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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계고택에서 김장생 선생의 기개를 보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2021.12.21(화) 07:27:32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계고택
▲ 사계고택

신선한 겨울바람을 안고 ‘사계고택’을 찾았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90호인 사계고택은 충청남도 계룡시 사계로 122-4(두마면)에 있다. 조선 시대 산림(山林)의 원형을 보여준 예학의 대가 김장생(金長生) 선생을 기리는 곳이다.

사계고택의 정갈한 내부
▲ 사계고택의 정갈한 내부

김장생은 자가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며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비중 있는 가계였다. 5대조는 세조~성종 때 좌의정과 원상을 지내고 적개2등ㆍ좌리1등공신ㆍ광산(光山)부원군에 책봉된 대표적 대신인 김국광(金國光)이었다.

공부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 공부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고조 김극뉴(金克?)는 대사간을 역임했고, 증조 김종윤(金宗胤)과 조부 김호(金鎬)는 각각 진산군수(珍山郡守. 병조참의에 추증)와 지례현감(知禮縣監. 좌찬성에 추증)을 지냈다.

은농제
▲ 은농제

아버지 김계휘(金繼輝)는 선조 때 공조ㆍ형조ㆍ예조참판ㆍ대사간으로 활동했다. 어머니는 평산(平山) 신씨(申氏)인데, 호조판서를 지낸 신영(申瑛)의 딸이었다.

왕대산을 배경으로
▲ 왕대산을 배경으로

신영의 손자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장가로 평가되는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이다. 김장생은 1548년(명종 3) 한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0세 때 어머니를 여의기는 했지만(1558년. 명종 13) 성년이 될 때까지 비교적 평범하고 순조롭게 성장했다.

이 시기에 그의 주요한 학문적 스승은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과 율곡 이이(李珥), 토정(土亭) 이지함(李之○) 등이었다. 송익필은 서출(庶出)이라는 약점 때문에 급제나 출사는 하지 못했지만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연구한 인물이었다. 정치적 역량도 뛰어나 서인의 숨은 실력자로 평가되었다.

눈길처럼 고운 내부
▲ 눈길처럼 고운 내부

김장생은 12세 때 송익필에게서 사서(四書)와 [근사록] 등을 배웠으며 19세 때는 이이에게 수업하였다. 성년 이후 60세 무렵까지 김장생은 여러 관직을 지냈다.

성례당
▲ 성례당

30세 때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된 것을 시작으로 순릉(順陵)참봉ㆍ평시서(平市署) 봉사(奉事)ㆍ동몽교관(童蒙敎官.)ㆍ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ㆍ정산(定山)현감ㆍ호조정랑ㆍ안성(安城)군수)ㆍ익산군수ㆍ회양부사(淮陽府使)ㆍ철원(鐵原)부사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대부분 요직은 아니었고 외직도 많았으므로 그가 집중한 분야는 학문 연구였다. 그는 이 시기에 조선 예학(禮學)의 중요한 기초를 마련했다. 예학은 조선 시대에, 성리학의 발달로 나타난 예법에 관한 학문을 말한다.

장독대
▲ 장독대

특히 상장 제례(喪葬祭禮)를 중시하였다. 김장생은 83년의 긴 생애 동안 30대 이후 꾸준히 예학을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김장생은 1613년(광해군 5) 서제(庶弟)인 김경손(金慶孫)ㆍ평손(平孫) 등이 계축옥사에 연루되자 충청도 연산(連山. 지금의 충남 논산 일대)으로 낙향했다.

출입문
▲ 출입문

그 뒤부터 별세할 때까지 송시열ㆍ송준길(宋浚吉)ㆍ이유태ㆍ강석기(姜碩期)ㆍ장유ㆍ최명길(崔鳴吉) 같은 걸출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사계고택에 들어서니 먼저 정겨운 초가집 두 채가 보였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오른쪽에는 커다란 뒤주가 반겼다. 이어 아침에 내린 눈을 쓸어낸 정갈한 내부가 나그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맞이했다. 

김장생 선생과 후학들이 공부하는 낭랑한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은농제와 성예당, 영당을 지나노라니 문득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 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계 솔바람길 안내판
▲ 사계 솔바람길 안내판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이어선 넉넉한 장독대를 봤다. 예나 지금이나 장독대는 한국인의 상징이자 밥심의 근거를 제공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어떤 화수분이다.
 
초가집과 뒤주
▲ 초가집과 뒤주

사계고택을 둘러싼 커다란 나무 위 새의 둥지 역시 정겨웠다. 사계고택에서 김장생 선생의 남다른 기개(氣
槪)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에 예학의 힘이 불끈 달라붙었다.

둥지
▲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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