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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그 동네에 윤석중 아동 문학가 시비도 있고

2018.03.19(월) 11:07:48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율목 당산수 서낭제
석동 윤석중 아동문학가 생가지가 율목리 였었다네유……..
음력 이월 초 하루날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테미산성길 7 마을 느티나무 앞에서 제물을 차리는 부녀회원 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마을 사람들 문인협회 무속인들과 초대받은 분들로 마당은 꽉 차 있다. 음력 이월 초하룻날은 대개가 마을 사람들만 조촐하게 행사를 하거나 제를 지내지만 율목 당산제는 이채롭다.
 
어디를 가나 빼 놓을 수 없는 농악은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농악에 맞춰 새납도 등장했다. 본인은 어렸을적에 고향에서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칠월 논매는 일(만물)을 칠월 칠석안에 부지런히 끝마치고 칠석 날이면 농악을 하는데 거기에는 으레 새납을 부는 종서 아버지가 계셨다. 색동 옷에 농악보다 새납소리에 반해 지금도 새납 부는 소리만 들으면 한 없이 즐긴다. 타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진 관악은 특유의 음색이 들어있다. 
국태민안과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서낭제가 시작되자 자리는 엄숙해진다. 느티나무는 칠백년이 되었다고 마을 분이 귀띔을 해준다. 원뿌리에서 일곱 가지가 뻗어있고, 옆에 뻗어나간 뿌리에서  두 가지가 더 자라났는데 둘레가 어마어마 하다.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가 국보급이 될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한편 율목리는 부모님은 물론 아동문학가 석동 윤석중은 출생지는 아니지만 몇 년을 살으셨는지도 모르지만 시를 쓰면서 살기도 했단다. 느티나무에 대하여 마을을 지키고 있는 ‘우리 마을’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2002년 92세의 나이로 별세 했다는 윤석중은 동요·동시를 천여 편이나 썼다고 하니 나라 안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친 분이 아닌가 싶다.
  
서낭제를 지내는 바로 옆에는 윤석중 선생이 썼다는 ‘우리 마을 느티나무’란 시비가 세워져 있고 또 하나의 사진과 약력이 새겨진 비도 있다. 몇 년전에 문인들과 마을 사람들이 세운 비문이다.
율목리 추진 위원들은 앞으로 본 성황제를 “서산문화 대 축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더 노력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속살이 훤히 보이는  칠백년 된 느티나무 바른쪽에는 뿌리에서 나온 나무도 몇 백년이 되었을 것이다.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애향탑. 제주들이 자리를 정돈 하고.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밑동 하나에서 일곱가지 나무가 자라나고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제사지내기 직전 제주들 손을 씻는 모습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실버단 민요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뻘바람 풍물 농악 놀이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심걸섭' 추진 위원회 회장 인사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축문 읽는 모습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윤석중  아동문학가 약력

7백년된 느티나무 올리는 성황제 사진
 윤석중 '우리마을'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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