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전체기사

전체기사

충남넷 미디어 > 소통 > 전체기사

12살부터 한평생 쇠를 다루신 우직함의 표상

충청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41-1호, 아산의 허창구 대장장

2014.08.19(화) 15:49:04남준희(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충청남도에 계시면서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유지-계승-발전시켜 오신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선생님들을 찾아 뵙고 우리 전통문화의 자취를 기록해 왔습니다.
 
그런데 엊그제는 뜻밖의 메알을 한통 받았습니다.

올 초에 청양의 향토유적(군 단위에서 지정하는 군급(郡級)의 무형문화재) 제 10호이신 우종실 선생님을 취재해 기사를 썼는데 대금을 배우는 분이 제가 쓴 기사를 읽고 우종실 선생님께서 제작하신 대금을 구매하고자 한다며 우선생님의 연락처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개인정보여서 우선생님께 양해를 구한뒤 가르쳐 주었는데 최근 며칠간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 기사덕분에 충청남도 전통문화의 가치가 그만큼 올라갈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창구 대장장

▲ 허창구 대장장


오늘은 아산에서 수십년째 철기(鐵器)를 만들고 다듬고 계신 대장장 허창구(도지정 제41-1호) 선생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낫을 만들기 위해 쇠를 담금질중이신 허선생님

▲ 낫을 만들기 위해 쇠를 담금질중이신 허선생님


12살부터 한평생 쇠를 다루신 우직함의 표상 사진


땅 땅 따당! 땅 따땅 따땅! 땅 땅, 최이익~ 칙~ 쉬익"
 
장날이면 강아지, 토끼, 오리, 닭들이 나오는 동물시장이 열리던 온양시장. 장에 나온 촌부들의 설레임과 니나노 술집에서 걸죽하게 한잔 걸친 탁배기 덕분에 불콰해진 얼굴로 장 구경을 하던 거리. 지금은 세월이 지나 그런 풍류도 사라졌지만 이곳에서 60년 가까이 땅 땅 땅 소리내며 쇠를 벼리고 달구는 분이 계십니다.
 
12살 때부터 대장간 일을 해온 대장장 허창구 선생님이 오늘의 주인공이십니다.
 
“내가 낫 하나는 제대로 만들었어야. 전국에서 알아줬다닝께”
허창구 선생님이 막 불구덩이에서 꺼낸 쇠붙이를 두들기면서 저를 보자마자 그 옛날 낫 만들던 솜씨 자랑을 하십니다.
60년이 다 돼가는 경력이니 굳이 그 기술을 여쭐 필요도 없는 일이었지요.
 

시를 달구는 화덕 아궁이

▲ 쇠를 달구는 화덕 아궁이


쇠를 두들겨 펴는 기계. 옛날에는 이것도 전부 맨손으로...

▲ 쇠를 두들겨 펴는 기계. 옛날에는 이것도 전부 맨손으로...


1차 담금질 가공이 끝난 낫

▲ 1차 담금질 가공이 끝난 낫 머리


완성된 낫 제품

▲ 완성된 낫 제품


허선생님은 이미 올해 연세가 69세이신데 그 연세답지 않게 굵은 팔뚝에서 힘줄이 툭 불거져 내보이십니다. 거기에서 내리치는 메질이 여간 힘차고 매서운게 아닙니다.
 
“가난혀서 배웠지. 그란디 하다봉께 직업이 되였어. 물리지도 못혀, 인자는... 열두살 때부터 읍내 대장간에 들어가 군대 생활 3년을 빼놓고는 지금까정 쇠를 두들겨 왔으닝께 오래도 헌거지”
 
빙그레 웃으시며 이마에 난 땀방울을 수건으로 훔치시는 표정에서 오랜 세월 외곬수로 일해오신 지난날의 감회가 새롭다는 느낌이 확 다가옵니다.

12살부터 한평생 쇠를 다루신 우직함의 표상 사진




당신의 자서전격인 책을 들어보이시는 허선생님

▲ 당신의 자서전격인 책을 들어보이시는 허선생님. 충남도지정 무형무화재 지정패가 자랑스럽습니다.


“연장은 말이지, 담금질이 제일 중요혀. 그걸 잘 혀야 제대로 된게 맹글어져 나와. 쇠는 뭐니뭐니 해도 담금질이랑께”

허선생님은 쇠를 불에 달구는 과정과 망치질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담금질에서 대장장이의 성격과 함께 오랜 숙련으로 터득된 최고기술이 드러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담금질이란 음식 만드는 것같이 쇠에 간을 맞추는 건데 그것이 간단한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담금질 과정에서 대장장이의 숙련도와 소위 말하는 ‘짬밥’의 수준이 나타난다고 하네요.
 

완성된 호미

▲ 완성된 호미


식칼종류

▲ 식칼종류


전시품

▲ 전시품


12살부터 한평생 쇠를 다루신 우직함의 표상 사진


이곳에서 허선생님이 만드는 품목은 부엌칼이나 과일칼, 낫, 호미, 괭이, 도끼, 쇠스랑, 작두, 삭도 등 몇가지 안 되는 생활용품과 농기구들이지만 다 정성이 담긴 작품들입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농삿일이 기계화되면서 옛날의 다양한 농기구들이 쓰임새가 없어지고 있지만 한때는 여기서 만들던 농기구만 30가지가 넘었다고 하네요. 또 농사철이 가까워지는 2월부터는 주문이 밀려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일했다고 합니다.
 
“쇳덩어리는 그짓말(거짓말)을 못혀. 절대로 안허지. 내가 두드린만큼 나와. 담금질을 제대로 안하믄 농삿일 할때 뚝 분질러져 버린당께. 밭 매던 호맹이(호미)가 부러지믄 농삿꾼이 월매나 승질나겄어. 그래서 쇠는 두들겨야지 단단해지는 법이여. 지금까정 그렇게 맹글어 왔어”
 
1945년생 해방둥이인 허창구 선생님이 12살 되던 나이부터 시작해 오늘날 69세 나이가 되도록 이런 정직함과 우직함, 자기 일을 할때 옆을 보지 않는 몰입과 순수함으로 대장간을 지켜오신 분입니다.


굴뚝

▲ 굴뚝


그라인더

▲ 그라인더


망치

▲ 망치


오래된 굴뚝, 쇠를 가는 그라인더, 그리고 손때 묻은 망치가 허선생님의 정직한 외골 인생을 잘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런 정직함이 결국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바르게 새우는 원동력 아닐까요.
새삼 더 크게 느껴지는 존경스러운 마음을 대장간에 전해 드리고 발길을 옮겼습니다.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