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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해의 황금 어장터 녹도

충남이 품은 섬 이야기②보령 녹도

2020.02.04(화) 22:10:2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녹도 전경

▲ 녹도 전경



사슴처럼 생겼다하여 붙은이름
봄철까나리, 여름철 멸치잡이
자발적으로 금주령 시행도

 
보령시 오천면 녹도는 섬의 모양이 사슴과 같이 생겼다고하여 녹도라 불린다. 보령 대천 항에서 25km, 해안선 길이 4km, 크기는 0.89㎢의 조그마한 섬이다. 작은 섬에 한 때는 120여 가구, 300여 명의 비교적 많은 주민이 살았는데, 지금은 96가구 180여 명만이 거주하고 있다.

녹도는 먼 바다에 위치한 섬이지만 어업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서해어장의전진기지였던 녹도는 한때 충남에서 외연도와 함께 어업이 번성했던 섬이었다. 주변 바다는 제주 난류가 북상하면서 봄에는 까나리와 새우, 여름에는 멸치잡이 어장이 성행한 곳이다.

주민들의 협동심이강하고 단결이 잘되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녹도 주민들 간에는 위계질서도 뚜렷하다. 국내 유일하게 금주령이 내려진 섬이기도 하다. 금주령은 50여 년 전 동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법이다.

과거 어업이성행할 땐 경기가좋아서 술집이 많았다. 순전히 밀주였는데 술에 취하여 싸움질을하고 노상방뇨도 하고, 노인들에게 대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을 청장년들에게 녹도 안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애경사 등 꼭 술이 필요할 때면 대천에서사왔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뒤 몰래 술 파는 행위가 네 집에서 적발돼 보관된 138상자를 시가로 배상해 집집마다 분배해 나눠주는 등 2차 금주령을 실시했다는 웃지 못할 일도있었다.

1960년대까지 돛단배에 해산물을 싣고대천에 나가려면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풍선에 돛을 달고 갔지만, 역풍을만난다거나 바람이 불지않으면 교대로 노를 저어서 5시간정도 후에 겨우 삽시도 근처에다다른다.

삽시도에서 하루를 보내고 가는 경우도많았다. 다음날 다시 대천에 가서시장에서 일을 보고서야다시 돌아왔으니, 이들의 고달픈 삶은계속되다가 동력선이 나오면서 한결 짐을 덜 수 있었다.

당시는 객선이 다니지않아서 대천 장을 보려면 노전배가돛을 달고 다녔다. 해산물을 가득싣고서 장에 가서 판매하고, 올때는 생필품을 가득 사들고 오는데멀어서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때와 바람의방향을 따라서 다니다, 한 번은 장을 보고 녹도로 오는길에 역풍이 불었다. 그래서 현재의 대천항으로 일시 피난을 갔다가 다음날 새벽 항해 중 삽시도 근처용도 암초에 부딪혀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녹도 주민 10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녹도는 일제강점기 의병활동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니, 외딴 섬에서 무력항쟁을 계속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할 대목이다.
/이재언 목포대학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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