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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못다 전한 이야기①】근대 개화기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이는 , '청양 윤남석가옥'

2021.12.01(수) 15:32:22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말, 청양 소재의 독특한 양식의 전통 가옥을 둘러보고 왔다. 기사화해도 될지 망설여 오다 귀한 정보를 전해주신 해설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치욕스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라는 생각에 뒤늦게 소개를 하기로 했다.

청양 윤남석가옥
▲ 청양 윤남석가옥(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8호, 청양군 장평면 장수길 13-8)

한.중.러 삼국의 가옥 양식을 보이는
▲ 윤남석가옥 별채 2층 창문은 한.중.러,중 네 개국의 가옥 양식을 보인다고 한다. 

오늘 소개하는 '청양 윤남석가옥(靑陽 尹男石家屋)은 2002년 8월 10일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윤남석가옥은 근대 개화기의 전통한옥 가옥으로 청양지역을 대표하는 부호, '윤갑선'이 지은 집이다. 윤남석은 그의 따님이며, 윤갑선은 1900년대 초부터 일본, 마카오 등지에 농사지은 곡물을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윤남석가옥은 안채, 행랑채, 별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초가집인 사랑채는 약 200여 년 전에 건립되었으며, 행랑채와 안채, 별채는 199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가옥은 음양설에 따라 지어졌기에 건물 외부는 주춧돌과 기둥이 둥글고, 건물 내부의 것들은 네모난 것을 특징으로 한단다.

별채 전경
▲ 행랑채와 사랑채 전경

별채와 안채 출입문
▲ 사랑채와 안채로 통하는 출입문

별채 전경
▲ 행랑채 전경

별채 내부
▲ 행랑채 내부에는 1790년대~ 1950년대에 수집한 시계 76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윤남석가옥에는 두 개의 출입문이 있다.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먼저 만나는 초가 건물은 행랑채다. 행랑채 내부에는 이 집을 중수한 윤갑선이 무역상을 하며 수집한 전 세계의 희귀한 시계가 전시되어 있다.
행랑채는 종도리, 상중도리, 하중도리, 주심도리 등 7줄의 도리를 건 지붕 가구인 칠량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국적으로 볼 때 초가집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라고 한다.

행랑채 옆 초가 건물은 사랑채로 바깥어른이 거처하던 공간이다.

안채
▲ 행랑채에서 바라본 안채 전경

사랑방에서 바라본 안채 전경
▲ 별채에서 바라본 안채 전경

안채(본채)는 전통양식을 충실히 따라 건립되었으며, 안방과 대청,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로 통하는 출입문
▲ 별채로 통하는 출입문

사랑채 전경
▲ 별채 전경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전통 목조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별채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양식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주인이 출타 중이어서 내부를 볼 수 없었으나, 2층 바닥은 다다미(일본에서 사용되는 전통식 바닥재)가 깔려 있다고 한다. 

별채는 청양지역을 방문한 외국인과 중앙 관리의 숙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인 은산별신제의 행사 용품을 제작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윤갑선은 행사 경비의 일부를 조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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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이 그려진 벽면
▲별채 외벽에는 해와 달이 그려져 있다.

소개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던 문제의 2층 내부는 안내문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지역 문화재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해설사에 의하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주재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2층 외벽에는 해와 달이 그려져 있었는데, 내부에는 정반대로 해가 떠오르고 달이 지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사용하여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 '욱일기'를 연상케 한다고 한다. 

전국의 수많은 전통가옥을 봐온 동행인들은 청양 윤남석가옥과 같이 여러 나라의 복합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곳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짧은 소견으로는 민속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일본 침략사를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곳으로 여겨진다. 다만, 그 이상의 섣부른 곡해는 지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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