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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폐합 대상이었던 모교 특색있는 문화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졸업하고 53년만에 찾아간 성당초등학교

2014.02.08(토) 19:25:58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는 도심에서 벗어나 촌에 자리잡고  송림으로 유명한 학교다.

학교 건물은 화려하지도 않고 널빤지로 벽을 하고 가리개도 없어서, 신발장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소복이 쌓여서 공부하다 말고 신발을 챙기느라고 떠들썩했다. 난로에 땔 나무가 없으면 따뜻한 양지쪽을 찾아서 널빤지로 된 벽에 기대서서 햇볕을 쬐다가 종이 울리면 들어갔다.

동생들을 돌보느라고 자주 빠지면서 다녔지만 학교에서의 생활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고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해가 12회였다. 2014년 에는 65회 째 졸업이란다.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동안은 교실과 운동장에서 뛰놀던 동창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그럭저럭 몇 해를 보내고 동창회를 창립하여 솔 나무가 우거진 교정에서 일 년에 한 번 8월 15일이면 총 동창회의에 참석했다. 그렇게 가보고 싶던 학교였다. 그러나 교실 안은 못 들어가고 운동장만 한 바퀴 돌고 오노라면 내가 앉아있던 자리가 궁금했다. 동창회에 여러 해 를 다니다 보니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통폐합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동창들은 학교가 폐교되면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했다.

내가 졸업 할 때 우리 반만 해도 90명이 넘었는데 이제는 전교생이 42명으로 줄어서 통폐합 대상이란다. 동창 한명이 학교 근처에서 살으니까 학교 소식은 만날 때 마다 전해준다.

나는 차를 타고 학교 옆을 지날 때면 고개를 차창에 기대고 학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저기 보이는 학교가 우리 학교유” 하고 자랑한다. 옴팡집 이라도 내 집이 좋듯이 보잘것없는 촌 학교지만 그렇게 나는 학교를 사랑한다.

어느 날 당진시내에 있는 동창이 전화가 왔다. 모교가 폐교 안 되려면 음악학교로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피아노가 여러 대 있어야 한단다. 12회 동창들 몇 명이라도 동참을 해서 피아노 한 대를 사서 기증 하자고 한다. “그려!” 나는 미루지도 않고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학교에 보탬이 된다면야’

그리고 작년 말 우리 동창들은 1박2일로 모임 을 했다. 만나면 언제나 초등학교 때 이야기만 한다. 남자아이들이 고무줄 끊어가고, 누가 제일 심술을 피었다는 등 밤 가는 줄도 모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동창이 하는 말 중에 성당초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서로가 들어오려고 해서 문이 좁다고 한다.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이유가 뭔데?”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였다. 행복 공감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생들의 인성과 창의성, 소질을 계발 할 수 있도록 도움 을 줘 방과 후 활동이 체계적이었다는 것이다.

스쿨버스도 운행하는가 하면 또 방과 후 늦게까지 돌봄 교실도 운영하여 내실 있는 하교로 변하자 학부모들이 선호하여 문이 좁아 졌단다. 그러잖아도 가보고 싶은데 학교 문이 좁아졌다고 하니까 더 보고 싶었다.

 동창을 불러내어 모교구경을 가자고 했다. 우리들이 왁자지껄 자주 걸어 다니던 오솔길로 오늘만큼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둘이서 찬찬히 구경하면서 걸어갔다. 오십 여년을 기다린 세월에 비하면 오늘 하루는 투자해도 괜찮다. 언제 또 다시 이 길을 걸어 볼 것인가?

 눈이오나 비가 오나 책 보따리를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육년을 걸어 다니던 오솔길은 매실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동창 말에 의하면 동네 경노회원들이 자금을 장만 하고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는 관광객이고 동창은 해설자 같았다.
학교를 가면서 전화를 했다.

 12회 졸업생인데 모교를 구경하고 싶어서 간다고 했다. 운동장에 들어서니까 운동회 할 때 용진문으로 나왔다 개선문으로 들어가던 솔 나무 세 그루는 그대로 있고 우물가 옆 소나무는 없어졌다. 어둡고 칙칙하던 학교도 알록달록 너무도 예쁘게 단장했다. 넓게만 보이던 운동장은 왜 그리 좁아보이던지,

우리들을 반겨주시고 안내를 하시는 선생님은 성기동 교감 선생님이셨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고개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고개를 들고 염치없이 학교를 안내해 달라고 했다.

아담한 독서실에는 얼마 던지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권정생 동화작가가 지은 몽실 언니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몽실이는 한국전쟁 극심한 이념 대립 등 우리현대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격은 사실적인 기록이며 처참한 가난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이웃과 세상을 감싸않은 한 인간의 성장기로 어른과 어린이가 두루 읽히며 출간 백만 부를 돌파했다. 총 동창회에서 기증한 피아노가 교실 가득 놓여있다. 옛날에는 풍금이라고 했다. 나는 저 풍금이 얼마나 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밖에 보이는 창고도 총 동창회에서 지어주었다고 교감선생님은 귀띔 해주신다.

  지금 후배들은 같은 교정에서 무용,  사물놀이, 민요, 장구, 피아노, 골프 등 활발한 활동과 오감만족 체험학습을 한다고 한다. 선배들이 다하지 못한 공부 후배들이라도 이 교정에서 맘껏 누리니까 더 바랄게 없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가 궁금해서 끝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증축하고 신설을 해서 그 자리는 없었다. 교감선생님이 졸업앨범을 보여 주었다. 만약에 학교가 폐교 되었다면 앨범도 어디론가 가야 했을 것이다. 앨범 이야기가 나오자 같이 간 동창은 설음이 복받친다. 사친회비 300원이 없어서 집으로 쫓겨 갔었단다. 교장선생님이 계시던 사택은 어린이 돌봄 교실로 늦은 시간까지 운영 한단다.

지역사회교육의 눈부신 교육발전을 이끌어 오신 분은 이능세 교장선생님이 계시기에 가능 했다고 교감선생님이 알려주신다. 2009년도에 교장 선생님이 오셨을 때는 학생수가 42명 이었는데 2014년 입학생이 더 많아져 110명이 넘는다고 한다. 성당초등학교는 타 학교에 비해 학부모, 동창회의와 돈독한 유대관계, 똘똘 뭉친 교직원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행복 공감 학교로 지정되어 현재 2년차 운영하고 있단다. 뵙지는 못했지만 훌륭하신 교장선생님이 모교로 오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통폐합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우리학교인 만큼 많은 후배를 배출하고 똑똑한 인재가 탄생하여 학교를 빛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자뻘 되는 후배들에게 까마득한 선배가 많은 축하와 찬사를 보내는 것도 모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통폐합 대상이었던 모교 특색있는 문화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사진
학교 정문

통폐합 대상이었던 모교 특색있는 문화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사진

깔끔하게 정돈된 복도

통폐합 대상이었던 모교 특색있는 문화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사진
행복공감 프로그램은  학교가 자리매김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함

통폐합 대상이었던 모교 특색있는 문화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사진

 아담하게  생겨 그늘막이가 되어주었던 운동장의 소나무

통폐합 대상이었던 모교 특색있는 문화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사진
학교의 전경
 

통폐합 대상이었던 모교 특색있는 문화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사진

아담하게 자리잡은 독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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