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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의 중심 홍성여행에서 깊은 역사를 보다

홍주아문과 안회당 그리고 여하정

2014.02.21(금) 18:36:09메아리(okab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성여행을 하면서 꼭 가봐야 할 곳이 ‘홍주아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홍성전통시장을 둘러보고 홍주아문(홍성군청)으로 가면서 만난 곳이 시내중심가에 있는 조양문이었다.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며 홍성군의 관문으로서 서울하면 남대문을 떠올리지만 홍성하면 조양문을 지나야하는가 봅니다. 조양문을 보니 서울의 남대문을 보는듯한 기분도 드는 것 같더군요.

충남에서 여러 곳을 다녔지만 홍성은 지나치기만 했지 홍성여행은 처음이라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홍성시내 조양문으로 가면서

▲ 홍성시내 조양문으로 가면서


시내를 지나며 바라본 위세 당당한 모습이 그 옛날 서해 제일의 도시라는 풍광을 풍기는 홍주성의 주문인 조양문이다. 

조양문

▲ 조양문


홍주성내 주차장 한 귀퉁이에 주차를 하고 난 뒤 홍주아문 앞에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관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흔치 않은데 홍성은 특히나 군청과 조선시대 관아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홍주아문

▲ 홍주아문


홍주아문 바로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뒤로 홍성읍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홍주아문(홍성군청) 앞 도로와 읍사무소가 보인다

▲ 홍주아문(홍성군청) 앞 도로와 읍사무소가 보인다


홍주아문(洪州衙門)은 조선왕조 때 홍주목의 동헌인 안회당의 외삼문(外三門)으로서 고종 때인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며 이 성의 동문인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같이 세운 것이라 한다.

대원군이 사액(賜額)한 홍주아문의 글씨는 6.25전후해서 망실되었으며 이 아문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는 안내문을 보고 나서야 홍주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홍성여행을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주아문

▲ 홍주아문


홍주아문으로 들어가 보니 지금은 군청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차된 차들도 있지만 수령이 약 650년이 넘은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고목이 눈길을 끈다.

오관리 느티나무 앞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홍주 고을에 액운이 낄 것 같으면 느티나무가 밤을 새워 울었으며 이때마다 서둘러 예방을 하였다”고 하는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는 도지정기념물(제171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도지정기념물 제171호)

▲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도지정기념물 제171호)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앞에서 바라본 홍주아관

▲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앞에서 바라본 홍주아문

홍주아문 앞에서 바라본 홍성읍사무소 방향

▲ 홍주아문 앞에서 바라본 고목과 홍성읍사무소
 

홍주아문을 둘러보고 홍성 역사관 둘러보기 위해 가다가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고택을 보고는 가까이 가보게 되었는데 이곳이 ‘홍성 안회당’이었다. 홍성 여행을 미리 계획했다면, 홍성여행 홍보물이라도 가지고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곳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내심 반갑기만 하다.

홍성 안회당은 군청건물과 주변의 건물 위세에 눌린 모습이지만 자칫 못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홍주목의 동헌인 안회당 건물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해지고 일제가 안회당으로 드는 내삼문을 헐고 그 자리에 청사를 지었다”고 한다.

홍성 안회당 [洪城安懷堂]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東軒)

▲ 홍성 안회당 [洪城安懷堂]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東軒)

홍성 안회당 [洪城安懷堂]

▲ 홍주동간 안회당 [安懷堂]

홍주목사와 홍주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는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870년(고종 7)년에 동헌을 개축하고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안회당(安懷堂)이라는 편액(扁額)을 하사받았다.

▲ 홍주목사와 홍주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는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870년(고종 7)년에 동헌을 개축하고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안회당(安懷堂)이라는 편액(扁額)을 하사받았다.


안회당을 둘러보다가 뒤뜰에 있는 '신앙증거터' 라고 새겨진 비를 만나게 되었다. 홍성은 18~19세기 천주교 박해로 수백 명이 순교한 성지이기도 하였다. 안회당을 비롯한 홍주성 안팎이 모두 순교의 현장이었는데, 안회당 뒷마당에 있는 홍주순교성지인 신앙의 터 비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신앙증거터(목사의 동헌)

▲ 신앙증거터(목사의 동헌)


홍주목사의 동헌 터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목사의 동헌 앞에서 지도층 신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받았던 곳으로, 순교 선조들의 신앙이 깊게 배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이곳 신앙증거터에서 또 알게 되었다.

안회당 뒤뜰에는 관리들이 정사를 돌보다 쉬던 곳이라는 아담한 연못가의 정자 여하정과 연못에 드리운 거대한 왕버드나무가 있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여하정과 연못

▲ 여하정과 연못

연못과 느티나무

▲ 연못과 느티나무

여하정과 느티나무 그리고 연못

▲ 여하정과 느티나무 그리고 연못


홍성 여하정에서 바라본 안회당이다. 뒤로는 홍성군청 건물이 보인다.

내포문화의 중심 홍성여행에서 깊은 역사를 보다 사진


전국에서 원형대로 보존된 4개(태인동헌 : 전북 정읍, 무장동헌 : 전북고창, 천안동원 : 충북 괴산, 안회당)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동헌은 그 지역명에 동헌을 붙여 불리었으나 홍주동헌만 안회당이라 한 점이 특이하다. 이 안회당은 전화(戰火)가 많았던 홍주에서 여러 차례 재화(災禍)를 면한 건물로 충남 유일의 목도(牧都) 청사이다.

안회란 문구는 논어의 공야장편(公冶長篇)의 “老子安之 明友信之 小者懷之”에서 유래된 것 “노인을 평안히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하며 연소자를 사랑하여야 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홍성여행에서 뜻하지 않은 홍주아문과 안회당, 여하정 또 홍주성의 주문인 조양문
을 보고 홍성의 깊은 역사를  볼수 있었던 날이였다.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오시는 길
[홍성행]서해안고속도로 → 홍성IC → 29번 국도(홍성방면) → 홍성도착
[광천행]서해안고속도로 → 광천IC → 96번 지방도(광천/청양방면) → 광천도착
[350-704]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홍성읍 오관리 98) 홍성군청(TEL:041-63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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