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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공주박물관 특별전 내년 1월14일까지... 국보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도 전시

2017.12.15(금) 17:32:57김진순(dhjsdk44@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 특별전을 내년 1월14일까지 개최하는 공주박물관

▲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 특별전을 내년 1월14일까지 개최하는 공국립주박물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 입구

▲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 입구


특별전 전시실 내부

▲ 특별전 전시실 내부


지금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실에서는 "백제의 불교 미술"이라는 주제로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 11월 7일부터 시작해 내년 1월 14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인데 그동안 보기 어려운 불교 미술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울수 있는 기회일 듯 하다.
  
백제의 불교미술은 서산 마애삼존불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온화하고 천진난만한 백제 고유의 조형미를 갖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불교미술을 직접 비교하여 고구려, 신라와는 다른 백제의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국보 제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 국립공주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으로 선보이는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전시는 1부 ‘백제, 불교를 수용하다’부터 시작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는 384년에 불교를 수용하였으며 다음 해 한산에 최초의 사찰을 세우고, 이것이 백제 불법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2부에서는 ‘불상을 조성하다’편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불상인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은 선정인 등 중국 초기 불상 형식과 일치한다. 부여 신리 출토 금동불좌상은 이러한 초기 불상 형식과 유사하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1959년 부여 신리에서 출토된 보살입상이다. 삼국시대 6세기 후반 작품으로 보고있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국보 293호에 빛나는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높이 21.1 cm의 금동으로 만들 불상으로 충남 부여군 규암리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관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는 불상이다. 양 어깨에서부터 늘어진 구슬장식이 X자로 교차하고 있으며,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백제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으로 얼굴에 표현된 미소와 비례가 적정한 몸의 형태, 조각수법 등 불교가 전래된 초기의 관음보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이것은 국보 183호 금동관음보살입상.
경북 구미 봉현동에서 출토된 것이다. 몸체가 길고 날씬한 편이며 영락장식이 간단하다. 한 다리를 자연스럽게 굽히고 서 있는 자세가 매우 유연하고 우아하게 표현되었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보물제 329호 납석제불좌상
1936년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출토된 불상인데 얼굴은 뺨이 통통하고 미소를 띠고있다. 양 어깨를 덮은 통견의 대의는 두꺼우며 비스듬하게 내의 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금동정지원명 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 196호)이다.
불상과 좌우의 보살상이 하나의 공배와 함께 주조된 이른바 일광삼존 형식의 불상으로, 대좌까지 모두 함께 주조되었다. 뒷면에는 ‘정지원이 죽은 아내 조사를 위해 금상을 공경되게 조성하오니, 빨리 삼도를 떠나게 하옵소서’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경주 황룡사터에서 1969년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불입상(오른쪽)과 석상(왼쪽).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1959년 부여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불좌상.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건흥오년' 글자를 새긴 고구려시대 광배.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1943년 부여 구아리 절터에서 출토된 나한상.
나한을 조각 또는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본래 불경에서는 나한을 성문사과(聲聞四果)의 하나로 놓으며 일체의 번뇌를 끊고 끝없는 지혜를 얻어 세상 사람들의 공양을 받는 성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부처님의 직제자뿐만 아니라 역대 여러 나라의 존경받던 수많은 고승대덕들을 함께 일컫는 말로서 흔히 아라한(牙羅漢)이라고 부른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1981년 김제 대목리에서 나온 반가사유 3존상
반가 사유상은 보통 출가하기 전의 싯다르타나 도솔천의 미륵보살을 나타낸다고 한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신라시대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그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은 자세로,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놓고 손끝을 뺨에 살짝 대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표현한 보살상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3부 ‘사찰과 탑을 세우다’편에서는 사비 도읍기(538-660)부터 보여준다.
이시기에는 본격적으로 사찰과 탑이 조성되었다. 왕흥사(577)와 미륵사(639) 터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는 다양한 사리장엄 형식을 보여준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보물 제 176호 사리와 사리장엄구.
부여 왕흥사 터 목탑지 심초석 아래 사리공에서 나왔다. ‘사리’란 부처의 몸에서 나온 뼈나 그 결정체를 뜻한다. 그리고 부처의 사리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다중 구조의 사리기(외함, 내함, 사리병 등) 및 탑 안에 들어가는 각종 공양구를 포함해 ‘사리장엄구’라 한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국보 제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의자 위에 앉아 왼발은 내리고, 오른발은 왼쪽 다리 위에 걸쳤으며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명상에 잠긴 이른바 반가사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금동으로 만든 이러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것이 가장 최초의 예로 주목된다.
머리에는 왕관 형식의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관 띠를 이마 위의 관에 묶어 귀 좌우로 내려뜨렸다.
 
마지막 ‘나가며’ 부분에서는 백제 불교미술의 특징과 계승을 보여준다.
백제 불교미술은 6세기 중엽에는 이제 백제적인 특징이 뚜렷해진다. 660년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은 당과 왜국, 신라로 뿔뿔이 흩어져 각지에서 백제 문화를 계승하였는데, 연기 지역의 불비상이나 충남 일대에 분포하는 백제제 석탑은 대표적이다.
 

찬란했던 백제 불교미술을 보다 사진


보물제386호 반가사유비상
불비상(佛脾像)이란 비석과 같은 형태의 돌에 불상을 조각한 양식으로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시작해 당나라시대까지 유행했다. 이 비상은 정면에 왼발을 내리고 오른발을 왼쪽 다리에 올린 반가좌를 하고있다.
 
머리에 쓴 삼면보관에 화불이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오른손에는 연봉오리를 들고 아래로 내린 왼손에는 정병을 들었으며, 두툼한 단판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 몸에 비해 큰 네모진 얼굴에 이목구비가 명료하고 두 뺨이 팽팽하여 원만한 보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제의 불교 미술은 온화하고 여유로운 백제 고유의 조형미를 갖고 있어서 볼수록 섬세하다는 점을 느낄수 있다. 국보인 보살의 둥글고 통통하며 온화하게 미소 띤 얼굴을 보노라면 그 자체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기분이 될 것이다.
국립공주박물관의 이 불교미술 특별전은 내년 14일까지이므로 이 기간을 놓치지 말고 연말연시에 새로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의미로 꼭 한번 관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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