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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벼루의 최고봉 ‘남포벼루’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6호 보령 남포벼루 김진한 선생님

2014.01.17(금) 17:06:51남준희(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대천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충남 보령의 성주산은 통일신라시대 낭혜무염 선사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창한 유서 깊은 명산입니다.
성주산 중턱에 명찰 백운사가 있는데 인근의 광산에서 캐내는 돌을 백운상석(白雲上石)이라 하고 최상의 이 백운상석으로 만든 남포벼루가 국내 소장가들에게는 최고의 벼루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보물 제547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벼루 세 개 중 두 개가 남포벼루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국내 벼루의 최고봉 ‘남포벼루’ 사진


남포벼루 제작용 상석

▲ 남포벼루 제작용 상석


벼루제작용 돌을 자르는 거대한 톱날과 기계장치

▲ 벼루제작용 돌을 자르는 톱날과 기계장치


톱날의 크기가...

▲ 톱날의 거대한 크기가...


잘라 놓은 벼루 제작용 돌

▲ 잘라 놓은 벼루 제작용 돌


그래서 이번에는 충남무형문화재 제 6호 보령남포벼루 제작 기능보유자이자 3대째 벼루제작을 하고 있는 서암 김진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김선생님은 충남도지정 무형문화재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명장이시기도 합니다.
 
조선말기 김진한 선생의 조부이셨던 김형수 옹으로부터 당신의 아버지셨던 김갑용 선생이 벼루제작 기법을 배웠고 그것을 다시 3대째 김진한 선생이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할아버지셨던 김형수 옹께서는 다듬잇돌 장사를 하며 비석과 상석을 주문 생산해 생계를 꾸리셨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 꼼꼼한 성격의 아버지 김갑용 선생께서 자신에게 그 기술을 전수해 주셨는데 친구들은 ‘돌쟁이 집 아들’이라고 놀려댔다고 하는군요.

벼루제작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낡은 전기시설

▲ 벼루제작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낡은 전기시설


벼루 문양 원판

▲ 벼루 문양 원판


벼루제작 소도구들

▲ 벼루제작 소도구들


주문 제작 등 일정표

▲ 주문 제작 등 일정표


그러나 김진한 선생께서는 그런 놀림에 아랑곳 없이 오로지 7세부터 망치와 정을 갖고 돌을 깨며 놀다 13세부터 정식으로 벼루 조각을 배웠으니 이것이야말로 평생의 업이 된 것입니다.
 
좋은 벼루를 만들고자 보령 성주산을 헤집고 다니며 원석을 찾아 헤매고 다니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꿈에 원석에 새겨진 문양까지 떠오르며 나타난다고 하는군요.
 

 

정성을 다해 벼루제작을 하고 있는 김진한 선생님

▲ 정성을 다해 벼루제작을 하고 있는 김진한 선생님

 

옆의 제작도구가

▲ '한땀, 한땀...'

 

혼신의 힘을 다해...

▲ 혼신의 힘을 다해...


 

경건하고 바르고 곧은 마음으로 임하신다 합니다

▲ 경건하고 바르고 곧은 마음으로 임하신다 합니다


“벼루를 만들때는 옷깃을 여밉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조각을 새기게 되죠. 용이든 봉황이든, 최선을 다해 문양을 새겨 넣는데 내가 어느정도의 혼을 불어 넣느냐에 따라 벼루의 생명과 가치도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내 영혼과 혼신의 힘을 다해 새겨 넣은 문양은 그것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것 같아요. 용이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살아있는 느낌... 그런거 말이죠. 벼루를 만드는 마음은 그래서 항상 경건하고 바르고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언서판이라고 하잖아요. 좋은 글씨도 좋은 벼루에서 나온다고 믿어요. 그런 분들에게 주는 벼루이니 내가 대충 만들면 안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돌 속에 흰 구름과 사군자(매, 난, 국, 죽) 무늬 같은 것을 새겨 넣고 나면 거기서 맑은 풍경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게 바로 제가 만드는 남포벼루입니다.”
 
김진한 선생님의 벼루 만드는 철학은 분명했습니다.
경건하고 바르고 정직한 마음으로 임하되, 매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한다는 것이죠.
 
가장 좋은 벼루는 아무리 먹을 갈아도 원석이 쉽게 닳지 않고 깨어지거나 갈라지지 않음은 물론 부드럽게 갈리면서도 먹 알갱이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갈아 놓은 먹물의 수분을 벼루가 밀어내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 있어야 명품 벼루라고 하네요.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음(땅 : 벼루)과 양(하늘 : 먹)의 조화를 적절히 배합시킬 때 최상품의 벼루는 탄생된다는데 김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런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남포 벼루를 만들어 오셨다고 합니다.
 
 

전수관

▲ 전수관


 

전수관 내부

▲ 전수관 내부


 

상

▲ 지난 2000년 제4회 직업능력개발촉진대회에서 입상한 장면

 

완성된 벼루들

▲ 완성된 벼루들

 

벼루 제작용 망치

▲ 벼루 제작용 망치

 

종류별로 다양한 벼루제작용 칼

▲ 종류별로 다양한 벼루제작용 칼


벼루는 낙랑 때부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때 성리학의 성행으로 벼루의 사용도가 넓어졌고 따라서 기술도 발전하게 되었는데 1961년 이후에는 수출도 하고있다 합니다..

제작과정은 오석을 가져다가 손으로 가공을 한 후에 각기 다른 문양과 무늬를 조각하여 완성하는 것인데 무늬로는 용, 봉황, 소나무, 대나무 등 전통적인 무늬를 조각하게 됩니다.
 
명품 벼루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데는 최소한 1달에서부터 최장 3개월까지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벼루의 가격은 작품이 완성된후 결정된다고 하네요.

 

벼루 제작에 속살이 튼 김진한 선생님의 손.

▲ 벼루 제작에 속살이 튼 김진한 선생님의 손.


평생 벼루제작에 힘을 쏟느라 갈라지고 닳은 김진한 선생님의 투박한 양손을 보노라니 많이 아프실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일단 칼을 잡으면 어느새 고통도 사라진디고 합니다.
평생동안 벼루 만들기에 정성을 다한 삶이 그대로 투영된 선생의 손을 보면서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를 전승 발전시켜 오시는 분들의 소중함을 다시 느껴 봅니다.

남포벼루 전시관 : 충남 보령시 청라면 의평리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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