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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의 4대하천 유역을 중심으로...유등천(버드내유역) 진산면 (엄정리,만악리)

2020.04.14(화) 14:19:12 | 금산신문 (이메일주소:gsnews4700@naver.com
               	gsnews4700@naver.com)

뜬바우마을(부암1리) 전면으로 흐르는 유등천변에서 바라본 부수바우와 마을 보호수인 노거수와 그 밑의 정자등이 어울어져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 뜬바우마을(부암1리) 전면으로 흐르는 유등천변에서 바라본 부수바우와 마을 보호수인 노거수와 그 밑의 정자등이 어울어져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마을로 흐르는 계곡수 주변으로 주거지가 옹기종기 자리하여 외부에서는 자칫 스쳐 지나가는 탓에 마을의 위상을 쉽게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마을 안쪽의 너른 산자락에 펼쳐진 농경지가 비교적 많이 개간되어 잘 발달하여 있다.

산간마을로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농경에 적합한 지형을 이룬다. 지금도 대규모의 축사시설이 산자락에 자리하는가 하면 전원마을 택지가 잘 조성되었다.
 
옛 생활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엄정리마을.
▲ 옛 생활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엄정리마을.

지금도 상엄정리는 우물터 등 예전 생활방식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을의 규모로는 중엄정리가 단연 압도한다. 신작로를 중심으로 마을 중심부를 가르는 하천변에 그루터기 보호수와 정자 등 주민들의 쉼터를 비켜서 드나들게 하였다. 특히 마을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두 돌탑의 위엄은 찾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소류지에서 바라본 목동골 풍경
▲ 소류지에서 바라본 목동골 풍경

엄발원지인 석막리를 기준하여 이번엔 부암리 목(木)골 마을로 걸음을 옮겨 본다. 마을에 큰 못이 있어 못골이라 한 것이 변하여 목골(목동)이라 부르게 됐다. 지금은 빈집이 곳곳에 산재하지만 마을의 규모로 보아 한 때는 제법 위세로웠음이 짐작된다. 이번엔 조용히 뻗은 포장도 따라서 걷다 보면 저만치 가막골의 독특한 풍경이 눈에 뛴다. 옛날 마을에 그릇 가마가 있었으며, 또한 마을에서 분토가 났기에 가막골 또는 분톳골 이라 불렀다.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마을의 규모로 보아  짐작된다. 재밌는 것은 집집마다 자신만의 개성을 품고 있다. 어느집은 배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석류나무 등 마치 작은 과수원이 마당에 펼쳐있고, 어느 집은 제법 규모 있는 옛 방식의 목조 창고가 눈길을 끌고, 특히 마을 중심에 있는 경로당은 작지 않은 규모의 연못에 잉어와 향어등 제법 토실한 어류들을 기르고 있다. 이 또한 마을의 세거지를 이룬 한 독지가가 시사한 것이라 하여 주민들도 보호망 설치등 세심한 보살핌으로 관리하고 있다.
 원 만악리 초입에 펼쳐진 마을숲 역할을 하는 노거수.
원 만악리 초입에 펼쳐진 마을숲 역할을 하는 노거수.

68번 도로를 따라 부암삼거리에 이르면 일명 뜬바우 또는 부수바우라고도 부르며, 마을 동쪽에 있는 바위로 큰바위 위에 작은바위가 얹어 있는 바위로 긴 실을 마주잡고 바위틈에 가로 넣으면 그 실이 거침없이 빠져나가는 바위이므로 뜬바위라고 부르는 지금은 부암1리(부수바우) 마을이 유등천변에 자리 한다. 부수바우마을은 주민간 향약이 아직도 남아 있어 매년 출향인과 주민간의 마을 화합 대회는 물론이요 경노사상의 전승으로 마을 어르신들에 관광을 시켜드리는 등 전통적 충효사상이 잘 보존되어 오는 마을이다.

비록 토양과 산세는 열악하여 부족한 농토와 자원 부족으로 자생적 농경 산업은 발달하지 못하였으나 최근엔 독특하고 깨끗한 주변 산세를 개발하여 펜션과 레저시설 설치등으로 조성하여 전원주택지와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부암리의 매력을 뒤로하고 이웃 마을 만악리로 걸음을 재촉해본다. 만악리는 다른 마을보다 늦게 생긴 마을로써 처음에는 만락(晩落)이라 부르다가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많았기에 만악동, 만악골이라 고쳐 부르게 된 풍류의 마을로 소문난 곳이다. 지금은 원만악리로 예전 명성의 흔적을 였볼 수 있다.
 

신작로와 나란히 늘어서 있는 중엄정리마을 전경.

▲ 신작로와 나란히 늘어서 있는 중엄정리마을 전경.


만악2리 초미동(初味洞)은 만악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초내밋골 또는 초내미라고 부르고 그 골짜기가 안고 있는 것 같은 지형이라 하여 초미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을 이름도 예쁘지만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옛 생활 문화의 흔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대 흐름으로 주거 문화의 양식이 많이 변화한 탓에 지금은 마을 촌로의 설명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옛이야기로 남아 있다.
 
폐교로 교정만 남아 있는 옛 만악초등학교터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만악 3리의 놋종골 또는 유점(鍮店)동이라고도 부르는 옛날에 놋그릇 점이 있었던 마을이 자리 한다. 또한 신동(新洞) 마을이 새로 생겼다 하여 신동이라 부르고, 탱석동으로 청동기시대부터 형성된 마을로 지석묘가 있어 괸돌, 상탱석(위괸돌) 하탱석(아래괸돌) 이라고도 불렀다.

마을로 흐르는 계곡수 주변으로 주거지가 옹기종기 자리하여 외부에서는 자칫 스쳐 지나가는 탓에 마을의 위상을 쉽게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마을 안쪽의 너른 산자락에 펼쳐진 농경지가 비교적 많이 개간되어 잘 발달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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