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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양10경 최익현 선생의 사당 모덕사

대쪽같은 조선의 선비 면암 최익현

2020.09.05(토) 08:33:09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시 우성면 용봉리 일대를 지나다 보면 아름다운 저수지인 우목저수지를 만나게 됩니다. 저수지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에 모덕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은 청양군 목면에 속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우목저수지를 경계로 해서 공주시와 청양군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지요.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1
 
우목저수지를 건너기 전에는 공주시였는데, 중간에 청양군이 됩니다. 즉 왼편은 청양군, 오른편은 공주시에 속하는 것이지요.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2
 
왼쪽인 청양군에 순국선열 최익현의 사당 모덕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덕사 안에 꽤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바로 차를 몰고 커다란 대문안으로 들어가 세웁니다.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3

그리고 바로 면암 최익현 선생의 동상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최익현 선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최익현 상소'인 것 같습니다. 조선 말 대원군 집정 시기에 수차례 상소를 올려 흥선대원군의 10년 독재르 무너뜨리기까지 한 분이시지요.

1876년, 일본이 군대를 이끌고 수교를 강요하자 도끼를 메고 광화문으로 달려가 일본과 수호통상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고 소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박제순을 비롯한 다섯 매국노를 처단하라고 소를 올리는 등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고, 의병을 일으켜 일본에 맞서 싸우는 등 대쪽같은 성품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쓴 분이 바로 이곳 충청남도 청양에 모셔져 있습니다.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4
 
청양 모덕사 전경입니다. 모덕사는 조선 말의 대학자이며 의병대장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항일투쟁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 창건된 사당입니다. 이곳에는 최익현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비롯한 최익현 선생과 관련된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덕사는 1984년 충남문화재자료 제152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청양10경의 하나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5
 
청양 모덕사에 들어서면 먼저 현대식 기와 건물인 관리사무소를 마주하게 되며, 이어서 대의관·춘추각·영모재가 늘어서 있고 최인현 선생의 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최익현 선생을 모시는 사당과 최근에 지어진 영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6
 
울창한 송림을 배경으로 한 모덕사 관리사무소의 모습입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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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핀 배롱나무 꽃 뒤로 대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의관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생전에 사용하던 피혁류, 필기구 등 총 9종 128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역시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하여 휴관중이라서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8
 
춘추각은 면암선생의 서책, 서간문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전적류 4023점, 서찰 및 고문 서류 1974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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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덕사 최익현 선생의 재실 영모재입니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유생들이 공부를 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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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선생의 고택입니다. 원래 최익현 선생이 태어난 곳은 강원도 포천입니다. 최익현 선생은 청양에 자리를 잡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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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택은 1900년 최익현 선생이 건립하였으며, 안채·사랑채·영모재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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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 가옥의 일반적인 구조의 하나로, 가운데 마당을 두고 네모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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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선생은 이곳 사랑채에서 애국지사들을 모아 강의하거나 독립운동을 논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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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바로 옆에는 면암선생의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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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당의 이름이 바로 모덕사입니다. 이곳에는 최익현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16일 이곳에서 유림 주관으로 추모제를 지낸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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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선생의 영당 앞에는 홍살문이 높이 서 있습니다. 홍살문은 출입의 기능보다는 상징성이 더 중요한 문입니다. 문짝이 없이 두 개의 기둥 위에 삼지창이나 태극 문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홍살문은 서원이나 향교, 능과 묘 앞에 설치되어 있는데 붉은 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은 나쁜 액운을 공격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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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영당의 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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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이 봉안되고 있는데 현판에 성충대의라고 써져 있군요. 이곳에서 매년 최익현 선생의 의병 기념일인 4월 13일에 청양군 주관으로 추모제를 지낸다고 하니 그 때 다시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19
 
영당 앞에는 '성충대의의사비'라고 써져 있는 최익현 선생의 '면암어록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침 사비를 들여 거대한 이 비석을 세웠다는 김기승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기승씨는 청양에서 광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분으로 최익현 선생의 대쪽같은 선비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자 모덕사 어록비와 표지석을 설치하고 수시로 들러 보수 정비를 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어록비에는 최익현 선생이 의병을 일으키면서 쓴 '포고팔도사민'이라는 글이 써져 있습니다. 

 '아, 슬프다. 오늘날의 국사를 차마 어찌 말하랴. 
 아, 지난 10월 20일의 변은 전 세계 고금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이웃 나라가 있어도 스스로 결교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결교하니 이것은 나라가 없는 것이요, 우리에게 토지와 인민이 있어도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대신 감독하게 하니, 이것은 임금이 없는 것이다. 나라가 없고, 임금이 없으니, 우리 삼천리 인민은 노예이며, 신첩일 뿐이다. 남의 노예가 되고 남의 신첩이 된다면, 살았다 하여도 죽는 것만 못하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최익현 선생의 나라 잃은 울분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청양10경최익현선생의사당모덕사 20
 
모덕사 앞에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정말 청양10경의 하나로 전혀 손색이 없는 절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익현 선생은 불의에 굽히지 않고 목숨까지 내던지며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애쓰셨습니다. 수차례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다 유배되기를 반복하고,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싸우다 결국 체포된 최익현 선생은 대마도로 압송되어 적이 주는 음식은 먹지 않겠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운명하였다 합니다. 
 
혹자는 최익현 선생은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다만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는 울분이 그를 강직하고 대쪽 같은 선비의 성품으로 만들었으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목숨도 아깝지 않게 버린 것이지요.
 
오늘 청양 모덕사를 돌아보며 면암 최익현 선생의 높은 기개와 뜻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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