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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전부인 고즈넉한 부여 대조사

2013.08.11(일) 10:29:13점생이(uiweyoi3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여 대조사는 참 조용한 절이었습니다. 충청남도의 유명한 사찰을 꼽으라면 공주의 갑사, 동학사를 비롯해 마곡사와 수덕사, 관촉사 등을 거론할수 있겠는데 대조사는 이런 사찰에 비해서는 규모나 사세(寺勢)면에서 그다지 큰 절은 아닙니다.

 많은 불자들이 번잡하게 오가는 것도 아닌, 산중에 고즈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용한 절이었습니다.

성흥산 숲속의 대조사

▲ 성흥산 숲속의 대조사
 

경내에선 새소리, 풀벌레 소리만...

▲ 경내에선 새소리, 풀벌레 소리만...


 누군가 들어와 진중한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하고 있다면 너무 미안해서 옆에 다가서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한 곳, 풀벌레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만이 유일한 외부 음악으로 들릴뿐인 이곳 대조사에 다녀 왔습니다.

 대조사는 공주 마곡사의 말사였다 합니다.

 부여군 남쪽에는 임천면이 있고 이 임천면을 감싸고 있는 성흥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충청남도의 젖줄인 금강을 따라 펼쳐진 넓은 평야에 둘러싸인 성흥산 정상에 오르면  부여, 논산 , 강경, 그릭 호남 땅인 군산과 장항에 이르는 금강하류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사찰 경내 뒤에서 본 대조사. 멀찍이 앞에 성흥산 줄기와 산자락이...

▲ 사찰 경내 뒤에서 본 대조사. 멀찍이 앞에 성흥산 줄기와 산자락이...


 성흥산 정상에는 백제시대에 축조한 성흥산성이 있다 하는데 거기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그 전 산 중턱 오른쪽으로 대조사 가는 길이 나옵니다.

 대조사는 백제 성왕 5년에 승려 겸익이 5년간에 걸쳐 창건했다 합니다.

 사적기에는 527년(성왕 5)에 담혜가 세운 것으로 되어 있고, 부여읍지에는, 백제 불교를 중흥시킨 겸익이 세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기록이 다른 이유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6C초에 건립된 것은 분명하다 합니다.
 그 뒤 고려 원종 때 장로인 진전(陳田)에 의해 중창된 이래, 여러 차례 중수와 개수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대조사를 창건한 사람으로 알려진 겸익은 인도를 다녀온 구법승려(부처의 진리를 구하는 승려)였다 합니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다가 번역하여 백제의 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지요.

 대조사 창건 설화에는 겸익의 이야기가 이렇게 전합니다.

 그가 큰 바위 아래서 수도 중에 관음조(觀音鳥)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바위 위에 앉자 놀라 잠을 깨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었기에 그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운 후 절 이름을 대조사라 하였다고 하네요.

대조사 창건에 관련된 또 다른 전설이 있습니다.

백제 성왕 때, 성흥산 토굴에서 수행하던 노스님이 있었는데 참선 중에 봄볕이 따사로워 잠시 낮잠을 청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꿈에 눈부신 황금빛의 큰 새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날아와 스님의 토굴 앞 큰 바위에 앉았는데 황금빛 큰 새를 보는 순간 관음보살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똑같은 꿈은 며칠간 반복되면서 소문이 퍼졌고, 이 소문을 들은 백제 성왕이 사비로 천도할 시기가 왔음을 직감하고 이곳에 사찰을 짓도록 하여 이것이 황금빛 큰 새를 상징하는 대조사(大鳥寺)가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절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게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은 사찰의 본당인 대웅전 등 요사체 전부를 만나기 한참 전, 그 앞에 먼저 세워져 있고 이 일주문을 지나 가야만 절의 본당을 만날 수 있죠.

용화

▲ 용화보전
 

산신각

▲ 산신각
 

원

▲ 향적당
 

앙

▲ 명부전


 그런데 대조사는 일주문이 없는게 특징입니다. 또한 절의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게 사천왕상인데 이 또한 배치되어 있지 않고 불이문도 없습니다.
  다만 관음전, 명부전, 산신각, 요사채, 미륵석불과 용화보전, 석탑이 크지 않은 사찰 경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통보전이 너무 노후되어 작년에 새로 건립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다른 건물들에 비해 가장 새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뒤 왼쪽에서 바라본 원통보전

▲ 뒤 왼쪽에서 바라본 원통보전
 

원통보전 관음불

▲ 원통보전 관음불


 원통보전에는 관음보살상과 후불탱화가 있고, 원통보전 앞에는 3층석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보통 관음보살은 얼굴을 반듯하게 든 상태에서 불자들을 굽어 보고 계신데 이곳 대조사 관음보살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계십니다.

3층석탑

▲ 3층석탑
 

원통보전 쪽에서 본 3층탑

▲ 원통보전 쪽에서 본 3층탑
 

3층탑 기단부

▲ 3층탑 기단부


 3층탑은 2층의 기단이 탑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데 위에 놓여진 탑신 3층의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합니다. 원래 탑신 없이 옥개석(屋蓋石) 3장만 남아 있었는데, 다행히도 1975년 이 부근에서 탑신이 발견되어 원래의 모양을 갖춰 다시 세울수 있었다 합니다. 이 탑의 형태로 보아 제작 시기는 고려 초기이고 높이는 약 5.2m라 합니다.

논산 관촉사 미륵불과 너무 흡사한 대조사 미륵불입상

▲ 논산 관촉사 미륵불과 너무 흡사한 대조사 미륵불입상
 

나무 ? 사이의 미륵불

▲ 나무 ? 사이의 미륵불


 용화보전 뒤에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습니다. 보물 217입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는 순간 논산 관촉사의 미륵불과 형태가 상당히 흡사하여 처음에는 "관촉사 미륵불이 왜 여기와 있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불유정

▲ 불유정


 일주문과 사천왕상, 그리고 많은 불자와 관광객이 오가는 일반적인 사찰이 아닌, 조용하고 고즈넉한 절 여행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부여 대조사로 가 보세요. 국보급 석조미륵보살 보물을 만날수도 있고, 운 좋으면 여행자 본인 외에 단 한명도 만나지 않는 완전 호젓한 사찰체험을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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