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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14호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선생님

2015.03.24(화) 16:07:16남준희(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서천 한산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다 모시를 짜는 걸로 알았어요. 그때 이 동네 살면서 모시를 안 짜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아마도 여자는 다 모시를 짰던거 같아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14호 한산모시짜기의 기능보유자이신 방연옥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제일먼저 해 주신 말씀.
그리고 방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씀은 흥미진진 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14호 한산모시짜기의 기능보유자이신 방연옥 선생님

▲ 중요무형문화재 제 14호 한산모시짜기의 기능보유자이신 방연옥 선생님


“아, 그때는 정말 모시만 짜면 부자 되는줄 알았지요. 그냥 많이 하면 부자 되는 줄 알고 너도나도 모시를 짰어요. 그걸로 논도 사고 밭도 사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도 시집 밑천 얻는줄 알았지...”
 
정말 그때 서천군 한산면을 중신으로 그 일대 농가에서 모시 짜는 일은 여성들에게 가장 큰 일과이자 생업이었고 또한 부업이기도 했다 합니다.

인류사 이래 의류는 먹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생활도구였죠. 심지어 베는 화폐를 대신해왔고, 1960년대 서천군 여인들은 자신들이 곱게 짠 모시를 시장에서 팔아 그걸로 생계를 꾸리며 아이들 교육까지 시킬 정도였다죠.
 
방연옥 선생님께서 오늘도 한산모시짜기의 명맥을 이어오시면서 작업중이신 곳은 서천군 한산면에 자리잡은 한산모시관입니다.

한산모시전통공방과 한산모시짜기 정수교육관이 같이 자리잡고 있는 한산모시관에 가면 백제시대 한산에 살던 한 노인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마을 뒷산 기슭에서 자연적으로 난 모시풀을 일러주어 처음 발견되었다고 전해져 오는 전설부터 만날 수 있습니다.
 

방연옥 선생님니 모시를 짜기 전 등에 요대를 대고 베틀에 묶습니다.

▲ 방연옥 선생님니 모시를 짜기 전 등에 요대를 대고 베틀에 묶습니다.
 

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사진
 

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사진
 

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사진
 

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사진
 

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사진


“모시관에 와서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모시 짜는 방에 항상 가습기가 돌아가죠? 그건 모시 실은 건조하면 잘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가습기가 어디있어요? 그러니 아무리 더운 한여름에도 바람이 통하지 않게 문을 꼭 닫고 눅눅한 상태에서 짜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후덥지근 하고 푹푹 찌었겠어요? 예전에는 부엌 한쪽에 땅을 파 움막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서 짰다고 해요. 그게 여기 전시관 들어오다 보면 오른쪽에 만들어져 있는 모형과 똑같은거예요. 옛날에는 진짜 그랬거든요. 그래서 6월말 장마 때부터 8월말 정도까지 눅눅한 계절이 모시 짜기에 최고 좋은 시기예요.”
 
한여름 푹푹 찌는 삼복 더위에 모시를 짰다는 방연옥 선생님. 그 말씀과 미소 속에 수십년전 소녀시절부터 모시를 짜 왔던 유년의 추억이 스크린처럼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한산모시 짜기는 1967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4호가 되었는데, 그 첫 기능보유자가 문정옥 선생님이었습니다.

사실 어릴 적 꿈이 간호사였다는 방연옥 선생께 모시짜기를 가르쳐 준 스승이었던 문정옥 선생님은 같은 마을에 살던 동네 아줌마였다죠.

장날 밖에 갈 때 어쩌다 한두번씩 모시 일을 하는 마을 아주머니 집에 들러 일을 거들어 준게 인연이 된걸까요.

어느날 문정옥 선생님이 방선생님을 불러 “이제 모시짜기 후계자를 삼아야하는데 이걸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하시더랍니다.
 
당시에 문화재가 뭔지, 후계자는 또 뭔지 모르던 시골 아낙은 “집에 가서 남편과 상의한 뒤 말씀드릴께요”라 한뒤 그 길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도 기꺼이 그렇게 하자고 하더랍니다.
문선생님과 방선생님은 그날부터 스승과 제자가 되었다지요.
 

가장 굵은 태모시

▲ 가장 굵은 태모시
 

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사진
 

옷감 한필 완성에 손길이 무려 4000번 '한산모시짜기' 사진
 

모시짜기를 하던 젊은시절의 방연옥 선생님

▲ 모시짜기를 하던 젊은시절의 방연옥 선생님
 

2014년 3월 현재 방연옥 선생님의 모시짜는 모습

▲ 2014년 3월 현재 방연옥 선생님의 모시짜는 모습

그렇게 시작한 정통 모시짜기 훈련은 다른 생업과 겸해서 해야 하다보니 째고 삼고 날고 매는 모시짜기를 1주일에 3번씩 꼬박 5년동안 배웠다네요.

물론 어릴적부터 모시삼기를 해와서 기본기는 갖추고 있었지만 국가무형문화재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정통파로 배워야 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스승의 건강이 악화돼 쓰러지면서 방연옥 선생 혼자서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후 한산모시짜기에 입문한지 6년 만에 이수자로 지정되어 마침내 2000년 8월에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보유자로 인정받았답니다.
 
모든 일이 쉬운건 아니지만 모시 짜는 일 역시 여간 고되고 힘든게 아닙니다.
모시째기라는 절차가 있는데 이것은 실을 일일이 입술로 찢어 모시섬유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좌우되는데 한산모시의 진정한 품질과 진가가 여기서 나타난다는 것이죠.

모시째기는 모시풀 껍질을 벗겨 말린 후 그것을 앞니로 쪼개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입술이 부르트고 피가 난답니다. 팔과 다리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그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나중에는 입술에 굳은 살이 배었다죠. 실로 고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또 지금처럼 가습기가 없던 시절에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짤 때도 날이 건조하면 모시가 다 부스러지므로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문을 쳐 닫고 땀을 빼며 작업을 해야 하니 고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한산모시는 마을 아낙들의 절절한 단과 피, 열정과 부단한 노력이 점철된 소중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선생님의 연표

▲ 선생님의 연표


그런 고난의 작업 끝에 하나의 명품으로 완성되는 한산모시.
지금껏 모시를 짜온 방연옥 선생님의 주요 약력은 이렇습니다.
1982~1986년 전승공예대전 7~11회 입상
1990년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1995년~1996년 전승공예대전 19~20회 입상
2003년 충청남도 공예품대전 특선
2003년 전국공예품대전 입선
2004년 서천군 공예품 및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대상
2004년 전국공예품대전 입선(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모시 한필이면 전통한복 1벌, 그리고 남자 저고리 하나가 나오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모시 일을 하는 할머니들이 전부다 손으로 모시를 째고 삼아서 만들어요. 그래서 모시옷을 사가는 사람들은 대물림 해서 입는다잖아요. 그걸 서양식 기계로 만드는 섬유 의류와 비교할수 있겠어요? 그래서 모시가 절대로 비싼게 아닙니다”
 
아토피도 없고 알레르기나 불편한 같은거 전혀 없는 한산모시 한필을 완성하기까지 손길이 무려 4000번이나 들어간다고 합니다.
 

모시짜기의 과정과 순서

▲ 모시짜기의 과정과 순서


명품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1) 태모시 만들기 : 모시나무를 베어 모시의 겉껍질을 벗기는 과정. 벗겨낸 속살을 다발로 묶어서 4~5회 물을 반복해서 적시며 양지에 말립니다.
 
2) 모시째기 : 잘 말린 태모시를 입술을 이용해 쪼개는 과정. 이때 모시의 굵기가 결정되는데 가장 가는 세모시(상저), 중간의 중저, 가장 굵은 막저로 구분합니다.

3) 모시삼기 : 모시째기가 끝난 것을 틀에 걸쳐 놓고 한 올씩 입술의 침을 이용해 이어붙입니다. 한 주먹 정도의 모시 한 타래를 한굿이라고 하는데 10굿 정도가 돼야 한 필의 모시를 짤 수 있습니다.
 
4) 모시날기 : 모시째기가 끝난 모시를 실을 감는 일입니다. 모시날기를 할 때 실이 엉키지 않게 잘 해야 합니다.
 
5) 모시매기 : 모시에 콩풀을 먹이면서 모시베틀에 얹을 타래를 틀에 감는 과정입니다.
 
6) 꾸리감기 : 모시는 날줄과 씨줄로 엮는데 날줄로 쓸 모시원사와 씨실이 되는 실꾸리를 만들어서 북집에 끼워 넣는 작업입니다.
 
7) 모시짜기 : 날실이 감긴 도투마리를 베틀의 누운 다리 위에 올리고 바디를 끼운 날실을 빼어 각각의 잉아에 번갈아 끼우는 일입니다.
 
8) 실 잇기 : 도중에 실이 끊어지면 안되기에 모시 짜기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과정입니다.
 
9) 표백하기 : 다 짠 모시는 흐르는 물이나 더운물로 대충 헹군 뒤에 콩즙을 빼기 위해 잿물에 1~2시간 정도 담궜다가 건져내고 더운물을 끼얹어가며 방망이로 두들겨서 콩즙을 깨끗이 빼내는데, 이렇게 한 모시를 반제라고 하며 생모시는 이것을 그대로 말려서 손질한 뒤 보관한 것이 그 유명한 모시입니다.
 

완성된 모시

▲ 완성된 모시
 

4000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뫼 한필

▲ 4000번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모시한필


뜨거움 여름에 태어나 그것을 입는 사람에게 최고의 시원함을 전해주는 모시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로 모시 짜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모시를 짜기 위해 모시 줄을 만드는 일, 즉 모시짜기요 모시 실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의 할머니들 아니면 해 낼 사람들이 없어서 언젠가는 명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걱정이 앞선다네요.
 

오늘도 묵묵히 모시짜기에 여념이 없으신 방연옥 선생님.

▲ 오늘도 묵묵히 모시짜기에 여념이 없으신 방연옥 선생님.


그렇지만 방연옥 선생님,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서 한산모시 두루 널리 후계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전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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