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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제 판소리 명인 심정순의 '얇은 사 하얀고깔'의 춤사위

충청남도 무형무화재 제 27호 '승무'- 전수조교 이애리씨가 전하는 서산승무

2014.11.26(수) 17:17:17남준희(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얇은 사 하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보선이여”
 
이 시(詩) 기억하시나요?
조지훈의 ‘승무’입니다. 학창시절 승무는 우리와 아주 먼 곳의 어떤 경지에 있는 것으로만 여겼는데 제가 직무상 승무 무형문화재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네요.
 
승무는 승복을 입고 추는 춤이어서 중춤이라고도 불렸는데 반드시 불교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 쪽에서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불교와 무관하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 가운데 하나라는 점입니다.
특히 이번에 취재한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 27호 심화영의 승무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심화영 선생께서는 2009년에 작고를 하셨지요.
그리고 지금은 심선생님의 외손녀인 이애리씨가 휴계자로서 전수조교가 되어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승무의 유래를 먼저 볼까요.
승무는 1910년대쯤 기방에서 발전되었다고 하며 불교문화사적 입장에서 본 불교설과 김만중 소설 중 구운몽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탈놀음 중에서 노장춤과 파계승의 번뇌가 낳은 춤이라는 설이 있으나 어느 것이 확실한지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승무는 흰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과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 도드리, 타령, 굿거리, 자진모리 등 장단의 변화에 따라 춤을 춥니다.
 
외할머니였던 심화영 선생으로부터 전수받아 현재 서산 승무를 계승하고 있는 이애리씨의 춤사위는 어떨까요?
 

2013년 전남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1)

▲ 2013년 전남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1)


2013년 전남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2)

▲ 2013년 전북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2)


2013년 전남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3)

▲ 2013년 전북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3)


2013년 전남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4)

▲ 2013년 전북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4)


2013년 전남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4)

▲ 2013년 전남 장수에서 공연하던이애리씨의 모습(4)


2013년 서산시 산사음악회에서 공연하던 모습

▲ 2013년 서산시 산사음악회에서 공연하던 모습(1)


2013년 서산시 산사음악회에서 공연하던 모습(2)

▲ 2013년 서산시 산사음악회에서 공연하던 모습(2)


이애리씨가 전수받은 심화영 승무는 대부분의 승무가 엎드려서 시작하는데 비해 서서 시작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시작과 끝을 목탁 소리에 맞춰 합장을 하며 인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심화영 승무는 뒤꿈치로 쓸 듯 발을 들고 이 발놀림에 항상 손이 따르며 조화로운 몸짓을 자아냅니다.

소맷자락을 뿌리는 동작이나 휘날리게 하는 팔동작은 매우 특이하며 반주로는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이 사용됩니다.
승무는 달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중춤이 갖는 춤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매우 우수한 춤이라 하죠.
 
복식도 심화영 승무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은 장삼도 흰색을 많이 입지만 예전에는 검정색을 주로 입었으며, 장삼의 길이도 예전과 같이 짧은 것으로 입습니다. 검은 장삼, 흰 고깔, 홍띠가 기본이고 또 보통 흰색이나 분홍저고리를 입는 것에 비해 미색 저고리를 입습니다.
남색치마, 미색 저고리에 자주 고름을 예복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국립국악원 내 국악박물관의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1910~20년대에 출생한 것으로 기록된 여창(女唱) 예인들의 복식과 동일하다고 하는군요.
 
외손녀 이애리씨는 어떤 계기로 승무에 입문했을까요?
 
이애리씨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댁에 다니러 오가면서 할머니가 강습회를 통해 춤추시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장구도 혼자 쳐 보곤 하다가 서서히 춤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군요. 아마도 ‘그 피의 그 피’는 속일수 없나 봅니다.
 

심화영 선생의 생전 모습(1)

▲ 심화영 선생의 생전 모습(1)


심화영 선생의 생전 모습(3)

▲ 심화영 선생의 생전 모습(3)


심화영 선생의 생전 모습(2)

▲ 심화영 선생의 생전 모습(2)


심화영 선생 부친의 묘비 앞에서

▲ 심화영 선생 부친 심정순 선생의 기념비 앞에서


그 이유는 심화영 선생을 보면 ‘승무의 피가 흐르는 가문’임을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화영 선생의 부친은 심정순씨입니다. 이분 역시 창극운동 초기의 활동가이며 판소리 중고제의 마지막 맥이셨던 분이죠.
그리고 그분의 오빠인 심재덕씨는 가야금 병창 판소리, 전통무용의 실기자이자 이론가로서 이화여자대학에서 국악강의를 맡은 실력자이셨다고 합니다.
 
그의 사촌 오빠인 심상건씨도 가야금 산조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역시 유명 국악인이었고 그래서 심화영 선생은 주로 그의 오빠 심재덕씨로부터 가야금, 춤, 판소리를 배웠는데 그 가운데 승무를 비롯한 전통무용을 특출나게 잘 한것이라 합니다.
 

지난 10월8일 서산시에서 주최한 제3회 닻개세계사신행렬 창의 퍼포먼스 경연에서 서산시장상인 최우수지도자상을 수상한 이애리씨가 밝게 웃고있습니다.

▲ 지난 10월8일 서산시에서 주최한 제3회 닻개세계사신행렬 창의 퍼포먼스 경연에서 서산시장상인 최우수지도자상을 수상한 이애리씨가 밝게 웃고있습니다.


이애리씨가 전승하고 있는 심화영 승무는 아직 전수관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2000년에 승무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후에는‘심화영 승무보존회’가 결성되었는데 현재 전수조교로만 지정되어 있는 이애리씨 역시 하루빨리 무형문화재로 등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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