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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했던 금산 육백고지 빨치산 토벌전투를 아세요?

2013.06.24(월) 14:58:43임중선(dsllew8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루 말할수 없는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1950년6월25일에 발발한 한국전, 바로 내일이 그날입니다.

 저는 그때 세대가 아니어서 직접 경험은 못했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여러 전쟁은 물론이려니와 책과 영화 등을 통해 보면 전쟁의 참혹함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듯 합니다.

 제가 사는 이곳 금산에는 남이면 역평리와 건천리에 걸쳐 산줄기가 이어져 있는 육백고지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 숨어들어 저항하던 빨치산이 있었고 오랜시간동안 군.관.민이 합동으로 토벌작전을 벌이면서 2,000명 이상의 빨치산을 사살하거나 생포 하였으나, 반대로 이들을 토벌하면서 우리의 경찰과 군인, 민간인등도 많이 전사하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육백고지전승기념탑 안내문

▲ 육백고지전승기념탑 안내문



전승탑이 멀리 보입니다

▲ 전승탑이 멀리 보이고 남녀 추모객이 보입니다.
 

기념탑 가까이에서.

▲ 기념탑 가까이에서.



탑 바로 앞 오른쪽에 세워진 전승기념비(전사자 명단이 새겨짐)

▲ 탑 앞 오른쪽에 세워진 참전 공적비(전사자 명단이 새겨짐)
 

탑 바로 앞 왼쪽에 세워진 충혼비(전사자 명단이 새겨짐)

▲ 탑 앞 왼쪽에 세워진 충혼비(전사자 명단이 새겨짐)


 그곳이 바로 이 육백고지 기슭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지금 육백고지전승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산의 이름은 백암산이고 과거에 쌓았던 백령성도 있습니다.
 빨치산이 이곳으로 숨어든 이유는 이곳이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탑 위치에서 바라본 아랫녘.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알수 있을만큼 높고 험준한 산맥이 펼쳐져 있다.

▲ 탑 위치에서 바라본 아랫녘 금산방향.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알수 있을만큼 높고 험준한 산맥이 펼쳐져 있습니다.
 

▲ 탑 위치에서 바라본 아랫녘 무주방향. 역시 높고 험준한 산맥이 펼쳐져 있습니다.

▲ 탑 위치에서 바라본 아랫녘 전묵 완주방향. 역시 높고 험준한 산맥이 펼쳐져 있습니다.
 

험준한 산세

▲탐쪽에서 바라본 아랫쪽 능선과 험준한 산세


 이 오항고개와 배티재 두 고개를 넘지 않으면 험준한 산을 그대로 넘어야 비로소 건천리에 닿을 수 있기 때문에 두 고개를 이용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즉 지금도 북쪽으로 빠져 오항 고개를 넘거나 남쪽으로 나 있는 배티재를 넘어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서 빨치산들이 전쟁중 패퇴하여 북으로 올라가다가 퇴로가 막히자 그 동조자들과 함께 숨어 지내며 저항한 것입니다.

 그러니 국군에게는 천혜의 요새에 숨어든 빨치산을 소탕하기까지 많은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형 덕에 백암산을 중심으로 건천리를 장악한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이 민간인과 경찰, 군인 합동토벌대의 공격을 피해 무려 1년간 저항하며 버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장소에서 서로 밀리고 밀리는 접전을 1년여간 펼쳤으니 그 피해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당시 1951년 5월에 마침내 우리 군은 민·경·군 3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백암산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념탑을 배경으로 앞쪽으로...

▲ 기념탑을 배경으로 앞쪽으로...
 

탑 바로 앞에서...

▲ 탑 바로 앞에서...


 해발 650m의 백암산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하고 처절했던 이 전투는 1952년 6월까지 1년여 동안 계속 이어졌고, 양쪽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전투는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전투가 바로 금산에서 벌어진 공비토벌 작전으로 민, 경, 군 호국용사들이 피 흘리며 격전을 벌인 육백고지전투인 것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전투에서 양쪽을 합쳐 모두 2,563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에 빨치산 2,287명이 사살되고, 1,025명이 생포되었으며, 경찰 184명, 군인 20명, 민간인 72명 등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양쪽 다 실로 아주 처절한 희생을 치룬 전투가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후 1991년에 우리 금산군에서 나서서 이 배티재 고갯마루 언덕에 육백고지전승탑을 세우고 전승탑 앞으로 충혼비와 육백고지참전공적비를 나란히 세운 것입니다.

전사자 명단

▲ 전사자 명단
 

전사자 명단

▲ 공적비에 새겨진 전사자 명단
 

전투중 순직한 경찰관 명단

▲ 전투중 순직한 경찰관 명단


  보시는바와 같이 수많은 호국 영령 전사자들의 이름이 이 기념탑에 새겨져 있습니다.

육백고지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민간인, 경찰관, 군인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묵념을 드리며, 이 전투에 참여하여 고귀한 승리의 위업을 세운 모든 분들의 노고와 노력에 똑같은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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