼던 금강교의 모습
▲6·25전쟁 중에 끊겼던 금강교의 모습

또 다른 사진 이야기입니다. 나룻배가 다니지 않는 지금의 고마나루터 사진입니다.

금강이 흐르는 공주시 웅진동과 우성면 도천리 사이를 왕래하던 나루터입니다. 금강교가 놓이기 전에는 이곳 고마나루를 건너는 나룻배가 있었는데 이곳에 지금도 나루터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 옛날 사람이 왕래하던 나루터, 지금은 사람도 배도 없는 허허벌판입니다. 어쩌다 이곳 나루터에 서서 고마나루터라는 해설을 읽어보면서 과거 생각을 떠올립니다.
 
공주(公州)의 옛 사진, 그 속에 담긴 사연 사진
▲공주 고마나루터

나루터에 나룻배가 있었고 사공이 노를 젓던 당시에는 이쪽에서 큰 소리로 부르면 저쪽에서 사공이 노를 저어 건너 주었지요.

사람은 물론이고 나무지게며 자전거도 실어 날랐던 나룻배 사진이 추억에 남습니다. 보릿고개 때 보리쌀 한 말, 가을에 쌀 한 말을 뱃삯으로 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고마나루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한 사연이 더 많을 겁니다.
 
옛날의 고마 나루터(공주역사영상관 전시 사진 중에서)
▲옛날의 고마나루터(공주역사영상관 전시 사진 중에서)

다음은 공산성 성밑 마을 사진입니다.

공산성 성곽길 2km가 넘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미나리꽝쪽 성곽길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성밑 마을이라 불렀지요. 지금은 거기에 있던 집들이 없어지고 공산성 소형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이곳 마을에 물감 집도 있었고 부채 만드는 집도 있었고, 그 후에 공주 장맛 유명한 토속식당도, 농기계 수리 판매하는 상가도 성업 중이었는데 지금은 다 철거되어 없어졌지요. 모두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주차장 모습을 보면서 전에 있던 상가 모습을 기억에 떠올려 봤습니다. 지금의 모든 사실은 아마 또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변하는 세상 모습이 묘하기만 합니다.

옛날부터 산성공원으로 널리 알려진 공산성은 그 성안에 성안 동네가 있었고 성 주변과 밖에도 곳곳에 소수의 민가가 있었는데 그중 성밑 동네는 지금의 산성 버스정류장에서 공산성 성벽쪽입니다.
 
공산성 금서루 아래 주차장이 있던 곳도 옛날에는 여러 채의 집이 있었는데 주차장으로 만들었다가 지금은 공산성방문자센터를 만들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공주(公州)의 옛 사진, 그 속에 담긴 사연 사진
▲2017년 당시 성밑 마을상가 모습
  
2020년 2월의 공산성 소형 주차장으로 조성된 성 밑 마을
▲2020년 2월의 공산성 소형주차장으로 조성된 성밑 마을
 
2017년 3월 공산성에서 내려다본 성 밑 마을
▲2017년 3월 공산성에서 내려다본 성밑 마을
 
2020년 요즈음 주차장으로 조성된 모습
▲2020년 요즈음 주차장으로 조성된 모습

다음은 공산성 쌍수정 사진입니다.

1981년 5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담임교사와 함께 쌍수정에서 찍은 것입니다. 지금부터 40년 전 당시 사진의 학생 수를 세어보니 모두 70명이 가깝습니다. 지금 시골 중학교 전교생이 이보다 적은 학교가 많다고 하니 이 사진을 보면서 당시 과밀학급의 실태를 짐작합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어엿한 중년의 아주머니들, 아마 40대 중반의 나이일 텐데, 어디서든 이 사진을 보면서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겠지요.
 
1981년도 공산성 쌍수정 소풍 기념사진
▲1981년도 공산성 쌍수정 소풍 기념사진

공산성에 오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거쳐 가는 코스가 이곳 쌍수정입니다. 쌍수정 앞 광장이 넓어서 전에는 시민들이 즐겨 운동하는 곳이었고 달리기, 자전거 경주, 영화 촬영, 백제문화제 행사도 열렸던 곳입니다. 요즈음은 쌍수정 사적비 앞에서 문화재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공산성 쌍수정 사적비 앞의 문화재 발굴 결과가 기대됩니다.

공산성 쌍수정 광장
▲공산성 쌍수정 광장
 
공산성 쌍수정 사적비 앞 공사 현장
▲공산성 쌍수정 사적비 앞 공사 현장

다음은 고마나루 솔밭에서 본 연미산의 모습입니다.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 고마나루 솔밭에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인데, 멀리 보이는 연미산이 헐벗은 산으로 보입니다. 원래 연미산은 돌산이지만 산림녹화사업으로 한창 나무가 자랄 무렵인데도 당시 모습은 아직 숲이 우거지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연미산을 보면 많은 나무가 자라서 울창한 숲을 이룬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60년대 산림녹화사업으로 지금은 어디를 가나 우거진 숲입니다.

요즈음은 특히 산불조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마나루에서 본 연미산(1970년대 말)
▲고마나루에서 본 연미산(1970년대 말)
 
웅진동에서 본 연미산(2016년)
▲웅진동에서 본 연미산(2016년)

공주시는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주관으로 공주역사영상관 제2회 특별전 ‘백제의 옛 도읍 공주와 공주사람들 이야기’ 사진전을 2014년에 개최한 바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과 향수를, 젊은이에게는 공주의 역사와 생활상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공주(公州)는 201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령왕릉과 공산성 때문에 관광도시로서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석장리박물관 같은 선사시대 유적과 웅진 백제시대의 유물과 유적도 많고 그 이후 공주 감영을 비롯한 근대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공주시와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을 찾아내고 그것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타나지 않은 공주의 옛 사진을 찾아내고, 알려지지 않은 사연과 옛이야기를 발굴하는 사업에 시민들의 많은 협조와 동참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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