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사는이야기

충남넷 미디어 > 사람세상 > 사는이야기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외라2리 시집 본가

2013.05.15(수) 03:50:06모과(moga52@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시집의 본가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외라2리이다. 1889년에  복당리에서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살고있다. 12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할아버님과 아버님, 남편의 형제들이 태어난 집이다.

본래는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의 초가집이었다. 지난 일요일에는  막내아들의 약혼녀가 시골집을 방문했다.   가을에 결혼을 하는데 남편의 뿌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초청했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아버님은 이집에서 홍성까지 6년간 초등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졸업 후 서울의 배제학당과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셨다. 그후  중등학교 교사가 됐다.  예산중, 예산여고, 병천중,  한밭중, 교육청을 거쳐서 정년퇴임은  대전 여고 교장일때 했다.

시집은 본가가 대전에도 있다.  아버님이 교직에 있으면서 자주 전근을 다녀서 시골집은 돌아가신 시할아버님이 지키셨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큰아주버님은   충남 교육청(시설계)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아버님은  2004년부터   남편의 형제들에게 힘을 합해서 고치라고 하셨다. 모든 비용은 아버님이 마련하셨다. 

사당과 돌담만 전문가가  만들었고 모든  시설을 남편의 형제들이 매주말에  시골집에 모여서 고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마무리를 못했으니 10년이 걸린 셈이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외라2리의   큰길은  박씨문중에서 만들었다는 말을 나는  마을 입구에 있는 보건소장님에게 들었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아버님이 돌담 및에 200그루의 연산홍을 심었는데 잡초가 무성해서 죽은 것도 좀 있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사당은 백두산 미송으로 내부를 꾸며서 은은한 향이 나는  사당은 마치 작은 강당같이 지었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시골집은 집 안의 어디에서 보아도 산이 보이는 특징이 있는 집이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잡초를 뽑으러  올라가라고 사다리를 만들어 준 큰아주버님, 건축학을 전공하셔서 모양이 예쁘거나 멋진 것은 대부분 아주버님의 솜씨이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돌담아래 작은 텃밭에는  적상추와 청상추가 자라고 있다. 그날 고추 모종과 콩을 심었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할아버지는 2대 독자였는데 슬하에 2남 5녀를 두셨다. 작은 아버님도  초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했고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마을입구에 있는 수덕초등학교는  남편이 5,6학년을 다녔고  작은 아버님이 담임이었다.

할아버지의 자손은 2004년 당시 161명이었다. 아버님은  시골 본가를 할아버지의 자손 모두의 집이라고 선포하셨다. 

 할아버지 자손은 누구든지 미리 말하면 시골집을 주말에 사용할 수가 있다. 지금은 시누이형님의 남편인 아주버님이  퇴직 후 휴양차 머물고 있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이날 모인 사람은 시어버님(91세) , 큰시누이형님(66세), 아주버님(69세), 남편(64세), 나(62세) , 막내아들( 33세), 예비며느리(30세) 6명이었다. 지은지 71년된  투룸에서 남편이 태어났다.

우리는 남편이 덕산 오거리에서 사온 돼지고기로 수육을 하고 텃밭에서 딴 상추, 덕산막걸리로 건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예비 며느리가 될 아가는  아버님을 따라서 논과 밭,  수도를 만들어 놓은 곳등을설명들었다.  한 때는 마을의 대부분의 땅이 시집 소유였던 때도 있었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술과 담배를 안하셨던 할아버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조금씩 사모은 땅이었다.
99세 까지 건강하게 사시다  한달 아프시다 돌아 가신 할아버지는 가훈을  근검정직(勤儉正直)으로  정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보다 3세 연상인데 93세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농번기에  손주며느리들을 시골에 못오게 하셨다.

" 농사는 사람을 사서 지을 수도 있고 망치면 다음 해에 다시 지으면 된다. 그러나 자식농사는 일회성이고 망치면 회복 할 길이 없다.  시골에 올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 잘 키워라"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할아버지는 명절에 시골집에 가면 자가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늘 교통비를 봉투에 넣어서주셨다. 차비가 없어서 명절에 못온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비 며느리에게   충청도  시집의 뿌리를 보여주다. 사진

 
이날 남편은  아이들을 천안아산역까지 데려다 주고 대전으로 돌아오자고 했다.
교통이 복잡한 일요일에 아이들을 편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보다. 

예비 며느리인 아가는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천안아산역에 내려주며 보니 얼굴이 파랗게 보였다. 나 또한 편하고 배려심이 많은 시집식구를 만났지만 시골집에 가서 마음이 편한 게 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막내아들과 3년을  만나며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아이, 두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 가는데 양가 부모는 협조 할 것이다.   더 나이가 든 후에는  양가 부모가 두아이의 도움도 받을 것이다.

우리집에 딱 어울리는 좋은 며느리감이 선물로 온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서로 노력해서 막내아들이 고부간의 갈등으로  힘들지 않고 더 행복하게 되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약속했다.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