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박범신과 함께 고향길을 걷는 행사에 참여한 팬들이 논산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수탕석교’를 걷고 있다. 고려시대 만들어졌으며 주민들은 ‘주창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달 29일 논산시 성동면 석성천 둑길.
우산과 우비로 몸을 감싼 40여명의 시민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다 원북리에서 수탕석교(水湯石橋·충남 문화재자료 제383호)를 만났다.
“어머 돌 맞춤봐! 예술이야.” “이런 돌다리 처음보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수탕석교는 조선시대 석성과 은진을 잇는 돌다리예요. 5개의 다릿발 위에 기다란 장대석을 얹어 만든 다리죠.” 옆에 있던 문화해설사가 한마디 거든다.
논산이 고향이라는 한 군인(대령 예편)도 “수탕석교를 처음 본다.”며 놀란다.
‘작가 박범신과 함께 내고향 논산땅 걷는다’라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5일간 열린 행사 중 이틀째 날이다.
논산은 물론 멀리 서울과 부산에서도 왔다. 첫날에는 약 200명이 왔지만, 이날은 비바람이 거센 예약자 80명중 절반만 합류했다.
행렬 앞뒤를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박범신(67) 작가가 즉석에서 자연 예찬론을 펼친다.
“사람은 곧 자연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압축 성장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오면 고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 불안한 것”이라며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자연이 주는 안락함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특히 고향을 제일로 친다. 고향(땅)은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본원적인 에너지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삶이 불안하고 행복한 세상에 이르지 못한 것은 우리가 고향을 버렸기 때문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어버이 품속 같은 고향땅을 온전히 걷고 나면 삶의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잃어버린 공동체가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자들은 박 작가의 권유로 두 팔을 벌리고, 두 눈을 감은 채 고향에서 불어오는 바람, 풀냄새, 땅의 향긋함을 느끼고 맡았다. 순간 번잡했던 도시생활과 스트레스가 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현대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그 자체였다.
박 작가의 힐링시간은 계속됐다.
“길을 갈 때는 함께 가되 혼자 가야한다. 또 혼자 가되 여럿이 함께 가야한다.”
길은 여럿이 가야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사색, 반성)을 가져 ‘잃어버린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또 혼자 매몰되지 말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자 중에는 박 작가의 제자도 함께 했다. 윤상숙(논산시의원)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은사셨죠. 얼굴도 잘생기고, 시를 읊어줄 때면… 여학생들의 마음을 많이 설레게 했어요.”
이날 행사는 성동면사무소를 시작으로 노강서원까지 13km 구간에서 약 6시간동안 열렸다.
30일에는 박 작가의 장편소설 <소금>의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지난 2011년 전작인 <은교> 발표 이후 홀연히 논산 고향땅에 내려간 뒤 2년동안 집필한 작품이다.
소설의 무대는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강경과 현재 살고 있는 평매마을이다. 강경은 소금창고가 유난히 많았던 곳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배경으로 나온다.
‘단 하루라도 생명을 준 첫 마음(고향)의 그 땅을 온전히 걸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박 작가의 호통이 귀전에 아직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