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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서산 '해미순교성지'

2011.07.12(화) 메아리(okaban@naver.com)

아늑하고 평화로운 해미순교성지에는 수많은 천주교도들의 피로 얼룩진 비극의 현장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천주교가 전파된 내포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서 유일하게 진영이 있던 군사 요충지였다.1418년 병영이 설치되었고, 1491년에 석성이 완공된 해미 진영은 1790년대로부터 100년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무려 수천 여명을 국사범으로 처결한 곳이다. 해미의 첫 순교자는 1797년의 정사박해로 체포되어 1800년에 순교한 인언민(마르티노)과 이보현(프란치스코)이다.

해미읍성을 둘러보고 해미순교성지를 찾았을 때는 아늑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곳이었다. 커다란  "海美殉敎聖地" 라고 쓰인 입석에는 신앙선조들의 죽음의 행렬을 묵묵히 지켜온 한티고개에 있던 돌이 이곳으로 옮겨져 이제는 생매장 순교 현장임을 알리고 있다. 뒤편의 예수님과 함께 멀리 한티고개를 넘어오는 도보순례자들을 축복하며 맞이 하는 듯 하다. 라고 쓰여 있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해미순교성지 입석

커다란 해미순교성지 입석 뒤로 해미순교성지 본당 건물이 보인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해미순교성지(여숫골)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한복입은 성모자상

한복입은 성모자상 옆에는 '이름없는집'이라는 초가집이 있다. 해미읍성 서문 앞에는 자리개돌이라는 사형대가 있었다. 신도들을 타작하듯 자리개질(팔다리를 잡아들고 머리를 메쳐 살해하는 것)하듯 처형했던 돌다리다. 그러나 많은 신도들을 일일이 처형하는 것이 힘겹자 읍성 밖에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 하기까지 했다. 해미읍성 서문 밖 순교지에는 1956년에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던 자리개 돌다리가 1986년에 원위치를 찾아 보존되다가 2009년1월에 여숫골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현재 서문밖에 있는 자리개돌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순교 자리개돌

자리개돌 옆을 지나면 많은 고초를 당하며 이슬처럼 사라진 무명순교자들의 비가 세워져 있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무명순교자의 비

조금 옆에는 연못처럼 되어 있지만 진둠벙이라는 곳이다. 생매장형이 시행되면서 여름철 죄인의 수효가 적을 경우에는 사령들이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방법으로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해미 지역 외인들을 천주학 죄수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이라 부르고 있었으나 현재는 이름 조차도 변해 진둠벙이라 불리고 있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진둠벙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진둠벙

진둠벙을 지나면 순교자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고 순교탑과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에는 조선조 천주교 박해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이곳 해미생매장터에서 발굴하여 1935.4.2일 서산 상흥리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이제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여 성지순례자들의 순례를 돕기 위해 다시 원위치에 옮기다.라고 되어 있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순교탑과 무명순교자의 묘

해미노천성당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교우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라 알아듣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전해 오는 생매장 터인 진둠벙이, 14처 노천 성당으로 단장돼 있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해미 노천성당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여숫골

형장의 형벌도구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외부 벽에 있는 벽화이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외부 벽에 있는 벽화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내부에 들어서면 대형부조 그림이 있다.

  천주교도들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은 곳 사진  
▲ 기념관 내에는 대형부조그림

해미진영 서녘의 생매장 순교 벌판에서는 1935년도(일제 시대) 서산 본당의 범 베드로 신부 지도하에 순교자의 유해 발굴 때 유해 일부와 유품 성물이 발굴되어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 9월 20일 유해 발굴 터인 원위치로 안장되었고, 순교자의 유해는 별도로 보존 처리되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해미순교성지(여숫골)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74-22 / TEL : 041-688-3183 / FAX : 041-688-9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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