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천 리 물길 중간 정류장, 금강의 포구 '고마나루'의 오늘

2021.05.16(일) 01:28:27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명승 제21호 '고마나루' 전경
▲ 명승 제21호 '고마나루' 전경

401.79km에 달하는 금강(錦江)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전라북도 장수군 수분치(혹설은 뜸봉샘)에서 발원하여 대전시의 갑천, 세종시의 미호천으로 합류하다 서남쪽의 공주, 부여를 거쳐 서천군 일대에서 서해로 유입된다고 한다.

공주의 옛 이름으로 알려진 '고마나루'는 큰 마을을 의미한다는 설이 있지만, 현재는 송산리고분군 서쪽에 있는 금강 변과 나루터 일대를 일컫는다. 1,000리 물길의 중간 정류장인 고마나루의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로 '곰나루'라고도 불리며,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쓴다.

고마나루 가는 길
▲ 고마나루 가는 길

고마나루 숲길
▲ 곰 사당 가는 길의 고마나루 솔밭길

솔밭길이 잘 조성된 '고마나루'는 공주 10경 중 6경(금강)에 해당한다. 출사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이 산책로와 캠핑장으로 애용하는 곳이다. 

2021년 4월 5부터 공주 고마나루 내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 방제를 비롯한 수목 보호 사업이 시행되었는데, 이 사업은 2021년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방문 당시에는 큰 불편을 겪지 않았다.
 
천리물길중간정류장금강의포구39고마나루39의오늘 1

곰사당
▲ '웅진단'이라 쓴 현판이 걸린 곰 사당 전경

돌 곰상
▲ 사당 안에는 모형 돌 곰상을 모셔놓고 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이정표를 따라가니 고마나루 솔숲에 조성된 곰 사당이 보인다. 

백제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곰신상은 1972년에 공주시 웅진동 곰내골에서 출토되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유물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곰 사당에는 모형 돌 곰상을 모셔놓고 있다. 곰 사당은 조선시대 향교의 대성전을 본떠 건축했단다.

곰 사당 안에는 '웅신단비(熊神檀碑)'가 세워져 있다.
▲ 곰 사당 안에는 '웅신단비(熊神壇碑)'가 세워져 있다.

곰 사당 내에는 '웅신단비'도 세워져 있다. 고마나루와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을 적은 비다. 공주 고마나루로 이동하기 전 들렀던 공주한옥마을의 연못가 포토존에 적힌 애틋한 '고마나루 전설'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공주에 살던 암곰이 길을 잃은 나무꾼을 남편으로 삼아 두 명의 아이를 낳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나무꾼은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나무꾼이 탈출하였고, 이를 안 암곰이 아이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며 나무꾼에게 돌아올 것을 간청하였으나 나무꾼이 이를 외면하자 암곰은 두 아이와 함께 금강에 뛰어들고 말았다.

솔밭길에는 곰 조각상으로 조성된 구간이 있다.
▲ 솔밭길에는 곰 조각상으로 조성된 구간이 있다.

곰 사당을 둘러보고 고마나루 전망대 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곰 형상의 조형물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천천히 작품도 감상하고, 조용히 사색하고, 산림욕을 즐겨도 좋은 장소다.

웅진단터
▲ 고마나루 전망대를 가는 길목에 공주 웅진단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웅진단과 수신제
▲ 공주시에서 수신제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웅진단

방향을 틀어 고마나루 전망대를 향해 걷다 보니, 공주 웅진단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웅진단에 대한 기록은『삼국사기』,『고려사』,『세종실록』등의 문헌과 고지도에서 보이며, 2011년에는 이 일대에서 조선시대 웅진단 건물터가 확인되었단다.

웅진단 제사는 곰에 대한 제사가 수신(水神)에 대한 제사로 성격이 변하였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일제강점기를 산 어르신의 증언도 적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곰에 대한 제사로 생각하여 정월대보름에 웅진단에서 제를 올리고, 제사상에 곰이 좋아하는 도토리묵과 마를 올렸단다.

천리물길중간정류장금강의포구39고마나루39의오늘 2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마나루 풍경
▲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마나루 풍경

사방으로 연결된 교통망 덕분에 고마나루는 조선시대부터 1920년대 근대 교통수단이 등장하기 전까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수상로로써의 기능은 대부분 상실했으며, 1970년대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선주들 대부분은 배를 처분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공주 연미산 너머에 살며 1960~197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어르신이 등·하교 사정을 들려주신 일이 있다. 하루에 몇 번 운행하지는 않았지만, 고마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그나마 빨리 공주 중심지에 있는 학교에 도착했다고 한다. 배를 놓치면 육로로 몇 시간을 걸어 등·하교하는 방법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단다. 그만큼 수로 교통은 당시까지만 해도 중요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뱃사공들 또한 한때는 관아에서 급료에 해당하는 '지방(支放)'을 받을 만큼 마을에서 신임받는 인물들이 선발됐다고 들었다. 현재 칠십 대 어르신들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나룻배와 뱃사공은 이후 명맥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마나루를 떠나오기 전 전망대에서 암곰이 살았다는 강 너머까지를 꼼꼼히 살폈다. 배농사 짓던 몇 안 되던 과수농 마저 떠나고 코로나19까지 겹친 작금의 고마나루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만은 화려했던 그 옛날 고마나루의 번영과 활기를 기억하고 있으려나.... 


[참고문헌]
-충청남도, 충청남도평생교육진흥원『충남학의 이해』
-공주문화원, 장길수 『공주의 땅이름 이야기』
-박광수 「금강의 포구와 하운」
 
[공주 고마나루]
-소재지: 공주시 백제큰길 2045
 

엥선생 깡언니님의 다른 기사 보기

[엥선생 깡언니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