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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2013.04.03(수) 14:14:05임중선(dsllew8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산사에서 만난 노승. 그리고 속세에서 찾아 온 이방인.

 둘이 조용히 대나무 숲을 걸어간다. 묵언이다. 아무 말 없이 걷노라니 세상만사 다 무엇이랴 싶을 만큼 조용하고 마음도 넉넉해 지는 느낌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 없음을 이해하며 마음속으로 묵언 수행을 하며 느긋하게 산 숲 길을 걷는다.

 그 순간 “띠리리링..”
속세에서 찾아온 이방인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참 방정맞게 울리고 만다. 그리고 나오는 멘트.

 “이곳에선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몇 년전에 나왔던 어느 휴대폰 회사의 광고 내용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CF여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그리고 여러 사람 있는 공공장소에서 만큼은 정말 “잠시 꺼 두셔도 좋을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경우가 적잖다.

 며칠전 인천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버스를 타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전날 밤에 친구의 상가집에 가서 밤샘을 했고, 그 전날에도 일 때문에 잠을 못 잔 터라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아마도 춘곤증까지 겹쳐 버스는 완전히 침대차가 되어 버스 엔진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냥 꿈나라로 갔던 것 같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웬 도야지 멱 따는 소리에 화들짝 놀래 잠을 깼다. 그래도 한시간 이상은 잤으려니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겨우 25분 잤다. 회사까지 가려면 아직도 1시간 반은 더 가야 하는 길이어서 오랫동안 푹 자고 싶었는데 고작 25분 잔 끝에 깨어버렸으니 얼마나 원통하던지.

 그나저나 나의 단잠을 깬 괴기스런 고함소리의 진원지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 보니 버스 통로를 사이에 둔 건너편 옆자리의 어느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거의 고함소리 수준으로 통화를 하고 계셨다.

"가끔은,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사진


 연세라고 해 봐야 40대 초반. 즉 할머니 할아버지시라면 요즘 말하는 에티켓 같은거 잘 모르실수 있어서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좁은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하면서 주위 사람들 잠까지 깨우는건 너무 심했다.

 곧 통화가 끝나려니 하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쉽게 끝날것 같지 않은 통화. 계속 이어진다.

 “어제 말이지, 시아버님 제사였잖아. 그런데 막내 동서가 제일 꼴찌로 나타나는거 아니겠어? 내 참 기가 막혀서!”로 시작한 그것.

 남의 휴대폰 통화를 엿들으려고 한게 아니라 내가 싫어도 다 알아 듣고도 남을 큰 목소리로 생중계 하는 덕분에 그 집안 대소사에 그 분의 취미와 가계소득까지 죄다 알수밖에 없었다.

 시아버님 제사에 제일 꼴찌로 나타난 소위 싸가지 없는 막내 동서 이야기부터 시작해, 흰 빨래를 삶다가 태운 일,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온 어느 남자 주인공의 뱃살 이야기, 요즘 씽크대 바닥에서 웬 악취가 난다는 둥... 정말 굳이 휴대폰으로 떠들면서까지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그칠줄 모르고 계속 되었다.

 봄이다. 남녘에서는 진달래가 피고 벚꽃 축제가 한창인 따사롭고 축복받은 계절이다. 이 화창하고 꼭 안아주고 싶은 봄날에 회사 일 잘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버스에 올라 잠 한번 달콤하게 자 보려던 내 꿈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산 꼭대기에 오르면 맑고 푸르른 하늘과 더 가까워 지고, 온 몸을 감싸 안는 흠씬한 숲속 공기를 들이 마시며 명상을 하는 사람, 책을 들고 와서 읽는 사람, 바위에 걸터 앉아 사색하며 고요함을 느끼는 사람등 아주 다양하다.

 그게 버스 안이라고 다를쏘냐.
 잠 자는 사람, 책 읽는 사람,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노트북 꺼내 과제를 하는 대학생도 보이고 서류를 뒤적이는 샐러리맨도 있다.

 그런데 목청 높여 고성방가 통화를 하면 어쩌란 말인가. 남의 일에 끼어들기 싫어서, 귀찮아서, 그러다가 말겠거니 싶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 자기가 지금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는 그분. 그렇게 20분이 넘어서야 전화를 끊는다.

 잠을 청했으나 이미 내 달콤한 잠은 버스 안에서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버스 안에서의 단잠.

 ‘어그그그... 억울하고 원통하다’
 왜들 그렇게 남을 배려하지 않을까. 왜 나만 생각할까.
 몇 년전에 우연히 이탈리아에 가본적 있다.  어쩌다가 용변이 급해 공중 화장실로 뛰어 갔는데 문을 지키고 있던 어느 여직원이 내가 알아들을수 없는 이태리어로 마구마구 뭐라 하며 나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의 아랫도리는 계속해서 엄청난 압박을 가하는데.

 그러자 뒤에 있던 어떤 여성이 나에게 동전을 하나 건네주며 “이곳 화장실은 저기 동전 투입구에 코인을 넣어야 합니다. 이걸 넣고 들어가세요”라며 영어로 알려주었다.

 간신히 영어를 알아 들은 덕분에, 그리고 이 여성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용변 해결.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분은 평생에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외국인인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배려를 해 주었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내 단잠을 깨워 버린 우리의 용감한(?) 아줌마는 남에 대한 배려라는건 잊고 사시는분 아닌가 싶다.

 이분 뿐만 아니라 건물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찻집이나 술집에서도 고래고래 소리치며 통화하시는분들 아직도 많다. 이런 분들에게 꼭 한말씀 전해드리고 싶다.

 “가끔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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