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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배롱나무 꽃 필 무렵 생각나는 곳, 면암 최익현 선생 사당 '모덕사'

2023.08.31(목) 14:59:06 | 나는 나답게 100% (이메일주소:yh1975@hanmail.net
               	yh197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모덕사
▲ 모덕사(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입구 전경

모덕사 입구 전경
▲ 모덕사 입구 전경

'여름꽃'하면 그 많은 계절 꽃 중에서 목백일홍을 먼저 떠올립니다. 화려한 색깔 때문에 주목하게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들 방학 기간과 엇비슷한 시기에 피기에 개화 시기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부쩍 목백일홍의 명소로 부각되는 곳이 많은데요. 올해는 청양군 목면에 위치한 모덕사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모덕사(慕德祠)는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선생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으로 191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고종황제의 밀지 가운데 "간우공극 모경숙덕(艱虞孔棘 慕卿宿德... 나라일이 어지러움에 경의 높은 덕을 사모하노라)의 문구 중 모(慕)와 덕(德) 자를 취하여 현액하게 된 곳이라고 해요.

면암 최익현 선생의 동상
▲ 면암 최익현 선생의 동상

얼마 전, 모덕사를 찾아 가장 먼저 둘러본 것은 면암 선생의 동상이었습니다. 동상 아래의 안내석을 읽어 보니, 1973년 청양 군민들이 선생의 충의를 기리고 애국 사상을 마음에 새기고자 모금하여 칠갑산도립공원에 건립했던 상(像)이라고 합니다. 높이 4m의 이 동상은 우리 나라에 몇 점 안되는 진귀한 시멘트 동상으로 2013년 4월에 면암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모덕사로 이전하였다고 해요.

동상 옆에는 모덕사와 면암 선생에 대해 자세히 적은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면암 선생은 1855년 문과 급제 후 대원군(大院君)의 시책을 비판항 제주도에 유배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구금되었다고 합니다.1900년에 포천에서 청양으로 옮겨온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라도 태인과 순창에서 의병을 모집해 대항했으나, 왜군에 체포대어 대마도에서 단식하던 중 74세에 순절하셨다고 해요. 묘소는 논산시 노성(魯城)에 있었으나, 후에 예산군 광시(光時)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대의관(大義館)
▲ 대의관(大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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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복과 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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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함

다음으로 들른 곳은 대의관(大義館)이었어요. 면암 선생의 유품과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1997년에 청양군에서 건립했다고 해요. 피혁류, 고종 황제의 밀지, 문방구를 비롯한 소품과 교지 등 총 9종 128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덕사를 찾는 방문자 중에는 교육을 목적하여 어린 자녀들 또는 제자들과 동행하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대의관의 유품과 유물은 그들에게 주목도가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조복이나 각대의 경우만 봐도 용어도 어렵고 전체 형태를 볼 수도 없어 시청각 자료가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관심도가 높아지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면암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 같아요.

고택(古宅)
▲ 정면에서 본 고택(古宅), 중화당

우측면에서 바라본 고택(古宅)
▲ 우측면에서 바라본 고택(古宅), 중화당

대의관을 나와 드디어 그 유명한 모덕사의 배롱나무가 있는 고택(중화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중화당은 면암 선생이 1900년부터 1906년 의병 봉기 전까지 살던 집입니다. 정갈한 마당에서 꽃을 피운 목배일홍은 고택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킬만큼 아름다웠어요. 햇빛이 강하지 않은 시간에 찾았더라면 더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춘추각(春秋閣)
▲ 춘추각(春秋閣)

다음으로 들른 곳은 춘추각(春秋閣)이었어요. 면암 선생의 서책, 서간문 등을 보관하기 위해 1985년에 건립했다고 합니다. 내부를 볼 수는 없었는데요, 전적류 4023점, 서찰 및 고문서류 1974점이 소장되어 있다고 해요.

영모재(永慕齋)
▲ 영모재(永慕齋)

춘추각 뒤편에는 영모재(永慕齋)라는 현판을 단 건물이 보였습니다. 안내문이 따로 없어서 검색해 보니, 조상의 위패를 모신 건물이라고 해요.

고택(古宅)
▲ 고택(古宅)

그 옆으로는 고택(古宅)의 안채가 보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택(중화당)은 면암 선생이 1900년에 건립했으며, 안채 외에 애국지사를 모아 강의하거나 독립운동을 논의한 사랑채가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영모재도 고택의 부속 건물이라고 해요.

사당(祠堂)
▲ 사당(祠堂) 외삼문

사당(祠堂)
▲ 사당(祠堂)

고택 좌측으로는 면암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모덕사(慕德사)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1914년 건립했다고 해요. 매년 음력 9월 16일에 유림 주관으로 제향한다고 합니다.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환국고유제를 올렸으며, 1953년에는 해공 신익희 국회의장이 한국전쟁 중 북한군으로부터 수도 서울을 수복한 기념으로 환도고유제를 봉행했다고 해요. 모덕사 내에는 신익희 국회의장이 환도교유제를 지낸 후 기념으로 식수한 잣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영당(影堂)
▲ 영당(影堂)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
▲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影幀)

모덕사를 나와 면암 선생의 영정이 봉안돼 있는 영당(성충대의)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건물 중앙의 문은 폐쇄해 놓고 있어 좌측으로 난 문으로 내부에 들어가 향을 피워 놀리고 잠시 면암 선생의 영정 앞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영정은 면암 선생이 73세(1905년) 때, 정산 현감으로 있던 채용신(蔡龍臣)이 )의 그렸다고 합니다. 현재 영당에 봉안된 영정은 이종상 서울대학교미술대학 교수가 모사하여 1989년 청양군에서 영당을 준공했을 때 함께 봉안한 것이라고 해요.

영당(影堂) 외삼문
▲ 영당(影堂) 외삼문

성충대의의사비(聖忠大義意思碑)
▲ 성충대의의사비(聖忠大義意思碑)

영당을 나와 외삼문으로 나오는데, 양옆에 흰색 목백일홍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화려한 붉은색 목백일홍이 아니고, 순수한 흰 꽃이 피어 있어 외삼문을 돋보이게 하면서 경건함마저 느끼게 했어요.

그 앞쪽에는 팔도(八道)의 동포사민(同胞士民)에게 국사(國事)를 고하는 성충대의의사비(聖忠大義意思碑)가 서 있었습니다.

모덕사 연못의 여름 풍경
▲ 모덕사 연못의 여름 풍경

8월, 목백일홍 명소의 한곳인 모덕사를 둘러봤습니다. 만개한 꽃 자체로도 예쁘지만, 모덕사 내의 건물들과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듯합니다.

올여름에는 방학 중에도 워낙 덥고 비가 많이 온 탓인지 모덕사를 찾는 방문자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백일홍이 한창 예쁠 때, 평범한 일상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고자 목숨을 거셨던 선조들의 구국 정신이 서려 있는 모덕사에 꼭 한 번 들러 보세요.


모덕사
충남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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