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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5월의 추사고택

2017.05.19(금) 11:14:03도희(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봄꽃이 만연한 추사 고택의 뜰을 거닐며 19세기 조선의 학자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학문 세계를 넓혀간 시간으로 여행하는 일도 의미로운 일입니다.

예술을 사랑한 추사 김정희 선생은 청나라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새 사회를 열어갈 목적으로 새로운 학문을 하신 분이다. 추사의 미지에 대한 동경과 학문세계에 대한 욕구를 절절하게 나타내는 글 중에 "벅찬 생각이 일어나네. 서해에서 지기를 사귀고 싶네. 그런 벗을 얻는다면 죽어도 좋으련만".라는 글이 있다.

19세기 한국과 동북아시아의 유명한 학자 김정희 추사 집안 경주 김씨는 조선 명문가의 대표적인 가문이다. 어느날 체제공이 추사의 앞을 지나다가 집 앞에 써 붙여진 추사가 7살때 집앞 대문에 쓴 '입춘대길'을 보고 추사의 아버지께 말한다. " 이 아이는 글씨를 잘 쓰면 운명이 기구해질 터니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하시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체재 공의 예언대로 추사는 윤상도의 옥사와 연관되어 평생 9년이라는 제주 유배 생활과 북청 고금도로 유배로 긴 세월의 시간을 귀양살이했다. 사람의 됨됨이는 인생의 고난이 왔을 때 왔을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성향과 인품이 보인다. 더러는 좌절하고 신세 한탄하며 자포자기로 범죄의 유혹에 이끌려 인생을 파탄 내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고난 속에서도 자기 수양을 하여 추사처럼 학문에 집중하여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하게 된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추사고택 앞 마당에 있는 해시계에 새겨진 '석년'은 추사의 아들 김상우가 추사체로 쓴 글씨다, 오래전에는 돌기둥의 그림자로 시계를 측정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시계 숫자판은 사라졌지만 세월의 무게만큼 돌기둥에 새겨진 글씨는 옛사람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청년 김정희를 만난 78세 옹방강은 추사가 어렸을 때 월성위궁의 매죽헌에서 접한 방대한 독서를 통해 간접적인 청나라의 지식을 쌓은 추사의 박식함에 놀란다.

또한 추사가 옹방강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추사가 옹방강에게 자신의 호를 '보담재' 라고 명했는데, 담계 옹방강을 보배롭게 여긴다. 라는 뜻이다. 추사만이 현장에서 쓸수 있는 독창적인 문자언어를 쓸수 있었다. 추사의 재기발랄함에 옹방강과 사제간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완원 또한 추사에게 귀한 손님에게 주는 용담승설차를 대접하면서 사제관계를 맺는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두분의 스승을 만난 후에 추사는 학문의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 당시 조선에 없던 옛 비석을 연구하는 학문인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마침내 북한산에 올라 무학대사비로 잘못 알려져 있던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판독할 수 있었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추사고택 사랑채에 걸려 있는 추사가 제주의 긴 유배 생활 중에 완성한 추사체와 국보 180호 세한도는 손꼽히는 걸작품이다. 이 그림은 언뜻 보면 소나무 한그루와 잣나무 세 그루와 그 사이에 있는 작은 초가집 한 채인데 그림의 가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그림은 추사가 제주 유배 기간에 자신을 위해서 제자 이상적이 청나라 역관으로 갔다가 가져온 귀한 서적을 스승을 위해 조각배에 식량과 스승이 그토록 좋아하는 서적을 싣고 풍랑을 헤치고 가져다준 제자의 의리에 감동하여 그려준 그림이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자연에 빗대어 솔직하게 표현한 참 따뜻한 작품으로 추사는 제주도의 오랜 유배 생활 중에도 학문에 정진하셔서 고난 속에서도 서예와 그림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하셨다. 국보 180 세한도는 스승과 제자의 의리를 자연에 빗대어 그림으로 그린 학예일치를 이룬 작품이다.  그림의 말미에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씀추사가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 유배 생활 9년 동안 학문에 정진하여 만들어낸 추사체는 옛것을 익혀 새것을 창조한 입고 출신의 귀재라고 일컬어진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이라. 봄바람처럼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가을물 처럼 문장으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춘풍대아능용물 중에 얼굴 容 글씨는 마치 삿갓 쓴 양반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이렇듯 추사의 글시는 그림 같기도 한 글씨체다. 추사는 옛 서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 법고창신의 귀재로 일컬어진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 아녀손' 이라. 반찬 중에 두부 생강 오이가 제일이고 손자손녀 며느리 가족 모임이 최고의 모임이다. 추사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71살의 나이에 쓴 글씨로 삶의 진리는 가장 단순함에 있음을 나타내셨다. 추사는 오랜 귀양살이 중에 수행의 경지에 이르셨고 삶과 학문의 진리를 터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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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되지만, 칠십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자루를 몽당 붓으로 만들었
다. 가슴 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 비로소 붓을 들 수가 있다." 추사의 글씨에는 향기가 느껴지고 그림에는 책을 많이 읽은듯한 문자서권기가 느껴진다. 19세기 청나라 사람들은 한류열풍으로 추사의 작품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추사는 중국 연경을 다녀온 후에 양반가의 자손들을 모아 금석학을 연구하고 조선의 비석을 연구하여 학문의 꽃을 피웠다. 추사는 서예가로 알려졌만 조선의 최고의 금속학자로 일컬어진다. 무학대사비로 알려져 있던 진흥왕 순수비를 밝혀낸 것은 큰 성과였다. 추사때 까지는 왕휘지체를 근본으로 위나라 한나라 글씨체 까지 추적하여 실천해낸 분으로 한작품 안에서 추사가 역대작품을 연구해낸것이다. 전체적인 조화가 돋보이는 추사체 추사이전 까지는 해서 예서 전서 행서 초서  다섯가지를 다 녹여낸 창조적인 글씨체를 완성해내었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문화란 파도와 같아서 일어나서 정점에 일어나 노쇠화 단계에 접어 들었을 때 추사가 청나라 문물을 접하고 온 이후 추사가 난 것이다. 추사의 해학성, 창의성 독창성 그림인지 글씨인지 알 듯 말 듯한 글씨들은 옛 상형문자에 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예법의 원리에 충실해서 새것을 만들어낸 법고창고의 산물이다. 추사의 열정은 한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갑골문자 등 추사 이전의 문자들을 다 녹여낸 작품이다. 당대의 모든 문자를 다 섭렵한 후에 추사문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추사작품의 필획의 다양성 등 중국의 명필가들도 추사의 작품을 인정하고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추사는 원래 서예가가 되려고 붓을 잡았다는 것보다는 학문을 하다가 보니 자기 예술과 일치가 된것이다. 추사학문의 진수를 말할 때 조형미를 말하지 않을수가 없다. 추사 김정희는 학습의 단계가 아니라 깨달음의 단계가 조형미로 나타낸 것이다. 이런한 필 획과 장법은 추사만이 창조해낸것으로 추사작품 중에서도 훌륭한 작품 중에 하나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추사를 법고창신의 귀재라 일컬음은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창조함이다. 추사의 작품에서 향기가 느껴지고 책을 많이 읽은 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문자향 서권기가 있다. 그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세상 풍파 속에서도 용감하게 일궈낸 학문에 대한 집념이다.

꽃으로 피어난 추사의 학문과 정신 사진

추사 고택 곳곳에 피어나는 목단꽃처럼, 격랑의 세월 속에서도 추사의 학문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후대의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으로 영원히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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