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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2018.01.17(수) 13:20:37도희(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천년고찰 덕숭산 수덕사의 겨울은 사찰을 찾는 사람들과 덕숭산 등반객들로 한겨울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수덕사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일주문에는 호남 제일의 명필가 소전 손재형 선생님이 쓴 덕숭산 수덕사(德崇山 修德寺) 현판이 걸려있다. 소전 선생은 194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츠카지카시를 한 달 동안 설득한 끝에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그림 국보 180호 세한도를 찾아 한국으로 가지고 온 분이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일주문 덕숭산 수덕사 현판 바로 뒤에는 또 하나의 '동방제일 선원' 전서체로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글자 그대로 수덕사는 한국 선불교의 맥을 잇는 선찰로 동방제일의 수행 선원이다. 수덕사는 조선말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꺼져가던 선의 불씨를 되살려 선의 중흥을 일으킨 경허선사께서 참선 수행을 하신 곳이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수덕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제일 관문인 금강문에는 금강저를 들고 공격과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나라연금강 님과 밀적금강 두 분의 금강 역사상이 있다. 이들은 부처님을 호위하고 사찰에 들어오는 모든 악귀를 제거하여 청정도량이 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황하정루 올라가기전  우측에는 만공기념관이 하얀 눈이 내린 처마 끝에 영롱한 고드름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분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셨던 만공선사다. 일제 침략정책에 따라 조선 불교말살에 대한 총독 데라우찌 망언에  '만공선사 항일 사자후' 그리고 서울 삼청 공원에서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독립 자금을 건네줄 때 함께 따라간 원담 스님이 증언하셨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황하정루 지하에 있는 '성보박물관에는 공민왕의 가야금과 탱화, 만공선사의 친필 등 많은 보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점심시간을 제외한 시간은 개방하므로 수덕사의 보물들을 눈여겨볼 수가 있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만공선사가 한양에 올라가서 의친왕 이강을 만나서 불제자를 만들고 공민왕의 거문고를 손에 넣고 온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만공스님이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에 소림초당 옆 갱진교 다리위에 앉아서 한잔 얼근하게 하고 거문고를 뜯으며 게송을 읊은 생전의 모습이 선하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 위덕왕 지명법사에 의해 최초 건립되었다. 1937~1940년에 해체 수리공사 당시 상량문에 고려 충렬왕 1308년에 건립되었다는 묵서 명이 발견됨으로써 우리나라 목조건출물 중에 건축 연대가 가장 확실한 건축물로 확인되고 있다. 대웅전은 고려 시대 건축형태인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의 정면 3칸 측면 4칸 12량의 대웅전이다. 특히 배흘림기둥은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고 빗살분합문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하얀 눈이 내려앉은 대웅전 측면의 목부 재의 아름다움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살짝 내려앉은 듯한 모습이다. 지붕 아래 좌우로 펼쳐진 작은 목부 재들이 지붕의 무거운 기왓장의 힘을 황금비율로 적절하게 위아래로 분산시켜 708년 동안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게 도와준다. 육중한 기와지붕 아래에 있는 서까래를 가로지르는 11개의 도리와 도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보가 있다. 그리고 도리를 바쳐주는 당초 모양의 보하지와 그를 바쳐주는 화반들이 오랜 세월 동안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어 신비롭기만하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대웅전에서 내려다보이는 법고 각은 조선 시대 기본건축물로 지붕 끝이 살짝 올라가 기둥 위의 공포들이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들어간다. 고려 시대 건축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인 데 비해 조선 시대 건축물은 팔작지붕과 다포 형식에 단청을 하여 다소 화려한 느낌을 준다. 수덕사는 이렇게 고려 시대 건축물과 조선 시대 건축물을 구별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대웅전을 돌아가면 야외에서 괘불을 설치하고 탱화를 걸어 불교의식을 집전하는 긴 괘불을 볼 수가 있다. 낙엽이 저 속살이 드러난 한겨울에 덕숭산의 기암괴석과 고목들이 어우러진 겨울 산의 멋이 돋보인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수덕사 일주문을 지나면 동양화가 이응로 화백이 1944년에 구입하여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수려한 풍경을 화폭에 담아 작품활동을 했던 수덕여관이 보인다. 숙박업을 하며 평생 남편을 기다린 박귀희 여사의 그리움이 애잔하다.  화가 나혜석이 스님이 되고자 수덕여관에서 화가 지망생들을 가르키며 만공선사의 허락을 기다렸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돌아선 허무한 발자국이 있는 곳이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속세의 연을 끊고 환희대에서 여생을 평안하게 지내다가 열반에 이른 일엽스님에 비해 세속 친구 나혜석 씨는 끝내 만공스님의 불허에 세속을 떠돌다가 54살의 나이에 무연고 사망에 이른다. 동시대에 태어난 신여성들의 속세의 삶과 구도애의 뜨거운 열정이 추운 한겨울에도 열기를 내뿜는 듯하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일엽스님은 이 환희 대에서 수행하며 저 뜰 안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신정조론, 자유연애론, 여성해방운동을 부르짖던 그녀가 돌연 이 산속에 들어와 수행의 길을 간 이유는 하얀 눈으로 덮인 설국에서 스쳐 간 한줄기 깨달음에서 온 이유인지도 모른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일주문 바로 옆 좌측에는 수덕사 선 미술관이 있어 현대 작가들의 작품 전시와 고암 이응노 화백의 초기 습작품 그리고 원담선사의 서예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수덕사 올라가는 길에 '오줌싸게'라는 작품이 어린 시절에 요에 오줌을 누면 어머니가 키를 쓰고 왕소금을 얻어 오라고 하여 난처했던 그시절을 달려가게 한다. 

천년고찰 수덕사 겨울 기행 사진

화강암 석에 새긴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의 탐물은 하루아침 이슬과 같다네'. 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천년고찰 수덕사를 거쳐 간 경허선사와 만공선사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 예술인과 문학가들의 삶의 흔적이 한 겨울의 눈꽃이 되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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