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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산성동지(山城洞誌)로 살펴본 '풍물거리길' 연대기

2020.12.28(월) 18:59:15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2008년 10월 20일, 공주시의 산성동·웅진동 주민센터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산성동은 행정동으로서는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2010년, 자칫 잊히게 될 산성동의 역사와 문화를 전승할 목적으로 '산성동지(山城洞誌)'가 편찬된다. 이 '산성동지'에서는 1895년 5월 1일자 인천 영사관 보고를 인용하고 있는데, 충청남도의 상업 중심지인 공주·강경·논산·예산·둔포(아산시 둔포면 둔포리에 있던 포구)시장은 주변의 정기시장들을 포섭하면서 각 장시의 상품을 집하하고 배급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적고 있다. 특히 대구, 전주와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렸던 공주는 1900년을 전후한 시기 충남 각처의 수출입 화물이 유통되었다고 한다.
 
구한말까지 충청권의 중심시장 역할을 수행하던 공주읍내장은 1905년 1월에 경부철도가 완공되고, 1914년 1월에 호남철도가 개통되나 공주를 비켜 지나가게 되는 데다 1932년 10월,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자 상인조직인 '공주상번회'는 공주 갑부 김갑순 소유의 사설1호시장인 '중동시장'의 공주읍 직영제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여러 논란 끝에 공주 읍영시장터는 중동 제민천 인근의 미매립지와 신시가지(지금의 공주 큰사거리) 인근 산성동 지역을 매립하는 방식으로 마련되어 1937년 2월 20일, 산성동 182번지 일대에 공주산성시장이 설립된다. 이후 시장터는 북쪽 저습지로 확대되어 현재는 시내버스터미널 인근까지 확장됐다고 한다.
 
1960년대 공주장(사진 이건이, 출처 산성동지)
▲1960년대 공주장 풍경(사진 신건이, 출처 산성동지)
 
2020년 공주장날 풍경
▲2020년(코로나19 발생 이전)의 공주장날 풍경
 
상설시장과 달리 매달 1일과 6일마다 서는 공주정기장 풍경을 살피면, 100여 년도 더 된 그 옛날 상거래 방식의 원형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상인들은 팔고자 내온 상품을 포장하지 않은 채 좌판을 벌이고, 여전히 손님과 가격 흥정을 통해 거래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공주산성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대표적인 변화를 보이는 곳이 공주시 제민천변에 형성돼 있던 '뚝방시장' 자리에 개설된 '풍물거리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공주 우시장이 서던 자리를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2017년 9월 21일, 공주시 '풍물거리길'에는 우시장이 섰던 자리를 알리는 조형물(준공비)이 세워졌다
 
공주 우시장(출처 산성동지)
▲공주 산성동에 있었던 우시장 풍경(출처 산성동지)
 
공주산성시장 공영주차장(옛 공주전신전화국) 인근에 우시장이 있었다.
▲공주산성시장 공영주차장(옛 공주전신전화국) 인근에 우시장이 있었다. 
 
공주 우시장은 옛 '공주전신전화국' 자리 인근에 섰다고 한다. 공주 우시장은 인근 다른 시장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장이 설 때마다 100여 마리 이상의 소들이 출시됐단다. 공간은 넓은데, 매일 장이 열리는 것이 아니어서 우시장이 서지 않을 때는 약장수들이 서커스나 차력, 바이올린 연주 등을 하며 잡화를 팔았기 때문에 도로정비사업 후 이 일대에 '풍물거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공주 우시장은 산성동에서 옥룡동으로 이전했다가 신도심인 강북지역 예비군 훈련장 인근지역으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옛 도축장터(현재 궁전타운)
▲옛 도축장터(현재 궁전타운)
 
산성동 우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빌라터는 일제강점기에 도축장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이 일대를 '도수장 동네' 혹은 '도살장 동네'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1960년대 미나리꽝(사진 신건이, 출처 산성동지)
▲1960년대 미나리꽝 풍경(사진 신건이, 출처 산성동지)
 
▲ 금성동배수장 문화공원
▲금성동배수장 문화공원 전경
 
공주사람들은 공주공산성 금서루 앞, 연문광장 인근 너른 저습지를 '미나리꽝' 또는 '미나리깡'이라 부른다. 1984년 12월부터 일대가 매립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려우나 6·25 전쟁 후, 논산훈련소에 납품될 정도로 맛 좋은 미나리가 재배되던 곳이란다. 1990년대에 관광단지로 조성되면서 상점, 식당, 숙박시설 등이 들어서 있고, 금성동배수장을 중심으로는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뚝방 상가
▲제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아올린 '뚝'에 점포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뚝은 '대부' 혹은 '대부뚝'이라 부른다(출처 산성동지)
 
뚝방시장 입구에 서 있던 조형물
▲현재 뚝방시장 입구에 서 있던 조형물은 없어졌으나, 부자떡집 옆 골목 입구에는 아직도 동일한 조형물이 남아 있다
 
교촌교
▲'교촌교'는 인근에 있었던 제세당한약방의 이름을 따서 '제세당교'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병용' 공주시 초대 민선시장 시절, 노점상을 구제하기 위해 2010년 준공된 공주산성시장 문화공원(교촌교)에서 금성동배수장까지의 제민천변(뚝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89칸의 점포를 지어 이를 무상(제비뽑기 방식)으로 제공했다. 그러나 500~3000만 원까지 권리금을 받아가며 전매하는 관행이 생겨났으나, 이를 막지 못했고, 기형적으로 점포수만 늘어갔다고 한다. 이에 공주시는 구도심 활성화와 역사, 문화, 관광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 불법상가의 정비 필요를 절실하게 느꼈다. 가건물 철거에 24억여 원이라는 큰 사업비가 필요했던 데다 삶의 터전을 잃은 상점주의 거센 반발로 공주시의 사업은 지연됐으나, 대의를 위한 공감대 형성과 긴 설득으로 2014년 3월 25일부터 2017년 9월 3일까지 공사구간 내 188동의 상점을 철거하고, 도로를 개설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주시 풍물거리길
▲공주시 풍물거리길
 
공주시 원도심(강남)의 상권은 1980년대까지 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1983년과 1986년에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고, 1987년 백제대교 완공과 1991년 신터미널 준공 및 호텔, 아파트, 대형 상가 조성 등으로 신도심(강북)으로 상주인구가 집중되면서 상권도 함께 옮겨가기 전의 얘기다.
 
길게 쭉 뻗은 공주시 '풍물거리길'에 서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옛 우시장이며 뚝방시장, 미나리꽝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이제껏 미처 보지 못했던 흥망성쇠의 요철만이 눈 앞에서 아른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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