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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주던날의 자화상

수필

2015.09.01(화) 03:27:33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농약 주던 날의 자화상
 
일손이 모자라서 어렵게 시집 보낸 모들이 가뭄을 이겨내고 벼는 속속들이 잘 자라나 온 들판은 초록색이다. 이삭이 패기 직전 벼는 바람과 함께 멋진 쇼를 보여준다. 벼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도미노 물결을 이룬다. 벼의 도미노가 일 때면 멋진 풍경에 빠져서 한없이 바라만 본다.

도미노 쇼가 끝나면 벼 이삭이 하나 둘 씩 패기 시작한다. 벼 잎새가 돌돌 말린 것을 보니 굴 파리가 생긴 것이다. 벼 잎 굴 파리는 새파란 부분 안쪽을 갉아먹고 바깥쪽으로 거미줄같이 생긴 부분을 남기기 때문에 하얀 것이다. 이웃집 논에 경운기가 탕탕거리며 농약을 준다. 논에 벌레가 생기면 논에서 논으로 연결해서 번지기 때문에 서로가 동시에 주어야 한다.

메르스 만큼이나 빨리 이웃 논으로 번진다. 중동에서 온 메리스 때문에 올 여름 나라는 큰 타격을 입었다. 처서가 지난 여름의 끝자락 열대야도 주춤하면 좋으련만 아직은 불볕더위다. 농약주기란 너무도 힘이 든다. 웬만하면 안주려고 버텨 보지만 벌레는 무섭게 번진다. 자주 주는 것은 아니다. 안주는 해도 더러 있다. 천 미터가 넘는 줄을 논두렁을 따라 기다랗게 늘어놓았다 줄였다 해야 하는데 그 줄의 무게가 만만치가 않다. 더위가 조금 가시고 오후 서 너 시가 넘으면 남편과 나는 논에서 농약 줄을 붙잡고 부르스를 출 것이다.

브루스 음악은 경운기 리듬을 타야 한다. 리듬을 잘 못타면 서로가 별 볼일이 없다. 남편은 경운기 코를 붙잡고 탕탕 시동을 걸어 약 줄을 끌고 가면서.
“ 경운기 있는 곳에 가서 그거나 허여”한다
“그게 무어유”
“그것도 물러?“ 돌아오는 대답은 핀잔이다. 부르스는 고사하고 첫 번부터 기분이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나, 원 참! 이름도 성도 없이 그거라니?”
내가 정 알아듣지 못하니까 분사기를 놓고 화를 내면서 경운기 손잡이 앞에 있는 것을 잡아당겼다 다시 넣고 재빨리 분사기 있는 곳으로 간다.
“쳇 이왕 왔으면 이름이나 알려주고 가지”
“그게 이름이 뭐유” 속 알 머리 없이 또 물어본다.
“......”대답도 없다.

논에서 웬 부르스냐고 할 테지만 그저 싸우지 않고 약을 잘 주면 부르스 춤인 것을.
공책 갖다놓고 경운기 부속 이름을 진작 배울걸 농약을 줄 때면 현행범처럼 싸움이 이어진다. 분사기에서 약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약통도 자주 들여다보아야 되는데 줄을 잡아당기다 보면 약통을 볼 사이가 없다. 손의 제스츄어에 따라 일이 달라진다. 손을 옆으로 흔드는 것을 보니까 약이 안 나오나 보다. 남편이 말하는 그거 이름은 바로 “기아”엿다. 시동을 걸면 기아를 넣어야 약이 나오는데 그걸 몰랐다.

다음 날 더웁기 전에 준다고 이슬로 옷을 적시면서 우리는 첫 리듬을 잘 탔다. 남편은 분사기를 끌고 가면서 벼에게 분사한다. 웬만하면 안주려고 버텨 보지만 하는 수 없다. 코를 찌르는 약 냄새가 역겹다. 약 줄을 끌고 지나가자 벼꽃이 이슬과 함께 남편의 옷에 묻어난다. 벼꽃은 마치 서케와 같이 작다. 농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벼도 꽃이 피느냐고 물어본다.  벼꽃은 참 신기하다 벼 껍질속에서 꽃이 피면 꽃은 떨어지고껍질속에서 쌀이 생긴다.  

그 옛날 서케의 원산지는 머리카락과 옷의 솔기였다. 머리카락에서 줄줄이 붙어서 무공해로 자란 이와 서케, 빈대, 벼룩이는 무수히 쏟아지는 약 때문에 자취를 감추었건만 긴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와 모기만 남아서 모기는 독침으로 야간 근무를 하고 파리는 소 잔등이나  꼬리에 앉아서 짐승들과 낮 근무를 한다.
꽃이 떨어지면 벼에 지장이 오니까 오후에 준다고 경운기를 끄라고 손을 들고 신호를 보낸다. 또 이번엔 무얼 만져야 경운기가 꺼질까 경운기 앞에 가서 들여다본다.

“앗 참 그거” 그거는 꺼 본 일이 있다.
요걸 잡고 내 앞으로 잡아당길까. 반대쪽으로 밀어버릴까. 아리송하다.
엄지손가락 같이 생긴 것을 내 앞쪽으로 잡아당기니까 경운기가 고장 난 소리 서너 번 하더니 힘없는 소리로 꺼진다. 나도 지쳐서 줄 하나 잡을 근력이 없다
줄도 거두지 못하고 논두렁에 철석 주저앉아 벼 포기를 들여다보니까 벼꽃이 활짝 웃고 있다. 나처럼 예쁘지도 않은 꽃이 그래도 꽃이라고.


 

농약 주던날의 자화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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