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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공주교육대학교, 나무를 보고 역사를 안다

공주 사람의 공주 이야기

2020.04.06(월) 18:10:20 | 잔잔한 미소 (이메일주소:ih2oo@hanmail.net
               	ih2o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주교육대학교, 나무를 보고 역사를 안다
공주사람의 공주 이야기

공주교육대학교는 공주시 웅진로 27에 주소를 두고, 1938년 4월 1일 공주여자사범학교로 시작하여, 공주사범학교와 2년제 공주교육대학을 거쳐, 1982년 3월 1일 4년제로 개편되었으며, 1993년 3월 1일 공주교육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후 현재에 이르러 2020년 4월 1일 개교 82주년을 맞은 학교이다.
 
공주교육대학교
▲공주교육대학교

공주교육대학교는 유능한 초등교원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아 개교 이래 우리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배출한 역사 깊은 학교이다. 대전광역시나 세종특별자치시에도 없는 학교, 우리 충청남도의 자랑인 국립공주교육대학교이다.

필자는 공주 시민이자 공주교육대학교(이하 공주교대)의 전신인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오늘의 공주교대 캠퍼스에서 지난날 사범학교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공주교대는 공주시청의 경계로부터 일락산 밑으로 10여 개가 넘는 건물과 운동장, 그리고 부설초등학교까지 길게 자리하고 있다. 옛날 본관 1동 교사는 지금의 실과관과 입지관 자리에 2층 건물이 서 있었고 그 뒤에 2동, 3동 교사가 나란히 서 있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옛 건물은 하나도 없고 새로운 대학 건물이 들어선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공주교대 캠퍼스 지도(학교 홈페이지 캡처)
▲공주교대 캠퍼스 지도(학교 홈페이지 캡처)
 
사범학교 때의 주요 통학로는 제민천 냇물 따라가는 길이었다. ‘드높은 일락산은 푸른 하늘 찌르고, 흐르는 제민천의 물소리도 맑구나’ 하는 교대부설초 교가를 생각하면서 걷던 길이 생각난다.

사범학교 옆 도로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공주시청 앞 회전교차로부터 교대 앞 도로가 확장되면서 길가 나무들이 베어져서 삭막한 느낌인데 나무 그늘이 아쉽다.
 
공주교대 옆 도로
▲공주교대 옆 도로

공주교대 정문을 들어서면 도서관과 과학관 사이의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 사제동행(師弟同行) 상이 서 있다. 선생님이 두 제자와 함께 책 읽는 모습이다. 이 은행나무의 연륜처럼 사제동행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나라 교육에서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본다.
 
공주교대 사제동행 상
▲공주교대 사제동행 상

옛날 사범학교 교문은 지금의 체육관과 입지관 사이에 있었다.

교문 들어가는 길 양쪽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 있었는데 지금도 고목 은행나무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이 교문을 드나들던 수많은 사람을 저 나무들은 알 텐데.

등교 시간의 교문 앞에는 늘 완장 찬 기율부가 지키고 있었는데, 복장 불량인 학생을 지도하는 당시의 규율은 매우 엄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범학교 학생들 중에는 교칙 어기는 사람이 드물었다.
 
공주사범학교 때의 교문 있던 자리
▲공주사범학교 때의 교문이 있던 자리
 
공주사범학교 교문 모습(출처 공주사범학교 1963년 졸업 앨범)
▲공주사범학교 교문 모습(출처 공주사범학교 1963년 졸업 앨범)

지금의 공주교대 운동장은 어느 운동장보다도 훌륭하다.

우레탄으로 된 달리기 코스와 인조 잔디 축구장을 보니 과거 사범학교 시절, 흙먼지 나는 넓은 운동장에서 조회도 하고 체육 수업도 하고 가을 운동회도 하던 생각을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공주교대 운동장
▲공주교대 운동장
 
공주사범학교 학생들의 체육활동
▲공주사범학교 학생들의 체육활동(출처 공주사범학교 1963년 졸업 앨범)

운동장가에 큼직하게 서 있던 나무 한 그루, 지금은 나무도 늙어서 허리 구부러진 사람처럼 큰 가지가 땅 가까이 굽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저 나무도 이곳 운동장을 오가던 사람들을 다 기억할 텐데.
 
운동장 가의 꽃개오동 나무
▲운동장가의 꽃개오동 나무

사범학교 다닐 때 놀라운 사실 하나는 그 당시 화장실에 신을 벗고 드나든 것이다. 60년대 화장실은 어디를 가나 시멘트 바닥으로 된 화장실이어서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시절 학교 화장실 바닥에 나무 발판을 깔아서 교실부터 맨발로 용변을 보러 다니게 한 그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다음은 학교 구내매점 이야기,

지금처럼 전에도 학교 안에 매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 먹던 만두나 찐빵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옛날 학생 시절은 왜 그리 배가 고픈지 아침 먹고 나면 금방 배고픈 증상이 바로 나타났고 빵 몇개 정도야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는데 그때 빵과 같이 마셨던 어묵 국물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범학교 다닐 때 듣던 점심시간의 음악 방송 이야기다.

60년대 학교 방송실에서 들려주던 노래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은 맑은 음색의 예쁜 소녀가 불렀던 곡으로 기억하는데, 베사메무초와 케세라세라, 소녀의 꿈 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노래들이다. 학생 시절의 학교 음악방송이 이렇게 오래 기억되는 매력을 지녔다. 학교 음악방송에서 선곡도 중요하고 들려주는 음질도 좋아야 한다.
 
학교 옆 일락산에 아카시아 꽃필 무렵은 그 꽃향기가 은은하게 교실까지 스며드는데 듣는 아름다운 음악은 지금도 달콤하다.
 
공주사범학교 교사(校舍)((출처 공주사범학교 1963년 졸업 앨범)
▲공주사범학교 교사(校舍)(출처 공주사범학교 1963년 졸업 앨범)

우리가 그때 들어가기 어려운 사범학교에 다닌 것은 당시 가정 경제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다닐 형편이 못 되니 중학교 졸업하고 3년제 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월급을 탈 수 있는 학교가 바로 사범학교였다. 3년 동안 사범학교에 다니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점 가운데 다음 몇 가지는 지금도 인상에 남는다.

60년대 초, 그 당시에 실험 실습 교육을 했다는 점이다. 학교에 토끼 사육장을 만들어 먹이 주고 커가는 모습을 관찰하였으며, 자전거 단원에서 힘의 전달 원리를 실물 자전거로 배웠고, 시내 철공소에서 현장 밀링머신 실습도 하였다.

국어 시간에 들려주는 선생님의 말씀은 실제로 학교생활과 연결되는 문제여서 예화의 소재는 언제나 학생 가까이서 찾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시설도 열악했던 그 시절에 영어 회화 테이프를 틀어주시던 담임선생님은 교사의 학생을 위한 정성이 무엇인가를 나에게 일깨워 주셨다. 그래서 교육은 사제동행이며, 제자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옛날 하숙집 이야기다.

제민천 중동교 부근에 공주시에서 만든 하숙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공주시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이다. 60년대 우리 친구들은 대개 외지에서 유학 온 사람들이어서 학교 가까운 곳에서 방을 얻어 둘이나 셋이서 하숙을 하였다.

그 당시 하숙비가 한 달에 쌀 대여섯 말이었던 것으로 안다. 학교에서 가까운 반죽동, 중학동, 금학동에 학생 하숙집들이 많았다. 오늘날은 학교마다 거의 생활관이 있고, 또 학교 주변에 원룸 형태의 주거 공간이 생긴 것과는 상당히 비교되는 이야기다.
 
공주 하숙마을
▲공주하숙마을
 
공주 오거리
▲공주오거리

흔히 공주를 교육도시라고들 한다. 학교가 많고 그만큼 학생 수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공주에서 학교 다니는 모든 학생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우리 공주 시민의 할 일이다.

공주교대 앞에 붙은 플래카드를 보면서 총장 임명 과정의 난항이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하루빨리 공주교대 총장 임명이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공주교대 정문
▲공주교대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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