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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을 가지고 살았던 조병옥박사 생가

2016.08.14(일) 20:11:31초지일관(skdlem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근대를 살았던 사람중에 조병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어머니에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초기 정부 수립할 때 역할을 했었지만 선거를 준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요. 

조병옥박사 생가
▲ 조병옥 박사 생가

말로만 듣던 조병옥 박사 생가를 가보니 원래 살던 곳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대부분 시설들이나 초가집이라고 하더라도 오래된 느낌이 아닌 최근에 지어진 것 같았습니다.
 
유석 조병옥의 어록
▲ 유석 조병옥의 어록

엄청나게 찌는듯한 열기를 식히느라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서 잠시 비석들도 물에 젖어 있더군요.
 
조병옥에 대한 안내
▲ 조병옥에 대한 안내

조병옥 박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국외에서도 적지 않은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일찍이 유학을 갔다와서 그런지 남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가로 들어가는 싸리문
▲ 생가로 들어가는 싸리문

요즘에는 모두 아파트라 안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당췌 알 수가 없는데 옛날에는 이웃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담장이 높지 않았습니다. 

생가의 초가집
▲ 생가의 초가집

조병옥박사 집안에 돈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아들을 유학보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생가안에 있는 우물
▲ 생가안에 있는 우물

지금처럼 수도시설이 없을 때 집안에 하나씩 있었던 우물입니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우물이 옛생각을 나게 만드네요. 

생가의 헛간
▲ 생가의 헛간

조병옥 박사는 자신의 국가관을 따로 정리했다고 하는데요.  
첫째. 인류사회는 절대적 평등사회는 이룰 수는 없으나 상대적 평등사회로는 지향할 수 있다. 
 
둘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사유재산을 근거로 그 소유자가 공익을 위해 신탁할 수 있는 것이며, 경제적 경쟁으로서 토지, 자본, 금융의 독점을 막아야 비로소 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 발전시킬 수 있다.
 
셋째. 인류의 질적 향상의 운명은 개조에 있는 것이므로 공산주의와 같은 일개 이데올로기의 유물 변증법만 가지고는 현하 인간지옥 같은 사회로부터 돌변하여 지상낙원을 건설 할 수 없다.

아궁이
▲ 아궁이

옛날 사람들은 군불을 지피면서 밥을 해먹고 겨울철 혹독한 추위를 견뎌냈을 겁니다. 

생가 툇마루
▲ 생가 툇마루

오랜 외국 유학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조병옥은 신간회의 창립위원과 광주학생운동을 옹호하는 민중대회를 여는 등 독립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만해 한용운과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고 안창호 선생을 존경해서 그를 대통령감이라고 보았다고 합니다.
 
생가에서 바라보는 논
▲ 생가에서 바라보는 논

여름이 조금씩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벼들이 살짝 노릇노릇한 것을 보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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