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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효종이 권육에게 내린 갈산리 곰솔 두그루

내륙의 논산시에 자리 잡은 해송 갈산리 곰솔 이야기

2021.04.13(화) 22:53:06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논산에서 만난 노거수.

떠올려 보면 한삼천리 느티나무도 있고, 전우치 나무라 불리는 성동은행나무, 그리고 명재고택에 있는 느티나무, 송불암의 미륵불에 절하는 소나무 정도가 생각납니다.

 그 중 하나인 366년 이상을 내륙에서 지낸 해송인 갈산리 곰솔 쌍군송을 소개합니다.

효종이권육에게내린갈산리곰솔두그루 1

충남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산 26-22에 있는 충남 기념물 제27호 효종이 신하였던 권육에게 내린 갈산리 곰솔 두그루는 내륙에서 보기 드문 해송인 곰솔인데요.

효종이권육에게내린갈산리곰솔두그루 2

갈산리 곰솔 남쪽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 내용을 한번 옮겨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갈산리 곰솔 葛山里 곰솔 (雙君松)충청남도 기념물 제27호 갈산리 곰솔은 효종이 충신 권육의 죽음을 슬퍼하며 권육의 무덤에 내린 나무입니다.

흔히 곰솔은 해송(海松)이라고도 불립니다.

효종은 예조판서 권육權育이 65세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상소하자 그의 고향인 이산(현 노성)에 현감 벼슬을 내렸습니다.

2년 뒤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1655년(효종 6)에 왕명으로 경기도 수원에 있는 곰솔 묘목을 그의 무덤에 옮겨와 심게 하고 쌍군송(雙君松)이라 이름지었습니다.

현재 이곳에 있던 권육의 무덤은 문중에서 1996년 4월에 공주 선영으로 옮겼지만 곰솔 2그루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 되는데, 동쪽의 곰솔은 높이 16m, 둘레 2.63m이고, 남쪽(? 서쪽)의 곰솔은 높이 12.5m, 둘레 2.2m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곰솔은 바닷바람이나 해일의 피해를 막는 방풍림이나 방조림으로 해안가에 주로 자생하는데 갈산리 곰솔은 내륙 지방에서 자라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곰솔의 분포 한계는 서해안의 경우 수원까지인데 그곳에서 옮겨왔다는 점에서 희소 가치가 있는 나무로 평가됩니다.

효종이권육에게내린갈산리곰솔두그루 3

갈산리 곰솔 중 서쪽의 이 소나무의 자태가 유난히 멋집니다.

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일반 소나무 잎보다 억세기 때문에 곰솔이라고 부르며 일반적인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색인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입니다.

특히, 바닷가를 따라 방풍림으로 자라기 때문에 해송이라 부르며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부릅니다.

효종이권육에게내린갈산리곰솔두그루 4

묘목을 1655년 심었다고 하니 올해로 366년이 넘은 소나무, 곰솔(海松-해송)인데 위용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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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랜 세월을 지내온 소나무가 마지막 가지까지 살아서 싱싱한 솔잎을 매달고 있는 모습에 경외심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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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쳐진 속의 두그루 소나무 곰솔이 바로 충남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곰솔 쌍군송.

그냥 보아도 그 위용이 다르죠?

뒤쪽에 보이는 소나무는 마을 길 때문인 듯 성장이 덜 된 것처럼 키와 둘레가 거의 1/2 정도로 작으며 동쪽(앞쪽) 곰솔의 모습은 대단히 우람한 모습입니다. 

효종이권육에게내린갈산리곰솔두그루 7

아랫부분은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이고 있는 모습이고 곳곳에 부러지고 잘린 흔적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건강한 모습인데요.

가지의 끝이 쳐지지 않고 하늘 치솟으며 자라는 모습이 정말 대단히 웅장해 보입니다.

효종이권육에게내린갈산리곰솔두그루 8

일반적인 소나무는 껍질이 대체로 붉은 빛을 띠는데 반해 곰솔은 검은 색에 가까운 붉은 색이라 더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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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두 그루 소나무는 충남기념물이고 그 뒤로 보이는 11그루의 소나무는 곰솔의 후손들이라고 하는데 소나무군의 사이에 권육의 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효종이 이렇게 소나무까지 내려 심어 관리하도록하고 소나무의 이름을 '쌍군송'이라 지어 부르게 한 권육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권육(權育)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업에 열중하여 조선 16대 인조 2년 갑자시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좌승지로 재직하던 중인 인조 14년,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수난을 겪은 후 이듬해인 1673년 4월 청나라와 화의가 맺어졌습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후의 효종)이 청나라로 가게 되자 두 왕자를 호위해 청나라 땅 선양에 들어가 정성껏 시중하고 인조 23년 왕세자를 모시고 귀국한 인물입니다.

고국으로 돌아올 땐 발달된 명나라의 문물과 과학 서적 그리고 많은 교재를 들여왔으며 권육은 이 자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 생활품을 연구·개발·제조하였고, 병기 제작에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하자 권육은 예조판서가 되어 국민 생활 안정에 힘썼다고 합니다.

효종이권육에게내린갈산리곰솔두그루 10

갈산리 곰솔 동쪽에 있는 집 마당에 이렇게 소나무가 한그루 자라고 있는데 곰솔인지 아닌지 궁금합니다.

계룡도령 춘월이 논산 노거수 중 하나인 효종이 권육에게 내린 갈산리 곰솔 두그루 내륙의 논산시에 자리 잡은 해송 갈산리 곰솔 이야기를 했는데요.

갈산리 곰솔을 찾을 때에는 근처에 있는 석성수탕석교, 노강서원과 유봉영당, 그리고 종학당과 명재고택, 윤황선생고택 등을 같이 둘러본다면 논산을 즐기는 최고의 역사 여행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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