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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전사일에 다시 보는 장검과 검명(劍銘)

1598년 11월19일, 현충사 장검의 검명(劍銘)을 되새겨 보며

2013.11.19(화) 11:51:28임중선(dsllew8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598년 11월19일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 노량해전.

이렇게 말하면 벌써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시는 분들 있을 것입니다. 우리민족 최고의 영웅이자 조선수군의 3도수군통제사이였던 해군 제독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7년의 지리한 임진왜란을 끝내면서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신 날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컥 하며 치밀어 오릅니다.
 

현충사를 찾은 관람객들

▲ 현충사를 찾은 관람객들


노란 단풍이 흐드러지게 아름다움

▲ 노란 단풍이 흐드러지게 아름다움


북적이는 관람객

▲ 북적이는 관람객


얼마전 노란 은행나무 단풍이 흐드러지게 물든 주말에 현충사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관람객들이 현충사에서 충무공의 얼과 뜻을 기리고, 당신의 위대한 애국애족 정신을 배우기 위해 찾으셨더군요.

저는 현충사의 많은 유물들 중 이번에 뜻 깊은 한가지를 도민들과 충남넷 독자분들께 제대로 상세하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현충사에 보관 전시중인‘충무공 장검’말입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긴 칼 옆에 차고 수루에 홀로 앉아”의 그 장검이 바로 현충사에 있습니다.

보물 제 326호 충무공 장검

▲ 보물 제 326호 충무공 장검


예리한 칼날

▲ 예리한 칼날


충무공 장검은 국보 바로 아래인 보물 제32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람중에 어느 여성 관람객이 “저 칼, 진짜 맞아? 모조품 갖다 놓은거 아냐?”라며 같이 온 친구에게 묻더군요. 다행히 대답을 해 주는 친구가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잘 대답해 주었습니다.

현충사에 있는 장검은 실제 이순신 장군이 가지고 계셨던 칼이고 진품이며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칼은 실제 전장에서 쓴 것은 아니고, 장군께서 항상 곁에 둔채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데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일종의 의장용이기도 했구요.
이 장검은 1594년 4월 한산도 진중(陣中)에 있을 때 당시 칼을 만드는 대표적인 명장인 태귀련(太貴連)과 이무생(李茂生)이 만든 것이라 합니다. 전란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때였습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 一揮掃蕩 血染山河


검명 해설

▲ 검명 해설


두 개의 칼의 길이가 무려 197cm와 196.8cm이고 칼집을 제외한 무게는 4.32kg과 4.205kg이라 하네요. 무척 크죠.
칼날에는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친필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칼자루 속에 “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칼자루

▲ 칼자루


칼자루만 길이가 60cm에 달하며 두께도 직경이 5cm 가까울 만큼 깁니다. 칼자루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붉은 옻칠을 한 어피로 덮고 그 위에 다시 검은 옻칠을 한 가죽끈을 X자 모양으로 묶었습니다.

칼자루의 끝, 즉 칼머리에 덧댄 뒷매기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좁아드는 원통형인데 칼자루와 칼날 사이에 끼워서 손을 보호하도록 만든 코등이는 국화 문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칼집 끈은 무거운 장검을 매달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두터운 소가죽 위에 삼베를 대고 다시 사슴가죽을 씌운 것이라 합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모르는 저들을 보노라면 이 장검의 끝이 따올라...

▲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모르는 저들을 보노라면 이 장검의 끝이 떠올라...


이 장검의 검명을 읽노라면 요즘 정말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고, 인류 존엄성에 대한 한치의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저 열도 인간들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집니다.
이 검명대로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고 싶고 산하를 떨게 하고 싶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어린 반성을 모르는 모든 일본인들에게 이 칼의 검명을 적어 편지 한통씩 띄워 보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벌벌 떨것입니다.
 

조선 수군이 사용한 대포

▲ 조선 수군이 사용한 대포


왜군이 실제 사영한 조총

▲ 왜군이 실제 사용한 조총


조선 수군의 전투장면

▲ 조선 수군과 왜군의 전투장면


언젠가 전문가들이 임진왜란에 대해 정확하게 알자며 학술대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해군사관학교 교수, 해군 전문가, 임진왜란 전문가가 다같이 참석해서 주제발표를 한 것이었는데 거기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전적을 정확하게 알자며 밝힌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때까지도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을 거뒀다고 다들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날 전문가 교수님은 그것은 대략적인 횟수만 정리했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구분지을 필요가 있다며 “임진왜란의 대표해전은 총 21회이고, 이중 충무공은 총 17회 대표해전에 참가해서 전승했고, 세부해전 49회 중 충무공은 45회 참가해 전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충무공의 공식 전적은 62전 62승이다”고 하십니다.

정말 위대한 신적 영웅이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최후의 노량해전. 장군이 쓰러지셨습니다. 그런데

▲ 최후의 노량해전. 장군이 쓰러지셨습니다. 그런데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598년 11월19일 오늘,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 노량해전,
필사적으로 탈출로를 뚫으려는 최후의 일본 연합함대 500척과 전투를 개시하여 4시간 동안 치열한 해전을 벌입니다.

오전 8시, 이미 200여척 이상의 함선이 격파되어 패색이 짙어진 일본 수군은 잔선 100여 척을 이끌고 퇴각하기 시작했고 조-명 연합함대가 추격을 개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도주하는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장군께서는“싸움이 한창 진행중이니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하시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필생즉사, 필사즉생

▲ 영웅의 간결한 한마디 "필생즉사, 필사즉생"


영웅의 영정

▲ 영웅의 영정


장군의 전사일에 다시 당신의 영정과 친필 검명을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현충사 경내에 세워진 장군의 친필 '필생즉사, 필사즉생'을 다시 한번 더 바라봅니다.

이런 불세출의 영웅, 언제 또 나타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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