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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남편을 늘 그리워했던 배용순 여사 묘소가 있는 충의사

2018.10.08(월) 12:59:37도희(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충의사는 일제강점기에 25살 나이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의 위패를 봉헌하고 있다. 윤 의사는 23세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기 전에 이곳 시량리에서 태어나셨고 생가와 성장가가 보존되고 있다. 충의사에 있는 솔밭길을 걸으며 산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듣는 일도 좋지만, 평생 남편을 그리워 하며 살았을 한 여인의 애틋한 마음을 읽게 되면 콧등이 시큰해지며 가슴이 아려온다.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윤의사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올라가는 좌측길로 나 있는 소나무 동산으로 올라가면 작은 동산에 윤의사의 처 배용순 여사의 묘소가 있다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16살에 한살 연하인 윤의사와 결혼해 23살에 윤의사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 하실때 남편이 목마르다고 부엌에서 일하던 아내에게 물 한그릇 달란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배여사는 그 이후에 평생동안 남편이 사라진 집앞 신작로에 다시 나타날까 늘 그 길을 바라보며 사셨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시부모와 시동생들을 돌보며 시어머니의 출산 뒷바라지까지 하고 사셨던 한여인의 한과 슬픔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배용순 여사는 생전에 남편 윤의사의 명예로운 죽음 앞에 혹시 누가 될까봐 늘 말을 아끼며 조용히 사셨다. 고 윤의사의 장손녀 윤주경씨는 말한다. 배여사는 81살까지 사셨고 남편 영정을 모신 사당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히셨다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배여사는 동학민의 자녀로 태어나셨고 윤의사를 여의고 말년에는 천주교를 열심히 믿다가 돌아가셨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윤의사를 만나 두분이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하실까? 배여사는 시부모를 모셨고 시동생들을 돌보며 윤의사가 집을 떠나실때 마지막으로 안아보셨던 아들을 키우셨다. 윤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큰 뜻을 품고 집을 떠날때는 아들 모순 두명이 있었고 아내는 임신중이었다.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사나이는 집을 떠나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는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유서를 배여사께서 평소 남편이 공부하던 사랑방 책상에서 발견 했을때 그녀의 심정은 얼마나 간절 했을까? 그녀의 절절했던 심정과 평생 남편을 기다리며 살았을 여인의 기다림이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 여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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