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2017.02.07(화) 13:13:51도희(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한겨울을 지나 입춘을 맞는 계절에 충남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 538번지에 있는 대흥 향교를 찾았다. 향교는 공자와 옛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대흥 향교는 조선 태종 5년(1405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향교를 방문한 날에 마침 교촌리 마을에 사는 어르신을 만났는데, 지금 이곳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예를 갖춘 제를 지낸다고 한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대흥 향교 앞에 있는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 앞에는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 고목이 아슬하게 대흥 향교 외삼문 앞에 서 있다. 우리나라 향교는 구한말 흥선대흥군의 서원철폐령과 6.25동란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해방 후 유림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과거 자료 고증을 통하여 복원한 건물이 대부분이다. 대흥 향교는 조선시대 향교로 1997년 12월 23일에 충남 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30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 대흥 향교의 측면 모습이 아름답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하는 느티나무를 바라보니까 유교를 받들고 숭상했던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예를 갖추어 선현께 제사를 드리려 돌층계를 올라가는 모습과 유림과 선비들이 서재를 들고 공부하러 드나들던 모습이 선하다. 향교는 조선 초기 공립교육기관이며 선현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지방의 군현마다 설치되었다. 이 향교는 봉수산 자락이 예당저수지를 감도는 구릉지에 있으며 원래는 현 위치보다 50m 북쪽에 건립되었으나 1591(선조 24년)에 이곳으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에 여러 차례 보수작업이 있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대흥향교 내부에서 바라본 외삼문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대흥 향교의 건물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으로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휴묘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건물의 배치는 전면에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던 공간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동제와 서제가 배치되었는데 위 사진은 동제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명륜당 오른쪽에 있는 대흥 향교 서재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내삼문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대성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 규묘로, 측면에서 보면 사람(人)자 모양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의 좌우에는 동무와 서무가  대칭으로 배치되었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건물의 배치는 외삼문, 명륜당, 동·서재, 내삼문, 대성전 순으로 배치된 전학휴묘의 경사지 건축으로 전체적으로는 남향하고 있으며 동·서재와 제기고(祭器庫)는 좌우대칭의 배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동쪽은 별도의 구획으로 전교실을 두어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각각 작은 문을 두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향교 앞에는 대흥마을에 공헌한 사람들을 위해 세운 공적비 2기가 서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교촌리 마을회관 앞에는 600년 된 은행나무는 느티나무를 품에 안고 서 있어 마을 사람들이 '사랑 나무'라고 부른다. 느티나무가 은행나무 중앙에서 자라고 있어 마치 두 나무가 서로 엉켜 한 나무로 보인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자세히 보면 은행나무 정 중앙에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600년 동안 이 마을 역사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은행나무는 대흥 향교가 최초 세워질 무렵에 함께 심은것으로 추정한다. 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마마룻마닥의 쉼터와 정자가 있고 바로 앞에는 교촌리 마을회관이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마침 경로당 문이 열렸길래 들어 가 보았더니, 마을 어르신들이 이웃에서 가져온 배를 깎아 드시고 계셨다. 낯선 이방인에게도 먹을 것을 건네는 어르신들의 인심에 살아있는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한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어르신들 말씀으론, 대흥면 교촌리 마을은 해발 484m 봉수산 자락에 있어 물이 좋고, 그런 이유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멀리서 바라본 산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마을은 한없는 평화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교촌리 마을 길에 있는 배나무가 입춘을 맞아 파란 풀이 돋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 눈부신 4월의 햇살에 화사한 배꽃의 장관을 이룰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레입니다. 옛 선현의 발자취가 있는 마을 유적지를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대흥향교를 찾아서 사진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