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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딸, 몽골댁의 아산 아리랑’

몽골에서 온 둔포 신남댁 ‘체첵수렝’ 한국생활 적응기

2015.08.06(목) 16:16:56온양신문(ionyang@hanmail.net)

몽골 달한에서 아산으로 시집온 체첵수렝

▲ 몽골 달한에서 아산으로 시집온 체첵수렝


한국와서 처음으로 생선구경
대화상대 없는것이 가장 힘들어
노래자랑 수상 휩쓸어 ‘몽골가수’로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나라 ‘내 나라 대한민국’
통역일 더 열심··· 전문통역사가 꿈


아산시의 다문화센터는 2009년 만들어져 이주여성들에게 문화와 언어 교육 등을 지도하고 있다. 각 나라별 모임을 통해 대표를 뽑아 이주여성들 스스로 협동도 하고 여러 도움과 조언을 해주고 있다.

몽골에서 아산으로 이주한 여성은 20여명 정도이다. 그중 맏언니 격인 ‘체첵수렝’이 몽골 대표를 맡고 있고, 통역 외에도 이주여성을 돕는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몽골 역도팀 인터뷰를 하다 인연이 되어 만난 몽골 통역사 체첵수렝(43세)은 그녀만의 이국땅 한국생활 적응기가 있었다.

2번째 만남이었지만 수렝의 사교적이고 능숙한 한국어 실력 덕에 오히려 기자가 한국을 배운 느낌이다.

2007년 결혼으로 몽골 달한에서 아산에 오게 된 체첵수렝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고, 낮에는 통역 일까지 하는 수퍼우먼이다.

남편의 친구가 몽골에서 국제결혼사업을 하고 있었고, 수렝의 조카도 국제결혼업체에서 결혼에 성공해, 고모의 권유로 가입한 것이 오늘 체첵수렝을 있게 했다.

독신주의였던 체첵수렝은 그렇게 남편을 만나게 된다. 남편의 첫인상에 대해 묻자 수렝은

“대부분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혼을 하거나 아이가 몇 있는 반면 남편은 초혼이었다. 초혼이라는 점과 성실해 보이는 인상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며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에 남편을 따라 타국에 온 과정을 설명한다.

한국에 오던 날 수렝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소를 키우며 농사짓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깊은 시골에 사는지 몰랐다. 그리고 집에 가보니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며 그때를 떠올린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어색함 없이 내 집이라고 느껴 그 날은 편히 잠들 수 있었다고 한국에서의 첫날밤을 기억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한국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그 누구와도 대화가 되지 않아 향수병과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렇게 8년이 흐른 지금 수렝은 누구보다 더 완벽한(?) 한국인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몽골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있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 이곳이 바로 내나라 한국이기 때문이다.」 -체첵수렝-

▲ 「나는 더 이상 몽골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있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 이곳이 바로 내나라 한국이기 때문이다.」 -체첵수렝-


그녀의 적응기
한국에 와서 어떤 점이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수렝은 한국에 와서 밥상을 받던 날을 떠올린다. “몽골에는 바다가 없다. 그래서 해산물을 먹어 본적이 없었다. 처음엔 미역국과 생선 먹기가 힘들었다. 된장찌개도 냄새 때문에 못 먹었다. 특히 내가 살았던 고향에는 생선을 전혀 먹지 않았다”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리는 음식이 없고, 된장과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토종 한국인이 되었다”며 웃는다.

시부모님을 잘 모시는 모습과 성실하고 말없이 묵묵하게 일하는 모습에 남편에게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고, 수렝이 YMCA에서 한국어를 배울 때 밖에서 신문을 보며 2시간씩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무척 든든했다고 한다.

“한국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고향생각에 국제카드를 몇 개씩 사서 국제전화를 하며 수화기 너머 고향이 그리워 울기도 많이 했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화상대가 없어 너무 외로웠다”고 한다.

한글을 배우며, 친구를 사귀고 말을 배우고, 한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상점 간판들을 읽으며 공부에 재미를 느꼈다. 3년 전부터는 지나가는 외국인들은 모두 인사할 정도로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제9회 사랑나눔 페스티벌에 참가해 체첵수렝은 은상을 수상했다.

▲ 제9회 사랑나눔 페스티벌에 참가해 체첵수렝은 은상을 수상했다.


노래는 또 다른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흥이 많은 체첵수렝은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외국인들의 18번은 대부분 노사연의 만남이다. 만남은 발음이 쉬워 금방 따라 부를 수 있다. 요즘은 인순이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부른다”고 한다.

수렝은 다문화페스티벌에서 은상, 대전 KBS 노래자랑에서 은상, 찬송대회에서 3등, 이순신 축제에서도 수상을 한 실력파이다.

인터뷰를 하며, 들어본 체첵수렝의 노래는 정말 훌륭했다. 발음과 고음처리도 좋았지만 마음을 실어 노래를 해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만든다. 가수라는 느낌이다.

“한국은 이주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이다. 이주여성에게 지원과 혜택을 가장 많이 해주는 나라이며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어 공부는 필수이다”며 이주여성이 인정받기까지는 기간이 걸리지만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2014년 제3회 아산시 모범 외국인 노동자 표창식

▲ 2014년 제3회 아산시 모범 외국인 노동자 표창식


몽골에서는
몽골에서 수렝은 철도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철도 공무원 일을 하면서 평소 좋아하는 요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후 요리에 빠져 요리사 자격증을 딴 후 기독교 단체에서 고아원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하며 봉사를 했다고 한다.

수렝은 한국 사람과 너무 닮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질 않는다는 말에 “전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생긴 모습이 비슷해 몽골에 있는 착각을 가끔 느낀다”며 농담도 건넨다.

얼굴 생김새 뿐 아니라 한국과 몽골은 공통점이 많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다보면 몽골 속담과 비슷한 뜻을 가진 한국 속담들이 많아 놀랐다. 전혀 다른 언어지만, 이해가 쉽고, 전통 노래도 비슷한 곡이 많다”고 한국과 몽골의 유사성을 설명한다.

체첵수렝은 “이주여성이기 전에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앞으로 살아갈 길의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잘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통역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전문통역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다.

「나는 더 이상 몽골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있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 이곳이 바로 내나라 한국이기 때문이다.」 -체첵수렝-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외국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수만리 이국땅 초원의 나라 몽골에서 온 체첵수렝은 적극적인 자세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고, 지금은 한국에서 몽골어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사는 체첵수렝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2015년 7월 몽골역도팀 아산 방문시 통역을 한 체첵수렝

▲ 2015년 7월 몽골역도팀 아산 방문시 통역을 한 체첵수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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