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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날 있어도 생일은 없는 여인

2011.01.04(화) 김기숙(tosuk48@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환갑이 되던 해는 일기가 좋아 들판은 마치 황금을 뿌려 놓은 듯했다. 알록달록 물들은 오색 창연한 단풍 잎 속에 내가 빠져든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섭리만큼 절묘한 것이 또 있으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어느 계절이고 안개가 쓸모가 있으랴 만은 가을 안개는 농부들에게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안개나 이슬이 많이 내리면 벼 포기에 쌓여서 덩치 큰 콤바인도 벼를 못 벤다.
남편은 이슬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이빨 듬성듬성 빠진 낫으로 콤바인 검불을 뜯어낸다. 한 때는 낫의 전성기도 있었다. 낫 하나로 나무를 하고 온 들판의 벼를 베어 엑스자로 논두렁마다 줄을 세워서 자연 풍으로 말리면 지름이 자르르 흐르는 밥 맛 좋은 쌀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잔뜩 부어 가지고 생일이라고 달라 진 것 없는 조촐한 밥상을 차린다.
남편은 내 생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만 힐끔힐끔 내다보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간다.
친정어머니는 팔월 스무하룻날 날 낳으셨다. 그리고 오늘이 내 생일 한마디로 말해서 환갑이다.
삼 십 육년을 살았어도 남편은 내 생일날을 기억해준일이 한 번도 없다. 어쩌다 꽃이라도 한 송이 사다 달라고 하면 “들판에 널브러진 것이 꽃인디 꽃은 무슨 꽃이여” 하고 가을에 단풍 구경 가자구 하면 “뜰에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지천여서 매일 보는디 가긴 어디루 가?” 하고 대답을 둘러대기도 잘한다. 가난하지만 어머니는 우리 육남매 모두에게 수수 팥 단지를 해주시고 맨 미역국이라도 끓여서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 주시었다.

결혼하고 첫 해. 추석 지나서 일주 일 만에 내 생일이었다.
첫 해니까 선물이라도 해 주겠지 은근히 기다려 봤지만 도통 생일이란 말은 입 밖에서 나오질 안는다. 참다못해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가서 “오늘이 내 생일인디 선물 좀 안해주어유” 하니까 “생일이 워디 있댜.” 나는 뜻밖의 대답에 현기증이 날 뻔 했다.
“어머머, 세상에 생일 없는 사람이 워디가 있대유”
“엄마가 살아 계시니께 오늘 가서 물어 봐유, 멀지도 않구먼”
“생일 챙겨주기 싫으면 그만 둘 것이지”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니께 두 분 돌아가시면 생일 챙겨 줄게” 한다.
“진짜루”
“그려, 그럼 좋아!”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면 생일 챙겨 주는 거지?”
“왜 하필이면 부모님 돌아가시면 생일을 해 준단 말이유”

생일을 얼마나 뻑적지근하게 잘 차려 주려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돌아가시면 해준단 말인가 두고 보자는 사람 별 볼일 없다더니 나는 백 프로 믿지는 않지만 조금만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어린애마냥 좋아서 마음속으로 저 어른들이 언제 돌아가시나 했다. 그리고 십여 년 후에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내 생일은 안중에도 없다. 그 후로 아이들이 크면서 생일을 먹었지만 남편이 스스로 챙겨준 생일은 한 번도 없다. 그저 나는 생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편했다. 그래도 일 년에 한번 그날이 오면 남편에 대한 불만 불평 모든 것이 가슴에 체증이 되어 간다.

남들은 결혼 전에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을 해준다고 했다는데 데려다 놓고 이 핑계 저 핑계 잘 도 둘러 댄다.
마누라 생일이 없다고 우기는 남편과 살아오면서 생일날만 되면 남편을 볼 때마다. 눈이 옆으로 갔다. 삐뚤이 눈이 안 된 것이 다행이다.
내 생일만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일도 없다는 것이다. 격식 갖추지 말고 편케 살자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를 위한일인지도 모른다.

지평선에 저녁노을이 퍼지면 흩 뿌려놓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사계절 농촌의 풍경은 언제보아도 질리지가 안는다.
남편은 콤바인을 능수능란하게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저녁노을과 벼를 베어 섞어 오백 키로 그램 들어가는 톤 팩에 담으니 하늘에서 별이 총총 마중을 나온다. 땅거미가 교차하는 시간이지만 남은 것 마저 베고 오려는지 집에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만큼은 나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삼십육 년의 한을 하루 만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동네 멤버를 전화해서 불러냈다. 오늘은 내가 한 턱 쏠 테니 노래방으로 가자고 했다. 그리고 노래방에 가서 술이고 안주고 실컷 먹으라고 했다. 다들 의아 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돈이야 얼마가 되든지 간에 실컷 먹으라’ 고 했다. 그리고 참자했던 입도 터져 버렸다.
“오늘이 내 환갑이여!”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몇몇이 밖에서 수근 거리더니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멤버들한테 짐을 더 얹어 준 격이 되어 너무도 미안했다. 새벽녘까지 실컷 노래 부르고 나이에 지쳐 불뚝 나온 배를 흔들어 대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기만 해라.
옛날 며느리들은 시집살이 할 적에 뒤란 장독대에서 숨어 울었다는데 뒤란도 없으니 이곳에라도 와야지 어쩌랴! 집에 오니 아무것도 모르는 내님 작업복도 벗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종일 고장 난 콤바인과 씨름하고 껄끄러운 먼지는 얼마나 썼을까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저려온다 이게 부부의 정이라는 것인가.

가을 타작이 끝나자 남편은 “돈 없으면 이것 써” 하면서 새로 발급 밭은 통장을 앉아 있는 내 앞에 떨어트린다.
“안 받어! 안 받는다니깨”
“그럴 거면 환갑 때 통장 만들어 준다고 믿거나 말을 말거나 하지, 죄 없는 부모님 돌아가시면 생일 해 준다고 혀” 볼멘소리로 빨리 받지를 않고 투정을 부렸다.
남편은 평상시에 말수가 적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사람이다. 아이들 셋을 가리키면서 한푼 두 푼 삼십 육년을 모였을 생각을 하니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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