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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기념물 ‘태안읍성’… 역사서, 지리지 등 총망라된 학술자료집에 담겼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태안 관방유적 학술자료총서 ‘태안읍성 학술자료집’ 발간

2023.05.19(금) 09:23:56 | 주간태안신문 (이메일주소:east334@hanmail.net
               	east334@hanmail.net)

태안읍성 학술자료집.

▲ 태안읍성 학술자료집.


“이 책은 지난 2020년에 간행된 태안 안흥진성 학술자료집에 이은 ‘태안 관방유적 학술자료 총서’의 두 번째 시리즈로, 태안읍성에 관한 역사서와 지리지, 고지도와 근대 지적도, 문집과 일기, 고문서와 금석문, 근·현대 사진 자료 등을 망라하고, 태안읍성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정립하고 복원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지난해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개최된 학술세미나의 발표 논고를 간추려 수록하였습니다. 이번 태안읍성 학술자료집의 발간을 통해 그간 태안읍성이 잃어버린 역사·문화적 위상을 회복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는 동시에, 태안읍성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보다 활발해지고, 태안군민과 충남도민, 나아가 국민 전체의 관심이 제고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태안군과 (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조한필)은 충청남도기념물인 태안읍성 관련 학술자료를 집대성한 ‘태안읍성 학술자료집’을 발간했다. 이 책은 지난 2020년에 간행된 ‘태안 안흥진성 학술자료집’에 이은 ‘태안 관방유적 학술자료총서’의 두 번째 시리즈다.

태안군과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는 태안군 관내 관방유적의 역사·문화적 위상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2020년에는 근흥면의 안흥진성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지난해에는 태안읍성 학술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해 올해 6월 동문 문루 복원 공사의 준공을 앞두고 있다. 

태안읍성 학술자료집.

▲ 태안읍성 학술자료집.


이번에 발간된 학술자료집은 태안읍성에 관한 역사서와 지리지, 고지도와 근대 지적도, 문집과 일기, 고문서와 금석문, 근현대 사진자료 등을 망라하고, 지난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개최된 태안읍성 학술세미나의 주요 발표 논고를 간추려 수록됐다. 

‘태안읍성 학술자료집’의 발간을 총괄한 민정희 충남역사박물관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그간 태안읍성이 잃어버린 역사·문화적 위상을 회복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시에, 태안군민과 충남도민, 나아가 국민 전체의 관심이 제고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차후 ‘소근진성 학술연구사업’의 추진을 통해 ‘태안 관방유적 학술자료총서’의 3부작 시리즈가 완성됨으로써 학계의 연구와 문화관광산업의 기반이 한층 단단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책자는 누구나 쉽게 이용이 가능하도록 충남도내 주요 도서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며, 현재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아카이브 홈페이지(www.cihc.or.kr/archive)에 고화질 전자책 이미지를 서비스하고 있다.

태안읍성은?

태안읍성 동문지 복원도.

▲ 태안읍성 동문지 복원도.


태안읍성은 조선 초기에 세워진 석축 읍성으로, 전근대 시기 태안군의 읍치가 자리한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이자, 한반도 서해 방어를 담당하는 최전방의 군사기지인 안흥진성과 소근진성을 연결하고 내륙의 서산과 해미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태안읍성은 조선 건국 초기인 1417년 태종 17년 고려 말 왜구의 잇따른 침략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태안의 백성들을 안집(安集, 평안하고 화목하게 함)하고, 황폐해진 읍치를 복설(復設, 다시 설치함)하며, 외적으로부터 고을을 지켜내기 위해 축성됐다. 전체 둘레 1,561척728m에 하천을 활용한 해자가 성곽을 둘러싸고 있었다. 

동문과 남문에는 문루와 옹성이 세워졌고, 문 밖에는 해자를 건너는 적교도 설치됐다. 태안읍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 내아 등의 관아 시설이 들어차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군사적 요새이자 태안군의 행정과 문화를 선도하는 거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던 중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의 읍성훼철령, 근·현대 시기의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읍성 대부분이 소실됐고, 그러한 까닭에 지난 100여 년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 그 소중한 가치가 바래왔다. 

하지만 최근의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동쪽 성벽 구간에서 문지와 옹성, 해자와 적교 시설 등의 유구가 발견되며 조선 초기의 축성 기법과 임진왜란 이후의 개축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행정과 군사적 기능을 오롯이 갖춘 조선시대의 읍성으로서 그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0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태안군에서는 총 43억 9천만 원을 들여 동문·성벽·옹성·문루 복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태안읍성 복원 정비 사업에 나서고 있다. 군은 지난해 3월 태안읍성 동문 성곽 복원 공사를 시작해 올해 3월 마무리하고 곧바로 동문 문루 복원 공사에 돌입했으며, 오는 6월까지 모든 공사를 마무리하고 완전히 복원된 태안읍성 동문 문루의 모습을 군민에 선보일 예정이다.

태안읍성 학술자료집에 무슨 내용 담겼나

1872년(고종 9년) 태안지도 속 태안읍성.

▲ 1872년(고종 9년) 태안지도 속 태안읍성.


‘태안읍성 학술자료집’은 총 2부와 부록으로 구성됐다. 1부는 태안읍성의 역사서와 지리지, 고지도, 지적도, 근현대 사진, 공문과 호적 등이 총망라한 학술자료가 담겼고, 2부에서는 ‘조선시대 태안의 역사와 정치적 위상’, ‘태안읍성 공해시설의 공간 배치와 경관 구성’, ‘근대 이행기 태안읍성의 소실 과정과 읍치의 변화’ 등 태안읍성과 관련된 학술논고를 실었다.

부록에서는 ‘태안읍성 학술자료의 현황과 특징’을 비롯해 ‘조선시대 태안 수령 명단’, ‘조선시대 태안 관련 편년사료 일람’ 등이 수록됐다.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 전략과 태안읍성의 군사적 위상’을 연구한 민장원 해군사관학교 인문학과 교수는 “태안읍성의 전략적 위상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한층 제고되었다. 18세기의 황당선, 19세기의 이양선의 출몰로 조정에서 서해안 방어 논의가 활발해지자 충청도 서해안 일대의 해방 거점으로서 태안과 안흥이 주목되었다”면서 “이에 두 곳에서 방어영 운영을 꾀하였으나, 운영구조 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치폐를 거듭하다가 결국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를 계기로 태안에 방어영이 설치, 존속됨으로서 태안방어영이 충청 서해안의 해방거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때 조선 조정은 태안진을 기존의 충청도 진관체제 편제에서 배제시켜 독립적인 군사 운영을 보장하는 한편, 법전 상의 품계도 종4품 병마동첨절제사진에서 종3품 병마첨절제사진으로 승격시켜 그 위상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였다”면서 “이로써 태안방어영은 육군 및 수군 병력을 통합 지휘하여, 해안 초계 및 감시→조기경보 및 상황 전파→상륙 세력 요격 작전을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구심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가치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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