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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당진 여행②]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돌아보기

2021.07.09(금) 12:52:43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미약한 힘으로 자연에 맞서 눈이나 비를 조절하는 것은 어렵기에 한해나 수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치수시설을 만들어 관리해 나가야 한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삼한시대의 3대 저수지로 배운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는 오래된 치수시설이다. 그 외에 댐, 제방, 보, 관정, 양배수장 등이 있다.

배들평야 전라북도 정읍시의 이평면 하송리 북동쪽에 있는 평야이다.
▲ 배들평야는 전라북도 정읍시의 이평면 하송리 북동쪽에 있다.

전라북도
▲ 전라북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된 만석보터가 보이는 방죽 전경

만석보기념혁명탑(만석보 유지탑) 뒤로 동진강이 보인다.

만석보유적비 뒤로 동진강이 보인다.
▲ 1973년 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가 건립한 만석보유적비(위)와 그 뒤로 흐르는 동진강과 멀리 백산(아래)이 보인다.

농경문화 중심의 우리나라에서 치수시설의 관리는 치국의 근간이었다. 그 근간이 바로 서지 않을 때 발생하는 폐단은 1892년 5월에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의 전횡에서 그 예를 살필 수 있다. 조병갑은 정읍천과 태인천이 만나는 지점에 새로 만석보를 쌓게 하나 농민들이 정읍천 아래에 쌓았던 만석보와 달리 홍수가 지면 냇물이 범람하여 상류에 있는 논들이 피해를 입었다. 보를 쌓은 첫해에는 수세를 물리지 않겠다던 약속마저 어기고, 보세를 감해 달라는 농민들을 매질하여 돌려보내니, 1894년 1월에 봉기한 농민들은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원성의 대상이었던 새 만석보마저 헐어버린다. 조병갑의 수탈과 횡포에 저항하기 위해 벌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조정에서 파견한 조사관마저 농민을 탄압하자 대대적으로 제1차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기에 이르게 된다.

당진여행합덕수리민속박물관돌아보기 1
 
연꽃원
▲ 연꽃원 

충남도의 대표적인 수리시설, 당진 합덕제(唐津 合德堤)는 신라 말기에 견훤(甄萱)이 축조한 것으로 전하는데, 정확한 축조 연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합덕제는 길이가 1,771m 저수면적은 103ha이며, 관개지역은 합덕제와 삽교천 사이 지역으로 동서 4km, 남북 2.5km 내외의 최대 300만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합덕평야를 관개해 주던 방죽이 있었는데, 현재 저수지는 농경지로 변하고, 제방만 원형이 남아 있다. 합덕제(합덕방죽)에는 연꽃이 많아 합덕연지(蓮池)라고도 불렸다는데, 방문했을 때에는 103만㎡ 되는 어마어마한 면적에 연꽃이 만발해 있었다.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기념물 제 70호로 지정된 합덕제는 현재 복원사업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1,000여 년의 역사와 함께 주변 지역의 농업생산량을 크게 향상시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여 2017년 10월,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당진여행합덕수리민속박물관돌아보기 2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내부 전경
▲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내부 전경

연꽃원 인근에는 합덕제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 건립된 '합덕 수리민속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사라진 수리 농경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체험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제1전시실에는 합덕제의 기원, 축조방법, 한국의 수리 역사, 수리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었으며, 제2전시실은 합덕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연출해 놓고 있었다. 전시실을 돌아보니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들의 문화'라고 일컬은 합덕은 평야가 넓어 일찍부터 수리가 발달하여 내포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홈통(물다리)과 타래박
▲ 홈통(물다리)과 타래박

지경석
▲ 지경석

합덕제는 지업부설공법, 무리말뚝공법, 다짐공법 등의 공법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지업부설공법은 유기물질을 점토에 섞어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키고, 굵은 모래를 깔아 수분 조절과 토양 수축률을 고려한 것이라 한다. 무리말뚝공법은 길이 60cm 정도의 말뚝을 0.3~1m 간격으로 수직 말뚝을 세우고 흙을 채워 넣어 흙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 공법이라고 한다. 삼투압 원리를 이용하여 습기를 밖으로 배출해 제방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했단다. 다짐공법은 삼국시대 백제 토성 건립 때에도 활용한 공법이며 한성 백제기 풍납토성에도 사용됐다고 전한다.

전시실 내부에는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제방 축조 시 널리 이용된 무자위, 용두레, 맞두레, 타래박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수비로 본 합덕제
▲ 중수비로 본 합덕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합덕제
▲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합덕제

합덕제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인 만큼 역사기록이 많은데, 조선왕조실록에는 합덕제를 조선의 3대 저수지로 소개하고 있다.

수차례 중수와 폐지가 반복되기도 했는데, 1960년대 예당저수지 건립으로 저수지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게 된다. 제방의 서쪽 부분에 1800년 (정조24년)에 세운 둑의 개수비(改修碑)와 후에 건립된 중수비(重修碑) 등이 있다.

2005년에 합덕 수리민속박물관이 건립되고, 2007년부터 복원정비사업으로 합덕제의 복원 및 농촌테마공원이 조성되어 현재는 시민들의 역사문화교육공간이자 휴식공간, 생태와 환경보호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마트에서 특가 판매 중인 당진 '청풍명월' 쌀
▲ 마트에서 특가 판매 중인 당진쌀 '청풍명월' 

7월 초, 마트에 가니 당진쌀 '청풍명월'의 특가 판매가 진행 중이었다. 늘 마트 한쪽에 쌓여 있었을 텐데, 합덕제를 다녀오고 나니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백성들의 원성을 샀던 만석보와 달리 합덕제는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견고하게 만들었고, 7개의 수문을 조성하고 각 수문이 인근 마을에 물을 공급하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수문과 저수지는 각 마을에서 함께 관리하며 오늘날과 같은 품질 좋은 당진쌀이 생산되기에 이르렀다고 하니, 쌀알 하나하나 감사히 여기며 먹어야겠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개관시간: 09;00~ 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추석·설날 당일, 공휴일 다음날
-주소: 343-906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덕평로 379-9
-문의: 041) 350- 4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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