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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2017.12.13(수) 12:30:22도희(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충남 예산군 대흥 슬로시티에 가면 조선 시대 현감님께서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건물인 대흥 동헌이 있다. 대흥은 1914년 일제강점기에 대흥이 예산군으로 행정 통폐합되기 전에는 대흥 군이었다. 봄에는 화사한 벚꽃으로 여름에는 푸른 나무, 가을엔 노란 은행잎으로 장관을 이루는 풍경이 있는 곳이다. 겨울의 대흥 동헌은 마치 허례허식의 겉옷을 벗어 버리듯이 나뭇 잎사귀를 떨구고 앙상한 가지가 두 팔벌린 채 푸른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모든 허물을 벗어 버렸을 때 청명한 하늘이 더 잘 보인다는 문구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대흥 동헌 앞 좌측에 서 있는 200년이 훨씬 넘은 나무는 천주교 박해부터 조선이 일제강점기에 당한 치욕스런 동헌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동헌 앞에 원래 나무를 심는 이유는 관리들이 관아에 행정업무를 보러 왔을 때 잠시 나무에 말 꼬삐를 묶어 두고 일을 보았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 때는 교인들이 오랏줄에 묶여서 이 나무에 묶어두고 한 사람씩 동헌에 불려 들어가 곤장을 맞고 조사를 당했다. 일부는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고문의 신음에 놀라서 배교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설도 전해진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대흥은 백제 시대에는 임존성 신라 경덕왕 때 임성군으로 개칭하였고 1895년 고종제위시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흥군으로 승격하였다. 그 이후에 일제강점기에 군면 통폐합으로 덕산군, 대흥군은 예산군에 편입되었다. 대흥 동헌 들어가는 입구에 걸린 현판은 원래 객사(현재 흥초등학교) 자리였던 외삼문 입구에 걸려 있었지만 대흥동헌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대흥 동헌은 조선 시대의 지방관아 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곳으로 1407년 조선 태종 때 최초 건립되었다. 그 이후 1914년 일제 강점기에 대흥면사무소로 사용하다가 1979년에 면사무소를 좌측으로 옮기면서 보수하여 현재의 대흥동헌에 이르고 있다. 동헌의 측면 지붕 모습은 여덟 팔자 모형으로 지붕 끝이 살짝 올라간 팔작지붕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조선지대의 전형적인 대표 건축물로 관청의 위용을 간직한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대흥 동헌 뒷뜰에는  2007년도에 KBS 드라마 '산 너머 남촌에는'촬영지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촬영이 끝난 후에 방송국에서 작은 누각 두 채와 항아리들을 이곳에 기증했다. 해마다 사월에 고목에서 벚꽃 가지가 흐드러지게 항아리 위로 늘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전국의 사진작가들의 출사 지역으로 유명하며 몇 해 전에는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특선에 오르기도 했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대흥동헌 바로 뒤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특이한 물건들이 눈에 띈다. 바로 조선왕조 화령옹주태실과 흥선대흥군의 척화비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하얀 눈을 소복이 이고 있고 태실은 화강암으로 만든 그릇 모양의 석실로 조선 시대에 왕가에서 왕세자 손이 태어나면 태를 함부로 처리하지 않고  뚜껑이 달린 태실에 백자나 청자 속에 태를 귀중품 금수저나 은수저 등을 함께 넣었다. 그리고 이 태실은 명산에 보관했는데 이 산을 태봉산이라고 부른다. 가야산의 남연군묘 등 많은 명당터가 있는 예산군에는 이 외에도 현재 가야산 옥계저수지위의 헌종 태실을 비롯하여 현종, 연령군, 화령옹주, 입침리 태실 등 5개의 태실이 현존한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이곳에는 또한 흥선 대흥군의 척사비가 윗부분이 많이 파손된 채로 서 있다. 흥선대원군은 왜래문물의 유입으로 조선의 문호개방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입장에서 전국에 196개의 척화비를 세웠다. 대원군이 임오군란때 잠시 청나라에 불모로 잡혀간 사이에 일제가 친일파 이왕직을 시켜 전구의 척화비를 없애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 비는 전국에 19기만 남아 있고 충남에는 3개가 현존한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낙엽이 져버린 대흥동헌의 겨울은 쓸쓸하지만, 머잖아 봄이 오면 고목에 새로운 싹이 돋고 봄노래를 시작할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민족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온 선조들의 발자취가 있는 조신시대의 관아 건물을 돌아보는 일도 의미로운 시간이 될것이다.

겨울방학 역사기행, 조선시대 관청 대흥동헌 사진

대흥동헌 뒤에는 해발 484m높이의 백제부흥군이 마지막 부흥깃발을 꽂은 봉수산이 우뚝 서 있다. 봉수산 둘레로 이어지는 2.4km의 트레킹 코스를 오르면 탁트인 예당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봉수산 자락에 있는 휴양림에 여장을 풀고 하룻밤 쉬어가는 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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