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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한성에서 웅진으로Ⅱ-백제의 계획도시, 세종 나성동

국립공주박물관서 2021년 3월 1일까지 전시

2020.09.22(화) 13:42:22 | 금강뉴스 (이메일주소:ydsrosa@naver.com
               	ydsrosa@naver.com)

국립공주박물관은 2020년 특별전 ‘한성에서 웅진으로Ⅱ-백제의 계획도시, 세종 나성동’을 2020년 9월 22일부터 2021년 3월 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연기 나성리(세종 나성동)출토유물

▲ 연기 나성리(세종 나성동)출토유물


지난해 ‘한성에서 웅진으로Ⅰ-공주 수촌리’에 이어 세종 나성동유적을 중심으로 백제가 웅진(현재의 공주)으로 천도遷都하게된 배경을 살펴보고자 기획됐다.

세종 나성동유적(옛 연기군 남면 나성리 일대)은 2010년에 조사된 한성기 백제의 대규모 취락유적으로 백제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유적은 금강 북안의 넓은 공터에 도로를 먼저 설치하여 구획을 나누고, 각각의 공간에 지배자집단의 거주 공간으로 추정되는 구획저택(區劃邸宅), 그리고 물품 보관을 위한 창고시설로 파악되는 지상식 건물 등 기반시설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계획도시 모습과 닮아 있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했다.

1부 ‘금강과 세종-충청·전라·경상의 강물이 만나다’에서는 백제가 현재 세종 나성동 일대에 지방도시를 만들게 된 배경과 주변지역 지형경관을 살펴보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을 비롯한 조선시대 지도와 서책에서 확인되는 나성동과 그 주변 모습을 소개한다.

연기 용호리(세종 용호리) 출토 소용돌이무늬 칼

▲ 연기 용호리(세종 용호리) 출토 소용돌이무늬 칼


2부 ‘금강 유역 세력의 성장’에서는 백제의 도시가 만들어지기 이전 세종의 모습을 소개한다. 쇠로 만든 농기구의 등장으로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사회 계층화가 진행되는 등 이전 시기와는 다른 생활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변한(弁韓)·진한(辰韓)과 교류하였던 양상도 확인된다. 말 모양 허리띠 고리[馬形帶鉤]를 비롯하여 세종지역에서 확인되는 철제 농공구, 토기, 장신구 등 관련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3부 ‘백제의 계획도시’는 나성동에서 조사된 한성기 백제 도시를 조명한다. 고상(高床)창고군과 주변에 마련된 도로의 존재 등으로 볼 때, 금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주변 지역의 물자를 받아서 모으고, 이를 중앙으로 보내는 중간 집하지로 활용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나성동 세력은 백제 중앙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으며, 이러한 관계가 백제 왕실이 웅진으로 도읍을 정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기 응암리유적(세종 용호리) 출토 말모양 허리띠꾸미개

▲ 연기 응암리유적(세종 용호리) 출토 말모양 허리띠꾸미개


전시에는 나성동유적 출토 금동신발[金銅飾履], 금동허리띠장신구[金銅?帶金具], 토제 장고杖鼓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과거 백제의 계획도시였던 세종은 1,600여 년이 지난 지금 44개의 중앙행정기관과 15개의 국책연구기관, 그리고 4개의 공공기관 등이 자리 잡은 인구 약 35만명의 도시로 성장했다.

나성동 일대 백제의 계획도시는 사라졌지만, 현재의 계획도시인 세종시의 일부가 되어 현재의 삶과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이 됐다.

특별전 ‘한성에서 웅진으로Ⅱ-백제의 계획도시, 세종 나성동’에서 나성동 도시유적을 중심으로 금강 유역 지방세력의 문화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백제 웅진 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역사적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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