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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월남파병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2013.06.03(월) 13:22:28임종영(limgy200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월남참전 기념탑

▲ 월남참전 기념탑


세계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한 월남파병은 우리나라 최초로 국군의 해외 파병이었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당시 야당의 반대와 국민의 여론에도, 국가의 생존 및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결정한 중요한 사건이다.
 
1964년 3월 비둘기부대를 시작으로 육군의 맹호, 백마부대와 해군의 백구, 청룡부대 등 연 32만여 명의 한국군이 파병되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파월 기간 중 군사작전과 경계활동에서 5,000여 명의 인명 손실을 주기도 했다.
 

참전 기념탑 안내판

▲ 참전 기념탑 안내판


군사, 외교적으로는 국위를 선양하고 미국의 경제원조와 전투수당, 월남특수를 통한 외화수입으로 경제발전을 도모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초석을 놓았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는 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월남파병의 의의나 결과를 올바르게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당시 파병으로 얻은 경제적 실리를 파월당사자에게 제대로 분배하지 않고, 국가의 시급한 경제개발에 투입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가속화 했다.
 
당시 월남에서 송금한 총 9억 달러 중 2억 달러가 파월국군의 전투수당이었으며, 시급한 국가 경제개발을 위한 외화로 쓰였다고 한다.
 
월남전에서 부상당한 2만여 명의 파월용사에 대한 복지와 고엽제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보훈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매월 지원하는 참전명예수당이 있지만, 이들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생명을 담보로 국위선양과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파월용사에 대한 예우를 현실화하고, 모든 국민이 호국 영령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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