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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봄기운 가득한 충청수영성

2020.03.24(화) 00:55:38 | 가람과 뫼 (이메일주소:caption563@naver.com
               	caption56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홍예문
▲홍예문
 
충청수영성은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소재하고 있다. 

고려말 잦은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방어진을 설치 하였다가 세종 때 규모를 확대하여 수군기지를 정비하였다 한다. 충청수영성은 외적을 방어하고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안내 및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충청 수군은 임진왜란 때에는 남해 바다에 나아가 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과도 연합 작전을 하였다. 당시 수사였던 최호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 장군과 연합 작전 중 왜군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한다.
 
충청수영성은 1510년 수사 이장생이 성곽을 축조하였는데, 길이는 3,147척(1,650m)이고, 높이는 11척이었다 한다. 축조 방식은 다듬은 돌을 안과 밖에 놓고 그 사이에 흙과 돌을 채운 '내탁법'을 취하였다. 북쪽과 남쪽은 산능선을 따라 쌓았고, 서쪽은 바다에 면한 지점에 축조를 하였으며 유자 모양의 포구를 이룬 것이 전형적인 조선시대 수군진의 모습을 띄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안에는 우물이 4곳이었고 연못 한 곳이 있었으며, 옹성 5군데에 성문 역시 5곳을 두었으며, 동헌·영보정 등 33동 312칸의 건물이 있었다 한다.
 
진휼청
▲진휼청
 
수영에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고자 설치하였던 진휼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 형태이고 그 안에는 침실과 부엌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오랜 세월 탓에 현재 수영성 내에는 진휼청과 영보정만 남아 있다.
 
영보정
▲영보정
 
성벽을 따라 걷다 영보정에 올랐다. 탁 트인 전망이 세파에 찌들어 답답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씻어 버린다.
겨우내 움추렸던 몸을 피고 한껏 기지개를 켰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거쳐갔다는 영보정은 성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여 오늘도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말이 없다.
 
성내 전경
▲성내 전경
 
성벽
▲성벽
 
오천항
▲오천항
 
수영성을 둘러 보고 오천항에 들렀다.

코로나19 탓인지 한산한 거리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긴 듯싶다. 민생고도 해결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조도 할 겸 음식점을 찾았다. 마침 요즘 한창이라는 키조개 손질에 여념이 없는 아주머니의 친절한 안내로
모듬요리를 주문하였다.
 
키조개
▲키조개 관자
 
봄기운 가득한 충청수영성 1
 
봄기운 가득한 충청수영성 2
 
봄기운 가득한 충청수영성 3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에 키조개 요리가 한상이다.

키조개 회, 무침, 구이, 샤브샤브에 칼국수까지 장정 너댓 명이 먹어도 충분한데다 즉석에서 요리해 주는 신선함과 맛은 모처럼 나선 봄나들이의 행복이었다. 모처럼 함께한 일행들과 맛있는 포식을 하였다.
 
포구풍경
▲포구 풍경
 
웃고 떠들다 보니 노루꼬리 만한 해가 서산에 기웃하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날이 이제 곧 오지 싶다.
 
석양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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