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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부소산성의 가을

백제의 향기와 함께 하다

2023.11.10(금) 00:12:57 | 가는정 (이메일주소:efu0210@naver.com
               	efu021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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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소산문(매표소)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 방어를 위해 축조된 복합식 성곽, 산성, 사적입니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부소산성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당시에는 사비성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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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소산문을 지나면 또 다른 가을길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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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충사'의 외삼문인 '의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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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충사'의 내삼문 '충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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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충사_백제 시대의 충신이었던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백제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입니다. 1957년에 세웠으며 1981년에 중건하였습니다. 매년 10월 백제문화제 때 이곳에서 삼충제(三忠祭)를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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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소산성

부소산성 축성의 구체적 방법을 보면,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호(壕)를 만든 한편, 그 파낸 흙을 내벽에 보축(補築)하였습니다. 성의 바깥 벽면은 기반토(基盤土)를 마치 판축(板築)하듯이 황색사질토와 적색점질토를 겹겹이 다져놓았고,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축조된 산성의 입지는 경사면이어서 원래의 경사도보다도 더욱 가파른 경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이 산성의 아래 너비는 7m 가량이며 높이는 대략 4~5m에 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군창지와 영일루가 있는 부근의 표고는 전면 70m, 후면 90m의 등고선을 따라 둘레 1,500m의 성벽을 거의 토축(土築)으로 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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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은 백제시대의 중심을 이룬 산성으로 도성(都城)을 방어하는 핵심시설이며,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백제 성왕 16년(538) 이전에 이미 축조되었다. 부소산성은 군창지와 사자루의 산봉우리를 머리띠를 두르듯 쌓은 테뫼식 산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포곡식 산성만이 백제시대의 것이고 나머지 두 테뫼식 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대부분 흙으로 다진 토성으로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이용되었으며 유사시에 도성의 방어거점으로 사용되었다.’ 
(현장안내문 발췌)

토성은 흙을 주재료로 쌓은 성곽입니다. 한국의 성곽 중 대다수는 토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석성으로 변화했습니다. 토성은 긴 세월 동안 산성뿐 아니라 읍성이나 도성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도성으로는 고구려 평양성의 나성, 백제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 공산성 및 부소산성도 토성이었습니다. 토성은 흙을 층층이 다지면서 쌓아올라가는 판축법으로 만들었으며 생석회, 소금물, 느릅나무 삶은 물 등을 섞어 점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해안을 중심으로 한 읍성에서도 토성이 흔하게 나타났으며 산성에서는 경사지를 깎아서 성벽을 만드는 삭토법(削土法)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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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월루

반월루는 부소산성의 옛 이름인 반월성에서 따온 이름으로 반월은 멀리 흐르는 백마강의 모습이 마치 달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부여 시가지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1972년 세운 이층 누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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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월루에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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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화암

바로 아래가 높이 40m의 절벽 낙화암입니다.
낙화암은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큰바위입니다. 강물에 이르러 한 번 꺾인 단이 있는데 이 단을 이룬 암벽에 송시열이 '낙화암'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지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때, 백제 왕실의 궁녀들이 이 곳에서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이에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꽃이 떨어진 바위란 뜻의 '낙화암'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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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강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의 백마강은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km의 금강을 일컫습니다. 백제는 부소산 기슭을 따라 흐르는 백마강 뱃길을 통해 넓은 서해로 나아가 중국, 일본 등과 교류하며 해상왕국이 이름을 널리 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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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정

백화정은 부소산성 북쪽의 험준한 바위 위에 육각형으로 지은 정자입니다. 죽은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라는 시모임에서 세운 것입니다. 정자는 지반에서 높게 띄워져 있으며 남쪽에 나무계단이 있어 출입이 가능합니다. 바닥 주변에는 평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천정에는 연꽃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자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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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사'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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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사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백제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현재의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합니다.

법당 뒤 고란초와 한잔에 3년 젊어진다는 고란약수가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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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약수로 유명한 고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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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약수

한 번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고 하니 방문객들이 꼭 마시고 간다지요?
자외선 살균기로 인해 사진을 찍으면 초록빛으로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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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강을 유유히 지나는 유람선

사비도성은 사비시대 백제의 마지막 도읍으로, 부소산성 일부로 여겨지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성안에는 군창지와 건물들이 있었지만, 일상적으로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왕과 귀족들의 비원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필자는 부소산성이 두 번째 방문이지만 백제 때 쌓은 토성의 흔적과 판축기법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지금도 성벽의 일부가 나지막한 언덕처럼 남아있어(사진 참고) 부소산성을 가실 때 꼭 한번 들려보시길 추천합니다. 


부소산성 정보 요약

<유네스코 세계유산>
* 국가·위치: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등재연도 : 2015년
 
* 분류번호 : 대한민국 사적 제5호
* 분     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면     적 : 1,022,558㎡ 
*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제작시기 : 백제시대
* 관리단체 : 부여군

* 성 곽 명  : 부소산성
* 주     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 운영종료 : 하절기 3월~10월 09:00-18:00
              동절기 11월~2월 09:00-17:00
* 문     의 : 041-830-2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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