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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문이었던 온주아문과 동헌

기구한 역사의 현장 아산 온주아문

2020.08.30(일) 13:55:19 | 대로 (이메일주소:dried@naver.com
               	dried@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에 가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인 온주아문과 동헌이 있습니다. 온양초등학교와 바로 이웃하고 있어서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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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작은 야산을 배경으로 2층의 문루가 제법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온양초등학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 온양 시내버스 100번, 101번, 150번, 151번, 171번 등이 이곳을 경유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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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 바로 앞에는 크지는 않지만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어서 주차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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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溫州衙門)은 조선시대 온양군(溫陽郡)의 관아 문루입니다. 조선시대 고중 임금 흥선대원군 섭정시에 국정쇄신의 일환으로 온양군의 관아를 개축하면서 이 문루도 함께 개축하였다고 합니다. 온주아문과 동헌은 지금은 아산시 온양동에 속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온양군 읍내면에서 아산군 온양면 읍내리로 바뀌었다 합니다. 신라 때인 663년(문무왕 3)에 군 이름을 온주(溫州)라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따라 온주아문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온주((溫州)는 글자 그대로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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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 담장 옆에는 비석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두 11기의 비석이 있는데 이곳에서 재임하던 군수들과 충청도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념하고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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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아문 삼문의 양 옆문 앞에는 '문화재 출입·접촉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는 수레가 하나씩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는데 최근에 수집되어 전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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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 마당에 들어와서 2층으로 되어 있는 온주아문을 바라다 봅니다. 2층 마루는 출입이 금지되어 올라가 볼 수 없었지만 수문장이 저곳에 올라 창을 들고 관아를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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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뜰에는 연륜이 느껴지는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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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온주아문에서 50여 m 떨어진 동헌 앞에 서 봅니다. 정면 6칸, 측면 2칸, 도합 12칸 기와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입니다. 팔작지붕은 맞배지붕과 함께 한식 가옥에 많이 쓰이는 지붕 형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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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조선시대 온양군 동헌으로 쓰이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주재소로, 해방 후에는 파출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온주동 동사무소로 사용하였으며 1933년에 수리 복원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온주아문과 동헌은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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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 동헌 현판에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봅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의 건조물로 온주동헌이라 부른다. 온주라고 한 것은 신라 문무왕 때 군 명칭을 온주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1871년(고종 9년) 대원군 섭정시 중수되어 관아로 사용되었고 시 개청 이후 동사무소 등으로 사용되어 오다 1990년 9월 27일 충청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으나 건축물의 원형이 심히 퇴락되어 온양시에서 예산 1억 7천만원을 들여 1993년 4월 복원공사를 착수하여 1994년 5월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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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뒤로 가 봅니다. 담장과 동헌 건물 사이에 굴뚝 2개가 나란히 있는 것으로 보아 온돌이 설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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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무늬 창문이 방과 마루 사이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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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마룻바닥에는 문화재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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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의 뜰에는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굴되어 보존되고 있군요. 기록에 의하면 동헌 외에도 아사와 객사, 무학당, 향청 등이 있었다 하는 것으로 보아 그 건물터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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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주변에는 감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이 녹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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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옆에서 심은 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소나무 군락 아래 자연석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쉼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온주아문은 아산 온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온양향교와 당간지주 등 문화재가 산재합니다. 아산 온천을 찾으시거든 이곳에도 들러서 우리 조상들의 향기를 느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산 온주아문과 동헌
-충청남도 아산시 온주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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