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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궁녀의 절개를 기린 궁녀사

부여 부소산 외딴 곳에 은둔하듯 자리잡고 있다

2013.06.05(수) 12:50:01길자네 자스민(sdkjflf332@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나라 어느 지역에 가든 역사의 현장과 그 흔적은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당찬 승리의 현장이라면 기쁨과 환호가 가득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현장이 보전돼 있을 것이고, 의기와 도전이 넘치는 곳이라면 또한 그런 상징성을 담아 기념비를 세우거나 추모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여에는 백제 멸망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은 사당이 하나 있습니다.

 부여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부소산. 백제의 옛 영화화 슬픔을 모두 안고 있는 곳이자 어디든 파기만 하면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그 곳.

 이 부소산(부여읍 쌍북리 4번지)은 사적 제5호 부소산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높이라야 겨우 106m의 얕트막한 산입니다. 성둘레는 약 2.2km 정도입니다.
 부소산 저기 한쪽에는 궁녀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부소산에는 낙화암이 있고, 고란사가 있는 정도로 알텐데, 부소산에 들르시게 되면 궁녀사도 한번 둘러 보실것을 권해 드리며 궁녀사 이야기좀 하겠습니다.

 부소산성에는 당시에 백제군의 군량미를 비축하던 창고인 군창지가 있고, 여러 절터와 건물터 같은 유적이 참 많습니다. 산 중간중간에 역시 사자루, 영일루, 반월루 같은 누각도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낙화암에서 백제 궁녀 3천명이 나당 연합군에게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백마강에 몸을 던진 일. 그 충절과 절개를 추모 하기 위해 만든 사당이 바로 궁녀사(宮女祠)입니다.

궁녀사를 가는 길에 무수히 쏟아져 내린 하얀 꽃

▲ 궁녀사를 가는 길에 무수히 쏟아져 내린 하얀 꽃


 궁녀사는 부소산에 올라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면 고란사와 낙화암을 보게 되지만 중턱쯤에서 오른쪽으로 태자숲길을 따라 2km정도 걸어가면 됩니다. 가는 길 내내 곳곳에 이렇게 하얀 꽃이 무수히 떨어져 길을 아름답게 꾸며놓았습니다.

외딴 곳에 은둔하듯 자리잡고 있는 궁녀사

▲ 외딴 곳에 은둔하듯 자리잡고 있는 궁녀사


 아주 외딴곳에(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조용히 은둔하듯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이른 아침 안개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궁녀사는 주위의 울창한 숲속에 외롭게 서 있습니다.

궁녀사 앞 외삼문

▲ 궁녀사 앞 외삼문


궁녀사 안내 표지

▲ 궁녀사 안내 표지


 궁녀사를 가기 위해 만나는 외삼문입니다. 외삼문 앞에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고 솟을 대문이 힘차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3천궁녀의 넋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궁녀사 본당

▲ 궁녀사 본당과 잔디밭 안뜰


 외삼문을 지나 궁녀사 본 사당으로 접어듭니다. 잘 가꾼 잔디가 있는 뜰이 있지만 추모객이 많지는 않아 주위에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립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쓰셨다는 궁녀사 현판

▲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쓰셨다는 궁녀사 현판


 宮女祠. 현판입니다. 공부하면서 알았는데 이 현판은 당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썼다고 하는군요.

궁녀사 내부

▲ 궁녀사 내부


3천궁녀를 대표하는 3인의 궁녀도

▲ 3천궁녀를 대표하는 3인의 궁녀도


 사당 가까이 다가서 보니 안에는 참배할 수 있는 공간과 궁녀의 모습을 그린 영정인 궁녀도가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궁녀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꽃다운 나이에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생각을 해 보니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도...

 조용히 참배를 마치고 나와 이번에는 낙화암으로 갑니다. 사실 낙화암은 한두번 가본 곳은 아니지만 부여 사람들은 이렇게 잘 가꿔지고 걷기 좋은 부소산성 전체를 역사공부 삼아 한바퀴씩 도는 것을 즐깁니다.

 궁녀사에서 낙화암까지는 여자 걸음으로 대략 30분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궁녀사를 참배했으니 낙화암도 당연히 보고싶어집니다.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낙화암 백화정

▲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낙화암 백화정


백화정 바로 앞에 서 있는 천년송

▲ 백화정 바로 앞에 서 있는 천년송


 낙화암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그 모습입니다. 옆에는 낙화암 백화정을 지키며 3천궁녀의 넋을 달래는 천년송이 우뚝 서 있습니다.

 낙화암까지 보고 돌아 나오며 문득 오래전 학창시절에 역사선생님이 해 주신 여담이 떠올랐습니다.

 “궁녀사의 이름을 기왕이면 충령사, 충절사, 혹은 충의사나 충의각, 충혼각 같은걸로 하지 왜 궁녀사라 했을까”

 그냥 든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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