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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 정산의 기미의사 권홍규 선생 순열비를 찾아

건국훈장 애족장까지 받으신 애국 열사이십니다

2013.06.04(화) 23:17:35마알간 행복세상(sajgjas@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6월은 무척 남다릅니다. 다른 어느나라보다 유난히 외침을 많이 받은 까닭에 무수히 많은 애국 선각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장 큰 원흉은 물론 일본인들이었고, 그 외에도 민족적 재앙을 불러왔던 6.25 한국전과 여러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애국지사와 오래전의 수많은 의병들. 그래서 우리들 모두 이분들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갖자는 뜻에서 6월6일 현충일을 제정했고, 6월 내내 호국 보훈의 달로 지정해 놓았습니다.

 현충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네요.

 해마다 이 6월에는 소중한 가족을 조국에 바치고 쓸쓸히 살아가는 유가족들의 가슴속에는 그날의 상흔이 생생하게 되살아 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웃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든 것이 그분들의 피와 목숨을 버린 덕분이고, 이국의 황량한 들판이나 이나라 어딘가 이름없는 산기슭에 누운 그분들의 외로운 넋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결국 우리는 끝내 좌절하지 않고 오늘날 부국을 이루었고, 그래서 우리에게 그런 터전을 만들어 주신 애국 선열들께 다시금 깊이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현충일에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이순신 장군 등 우리 충남에 계신 분들의 사당에는 많은 분들이 찾아가 뵙고 감사의 묵념을 올릴것으로 압니다.

 이렇게 너무나 큰 일을 하신 분들뿐만 아니라 저는 오늘 아무도 잘 알지 못하는 우리 고장의 애국 열사 한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청양군 정산면사무소 앞에 국가 보훈처가 세운 기미의사 권홍규 선생 순열비

▲ 청양군 정산면사무소 앞에 국가 보훈처가 세운 기미의사 권홍규 선생 순열비


 충남 청양군 정산면 면사무소 앞에는 이렇게 <기미의사 권홍규 선생 순열비>라는 푯말과 함께 이분의 뜻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권홍규 선생은 이곳 충남 청양군 정산 사람들 아니면 누군지 잘 모르는 분입니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이분의 활동상을 들여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권홍규 선생은 청양군 목면 안심리 건지동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선비가문에 태어났기에 지식이 있었고, 그래서 목면 바로 옆인 정산면 향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계셨다고 합니다.

권홍규 선생의 활약상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 권홍규 선생의 활약상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러던중 1919년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메아리 칠 때 선생께서는 정산 장날을 기해서 분연히 앞장을 서서 자주독립을 외쳤다고 합니다.

 혼자가 아닌, 많은 군중들을 이끌고 친히 맨 앞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선생에게 일본 군들이 총질을 해댔고 선생은 그 자리에 쓰러져 순국하셨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1919년 4월 5일이었고 선생의 나이 60때이셨다고 하네요.

  당시에 선생께서는 의거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굶주릴 가족들을 생각해서 미리 쌀 한말을 마련해 집에 두고 만세운동을 하기로 한 장터로 나오셨다고 하네요.

마지막까지 가족을 챙기려 했던 어버이로써의 정도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선생을 추모하는 추념탑

▲ 선생을 고결한 뜻을 추모하는 순열비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납니다.

선생의 주검이 집으로 돌아오고, 그 사실이 이마을 저마을에 알려지자 순식간에 근처 정산면, 목면, 장평, 청남 등지에서 조문객들의 행렬이 밤늦게까지 끊이지 않자 일본군들이 긴급 출동해 장례 행렬에 무참히 총을 쏘아댔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6명이 쓰러져 죽고, 선생의 딸은 일본군의 칼날을 잡고 저항을 하다가 네 손가락이 절단되는 비극을 맞았다고 합니다.

삼일운동

▲ 선생의 순열비 바로 뒤에 함께 세워진 정산 삼일 만세운동 기념탑


 결국 나중에 선생의 가족은 일본 경찰의 감시와 학대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해방후 이곳 면민과 청양군민들의 힘을 모아 이렇게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께서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셨다 합니다.

이렇게 소리없이 순절한 애국 지사들 덕분에 우리는 8.15 광복을 맞이하였고 오늘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금 이번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이나라를 지켜 내신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애국 선열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묵념을 드리며 그 깊고 의로운 넋을 기립니다.

 “그 뜻을 받들어 이 나라를 잘 지켜낼 것이며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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