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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2018.06.14(목) 11:38:45도희(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에 조선 후기의 서권기 가득한 찬란한 서예문화의 꽃을 피운 고색창연한 추사고택을 찾았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말을 타거나 마님이 가마를 타고 드나들었을 법한 솟을대문을 지나자 아침에 마침 머슴이 빗자루로 마당을 훤하게 쓸어 놓은 듯 문이 활짝 열려있다. 사랑채 뜰을 거닐며 나무 기둥에 걸린 주련의 글씨들을 하나씩 음미하면 200년 전의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만난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늘어진 은행나무 사이로 고즈넉한 추사의 뜰 안엔 싱그러운 유월의 초록빛이 만연하다. 추사가 태어난 달도 6월로 24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자제 군관의 자격으로 청나라로 건너가서 당대의 학자 옹방강과 필담을 나눈 후에 동양에서 제일가는 학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하기야 추사는 6살에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김노영의 양자로 서울 월서위궁에서 자라며 당시 매죽헌이라는 서고에서 외국의 다양한 귀한 서적을 읽고 자랐으며 자랐기에 옹방강과의 필담에도 술술 막힘이 없었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한국의 전통가옥 중 사랑방은 손님들의 접대 장소로 사용되었고 이 집 주인 양반님께서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던 곳이다. 원래 이 가옥은 추사 선생님의 증조부 김한신께서 영조 대왕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는 바람에 하사받은 부지에  충청도 54개의 고을에서 기부를 받아 처음에는 54칸의 대갓집으로 지었다. 이후 1970년대에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증축하면서 34칸으로 줄이는 바람에 옛 모습을 많이 상실한 아쉬움이 있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유월에 추사는 태어났고 그해 가뭄이 심하게 들었지만, 그가 태어난 이후에 메말랐던 우물이 샘솟고 시들었던 산천초목이 다시 되살아났다는 추사의 탄생설화가 얽힌 우물이 아직도 있다. 세월은 유수하고 인걸은 온데간데 없고 우물가의 앵두는 여전히 지나가는 길손의 목을 축인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사랑채 앞마당에 있는 '석년' 이라는 추사체로 쓴 해시계는 추사의 아들 김상우가 쓴 글씨로 돌기둥의 그림자로 시계를 측정했다고 한다. 사랑채에 있던 추사의 수만 권의 장서는 안타깝게도 1910년경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사랑채는 남향집으로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이 있고 마루와 대청으로 이어진다. 손님접대와 문학적인 유희를 즐겼던 장소로 대청 쪽으로 난 문은 모두 들어 열개문으로 위로 활짝 열 수 있는 개방적인 형태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사랑채 서까래 아래 걸린 추사의 작품 세한도 국보 180호는 제자와 스승 간의 변함없는 의리를 자연에 비유한 학예일치에 도달한 추사의 꽃이라 일컬을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담긴 작품이다. 제주 유배 기간에 조각배에 스승이 좋아하는 귀한 서적을 싣고 목숨을 걸고 풍랑을 헤치고 찾아온 제자 이상적의 배려에 깊이 감동하여 보답으로 그려준 그림이다. 물론 원본은 국립박물관에 깊이 소장되어 있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사랑채 방안에 놓인 약함은 옛날에 동의보감을 공부하던 양반들이 약재들을 보관해두고 식솔들이 아플 때 약탕기에 한약을 달여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마루 밑에 놓인 섬돌은 손님이 이 섬돌을 밟고 올라가 반드시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라는 뜻으로 예를 강조한 가옥구조로 볼수가 있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하인이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비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길게 달아놓은 홑처마지붕의 서까래의 멋 또한 일품이다. 이렇게 추사고택은 예를 강조하고 배려의 정신이 깃든 한옥구조라고 볼 수가 있다. 매화 향기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독서를 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를 즐겼을 법한 사랑채의 작은 격자 창문도 예사롭지가 않다. 비바람 방지용으로 만든 눈썹처럼 작게 생긴 눈썹지붕의 멋 또한 선조의 섬세한 배려문화를 엿보게 된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사랑채에 걸린 추사체 '죽로지실' 대나무로 감싼 화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찻집을 연상체 하는 글씨가 걸작이다. 이렇듯 추사뜰안을 거닐며 추사 선생의 글씨를 보면 그림 같은 창의적인 작품을 연상케 한다.
추사의 제주 유배가 없었다면 추사체도 탄생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고독과 힘든 시간 앞에서 연마하여 창조한 추사체로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녹음속의 고색 창연한 추사고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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