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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악으로 공동체를 이끈 부여 세도 두레풍장

기획-충남의 장인8

2013.11.30(토) 08:27:31남준희(skawnsgml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28호인 세도 두레풍장을 취재하러 가기로 마음먹고 나니 필자의 어릴적 고향에서 마을 형님들과 어르신들이 풍장놀이 하던 일이 생각나 은근히 설레었습니다.
 
부여의 무형문화재는 다른 몇가지가 더 있는데 그중 두레풍장은 같은 무형문화재 28호인 산유화가와 밀접한 관계입니다. 사실상의 쌍둥이 형제관계라고나 할까요.

왜냐하면 두레풍장과 산유화가 모두 전통의 모내기부터 김매기와 벼베기까지의 과정에서 같이 어우러져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두레풍장이 말 그대로 북과 징, 꽹과리, 장구 등을 이용한 풍악을 이용한 오락적 놀이라면 산유화가는 옆에서 흥을 돋구는 민요 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수관도 한 건물을 같이 쓰고 계셨습니다.
 

두레풍장 전수관. 산유화가와 함께 사용중.

▲ 두레풍장 전수관. 산유화가와 함께 사용중.


오늘은 그중 먼저 두레풍장부터 보겠습니다.
두레풍장은 부여 세도면 동사리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마을공동체 놀이입니다.

이곳 동사리 마을은 남향의 넓은 들판에서 논농사를 많이 지어 왔는데 이 동네에서는 농사철을 본격적으로 맞게 되면 동네 전체가 나서서 두레조직을 만들어 일을 해왔다는군요.

예를 들어 금년 5월10일 철수네가 첫 번째 모내기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5월30일 영희네가 마지막 모내기를 한다면 그 기간동안 함께 모내기를 할 사람들을 모아 두레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아진 모내기 농가가 30호라면 이 30호의 남녀 장정들이 함께 모여 모내기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풍장도 울리고 민요도 부르며 농사의 피로를 풀어왔던 것이지요.
그때 두레농사 짓는 것을 “두레먹는다”라고 했다는군요.

두레풍장 전수관내

▲ 두레풍장 전수관내 연습장
 

해마다 농번기때는 칠판에 판서까지 하면서 맹연습

▲ 해마다 농번기때는 칠판에 판서까지 하면서 맹연습


협업과 공동오락이 잘 이루어진 세도 두레풍장은 질굿가락, 칠채가락, 논풍장가락, 쩍쩍이가락, 두렁질굿가락, 자진마치가락, 마당밟이가락, 두마치가락, 매조지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락’이나 ‘판제’ 그리고 ‘복식에 이르기까지 충청도 풍장의 전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이 풍장은 최초 무형문화재이셨던 서재억 선생님이 지난 2006년에 작고하셔서 현재는 윤구병, 권현주 선생님 두분이 보유자로 전승되고 있는데 제가 만나 뵌 분은 윤구병 선생님이십니다.

충남도지정 두레풍장 무형문화재 제 28호 윤구병선생님

▲ 충남도지정 세도 두레풍장 무형문화재 제 28호 윤구병선생님
 

자택의 자랑스런 무형문화재 지정 명패

▲ 자택의 자랑스런 무형문화재 지정 명패
 

자택의 가훈이 인상적입니다

▲ 자택의 가훈이 인상적입니다


“두레 알잖아요? 두레. 그거 우리 전통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거지. 옛날에 농사 지어본 사람 치고 두레 안해본 사람 없을걸요? 두레에 의한 공동노동은 모내기부터 시작해서, 물대기, 김매기, 벼베기, 타작 등 경작의 전과정에 걸친 것인데 그중에서도 한번에 많은 품이 드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반드시 두레가 동원되었어요”
 
운구병 선생님이 두레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두레는 공동노동조직이기도 하면서 편싸움, 풍물겨루기, 힘자랑 등의 오락에서도 큰 몫을 했으며, 이를 통해서 노동의 피곤함을 해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도 두레풍장놀이가 시작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금강변의 넓은 들판을 중심으로 하여 세도 전역에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두레풍장에 사용되는 전통 악기들

▲ 두레풍장에 사용되는 전통 악기들 진열
 

풍장에 쓰는 북

▲ 풍장에 쓰는 북
 

장구

▲ 장구
 

징

▲ 징


특히 두레는 모내기때보다 김매기 때 가장 많이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같은 수리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 마을에서는 하지(夏至) 즈음에 모내기를 시작하는데요.

모내기를 마치고 한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이 바짝 마르고 논바닥이 갈라집니다. 가뭄이 심하면 모는 자라지 못하고 피가 자라서 모와 비슷한 발육 상태를 보이죠. 이때 비가 내리면 피의 성장 속도가 빨라 단기간에 김매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두레를 구성하는겁니다.

풍악으로 공동체를 이끈 부여 세도 두레풍장 사진

▲ "둥, 두둥" 직접 북을 한번 때려 봅니다


그러면 마을의 좌상이 동네 논을 모두 돌아보고 먼저 김맬 논의 순서와 하루 작업량을 결정한 뒤 대개 물이 금방 마르는 다랭이 논부터 김을 매기 시작합니다. 두레는 좌상(1명)을 필두로 공좌상(1명), 총각대방(1명), 역원, 꼼뱅이, 기(旗)잡이(6명), 풍물패(4명)로 구성되고 김매기는 처음 아시매기, 두번째 두벌매기, 마지막 만물 이렇게 3번 한다고 합니다.
 

두레풍장 전 고사지내기

▲ 두레풍장 전 고사지내기
 

지난 봄에 있었던 실제 두레풍장 행사 모습

▲ 지난 봄에 있었던 실제 두레풍장 행사 모습


두레풍장의 행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두레고사 : 두레가 시작되기 전 동네사람들이 마을에 모여 제물을 차리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이 들도록 기원합니다.
2. 김매기 :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김매기 때는 소리꾼의 지휘아래 일의 흥취를 북돋워 줍니다.
3. 힘자랑 : 농기계가 없던 시절, 장사가 최고였죠. 마을사람들끼리 힘자랑을 통해 노동의욕을 고취시켰다고 합니다.
4. 풍장 겨루기 : 풍물을 치면 소리가 삼십리 밖에까지 나간다고 하네요. 풍장소리가 나면 그 자체를 축제로 여길만큼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고 합니다.
5. 깃쌈 : 힘자랑, 풍물겨루기로 승패가 가려지지 않으므로 마지막 방법으로 깃쌈을 벌였답니다. 기를 넘어뜨리거나 꿩작목을 빼앗는 동네가 형 두레가 되며, 패하는 편은 아우 두레가 되어 기를 눕혀 승복을 표시한답니다.
6. 화합(뒷풀이) : 승자와 패자 없이 다같이 서로를 위로하고 결속을 다지는 화합의 한마당 축제가 펼쳐집니다.
세도 두레풍장은 1996년 9월 제1회 충남 민속예술경연대회와 1997년 10월,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참가하였다고 하네요.
 
현재 전수관에는 아직 준비를 못해 많은 자료와 물품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마을 어르신들과 협의해서 두레풍장과 관련된 농악도구와 전통자료들을 찾아 전시할 계획이랍니다.

내년에는 모내기 즈음에 실제 두레풍장 놀이를 구경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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