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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내 나이 75세 노년의 인생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에서 만난 담벼락 인생이야기

2021.06.17(목) 15:16:08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햇빛처럼 따스하고, 물처럼 부드럽고 흙처럼 진실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괜찮은 늙은이로 살고 싶습니다.”

1 ▲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골마을 담벼락에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한 노년의 인생을 글과 사진, 서예로 만났다. ‘젊은 시절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낸 자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라며 스스로의 자부심이 읽고 보는 이의 마음에 그대로 전해진다. 주인공의 인생은 가슴 한켠에 모닥불을 지핀다.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고 담백하지만 뭉클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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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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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의 시어머니와 병에 걸린 남편 뒷바라지는 주인공이 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덕산시장이 있는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우연찮게 서예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정숙한 여성은 한 생애 명예를 중요하게 지키고 절의가 굳은 선비는 그 지조를 당대에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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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노란 담벼락에 전시된 '75세 노년의 행복한 인생'

공들여 쓴 글이었는데 ‘정숙한 여성~’에서부터 그 옛날 조선시대 현모양처를 강조하는 것 같은 느낌이 엄습했다.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내 선입견 혹은 편견이 앞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글 아래 작은 글씨로 ‘주석’을 달아놓은 글을 읽어보니, 한 여성이 결혼하여 시집살이를 하며 살다가 시모 치매로 옴짝달싹 못하니 숨통 트일 구실로 시작한 게 서예였다는 것. 그때가 1999년이었는데 남편마저 폐암이었단다. 힘들고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성은 먹을 갈고 붓을 들었을 터, ‘~라떼’로만 다가왔던 서예 글은 내 눈을 더 크게 떠서 자세히 오래 바라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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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고 교우들과 기념사진 

서예글로부터 왼쪽으로 이어지는 사진과 글들은 시화전의 모양새였으나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였다. 결혼하여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가정을 위해 희생한 우리 어머니들의 인생이었다. 내 의지로는 약하니 신앙에 의지하며 절실함이 기도로 드러나기까지 깨닫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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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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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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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길의사 얼이 깃든 충의사에서 행사 참여한 사진으로 짐작해본다. 

야트막한 담벼락 아래 나란히 펼쳐놓은 인생 이야기는 슬프기만 하지는 않는다. 소녀시절의 꿈도 있고, 고달픔 중에도 어떤 행사에 사물놀이패들과 함께하며 웃고 즐기는 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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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이 세례를 받고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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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앙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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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를 받기 위한 출석카드의 꽉찬 도장들. 주인공의 성실함과 신앙의 의지가 짐작된다. 

자서전의 주인공은 일찍이 세례를 받았지만 시댁은 믿지 않는 집안이었고 성당은 멀어 저절로 냉담이 되었다. 큰아들이 공무원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져 묵주기도로 하느님께 간구하던 절절한 시간. 2천 년에 덕산에 오게 되면서 30년 이상의 냉담을 풀었다. 성당으로 돌아와 덕산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고 큰아들은 세 번째 시험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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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성당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읜 맏딸이며 가장이던 32세의 여성’이었던 주인공은 75세 노년의 인생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전시로서 이웃에게 전한다. 담벼락 전시장을 중심으로 덕산시장이 바로 근처에 있다. 시장이 있는 교차로의 큰길을 건너면 덕산성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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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초등학교 담벼락에 설치된  윤봉길의사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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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윤봉길의사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주인공은 왜 담벼락에 자신의 역사를 전시하게 되었을까. 근처를 걷다보니 덕산초등학교 담으로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가 글과 그림으로 전시되었다. 주인공은 아마 여기에서 힌트를 얻지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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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기로 얼룩진 액자

글과 사진 등을 읽어보면서 전시했을 당시를 거슬러보니 2018년쯤에 설치한 것 같다. 그때 주인공이 75세라 했으니 현재는 78세가 되었고 노년의 행복을 감사하며 이웃과 더 많이 나누고 있으리라. ‘작품’은 두꺼운 투명 아크릴판으로 덮고 테두리에는 역시 투명 실리콘을 둘러 마무리 했다. 비와 햇빛, 바람을 막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며드는 습기는 어쩔 수 없었는지 군데군데 얼룩이 지고 곰팡이가 슬었다.

인지증을 앓는 친정 노모를 만나고 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 기억력이 달리는 엄마. 수십 년이 지난 일은 금방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얘기하면서 당신의 나이나 오늘 날짜를 자꾸 되물으며 물어봤던 것까지 잊어버린다. 엄마의 지난 75세는 어땠을까.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75세는 또 어떨까.

파도처럼 수시로 밀려오는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담대하고 의연하게 ‘행복한 노년’을 전하는 저 담벼락 전시의 주인공처럼 나도 ‘괜찮은 늙은이’가 되고 싶다. 슬픔에 너무 빠지지 말고, 기쁨에 호들갑을 떠는 것도 경계하면서 그저 지금,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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